제목 :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본문 : 로마서 14장 13-23절

설교자 : 이병권

우리는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결정으로 고민할 때가 많지만 때로는 인생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결정으로 고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신중하게 무엇이 더 좋은 결정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결정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이 결정을 좌우하는 기준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다른 가치 기준을 가지고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영적으로 더 가치 있는 결정이 겉으로 보기에는 손해가 되는 더 안 좋은 결정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매순간 시험이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하고 싶지만 잘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더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따지고 다른 제품들과 비교해보고 가장 좋은 결정을 하려고 수고하는데 하물며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결정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하겠습니까!

나의 결정은 단순히 나의 결정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결정은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영향을 줍니다. 나의 결정이 가정에 영향을 주고 교회에 영향을 줍니다.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인 교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유익하고 가치 있을까를 생각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결정이 교회에 덕이 되고 성도들에게 좋은 간증이 될까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더 좋은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항목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한 가족으로서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 서로에게 더 좋은 영향을 주기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좋은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4장을 시작하면서 로마 교회에 있었던 문제를 살펴보았는데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로 구분되는 두 그룹의 갈등이었습니다. 먹는 것과 날을 지키는 것에 대한 다른 견해로 나타난 문제였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서로에 대한 비판과 업신여김이 교회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바울의 명령은 받아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가 아니라 주의 것이기에 주님이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서로를 받아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분명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교회에 누군가가 와서 안식일을 비롯한 율법의 명령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받아주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로마 교회에게는 받아주라고 명령한 걸까요?

우리가 로마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를 비교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율법의 행위를 따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믿음만으로 안 되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거짓 복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마 교회는 좀 다른 상황입니다.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아닙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이 유대인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삶으로 배웠던 가르침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실제로 따르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삶의 근간이 되는 유대교 전통을 단번에 버리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교육과 율법을 따르는 열심은 대단한 것이었고 바울은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터가 안전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타는 것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두려울 수 있고 타는 것이 꺼려질 수 있습니다. 돼지고기를 부정한 음식으로 알고 한 번도 먹지 않은 사람이 돼지고기를 먹는 것, 평생 안식일을 지켰던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 참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점에서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떠난 거짓에 대해서 받아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권면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두 가지 권면이 나옵니다. 하지 말라는 부정의 권면과 하라는 긍정의 권면, 두 가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권면이 같은 단어입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부정의 권면과 긍정의 권면을 함께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단어를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단어는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는데 그 의미가 ‘판단하다, 평가하다, 비판하다, 심판하다, 결심하다’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결정하다’입니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 ‘판단하다, 평가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결정하는 것, ‘정죄하다, 심판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자기 마음으로 결정하는 것, ‘결심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결정하다는 의미가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제목도 이 단어, 결정하다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합니까? 먼저 부정의 권면을 따르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가 형제, 자매를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내가 형제, 자매를 이렇다, 혹은 저렇다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정죄하는 것이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결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긍정의 권면을 따르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형제 앞에 부딪칠 것과 거칠 것을 두지 않도록 결정해야 합니다. 부딪칠 것은 장애물을 말하는 것이고 거칠 것은 올가미나 함정을 말합니다. 형제를 부딪쳐 넘어지게 하거나 형제를 붙잡아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을 그 앞에 두지 않겠다고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두 권면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형제를 결정하지 말고 형제를 위한 결정을 하십시오. 서로를 결정하지 말고 서로를 위한 결정을 하십시오. 다시 말하면,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서로를 위한 판단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형제를 위한 결정인지 생각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생각해야 되는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바울이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가 가졌던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로마 교회의 대다수가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것은 속된 음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음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고 베드로는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악하고 부정한 것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결정을 내리는데 기준이 되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결정은 이러한 믿음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14: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믿음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고 합니다. 믿음을 나에게 적용해서 내가 그 믿음대로 행하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을 다른 형제에게 강요하거나 압박함으로써 형제가 자신의 믿음대로 행하지 않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형제 앞에 장애물을 두어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고 죄를 짓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나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보다 형제가 더 중요합니다. 믿음은 형제를 세우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이 사랑으로 행해질 때 부작용이 없는 것입니다.
14: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 없는 믿음으로 형제를 죄에 빠뜨리는 것은 망하게 하는 일입니다. 영혼의 안녕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굳게 붙들고 행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믿음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주님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주님이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일입니까!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세상과 악한 영들을 대항해야지 형제를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나에게 있는 믿음은 선한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정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형제의 영적인 위험을 가져온다면 그 선한 것은 비방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사랑 가운데 믿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믿음으로 하시고 믿음을 따라 행하십시오. 그리고 그 가운데 사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 둘째는 ‘목적입니다.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삶의 목적이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먹고 마시는 자유가 있고 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주님이 허락하신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런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소속되어 있는 하나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목적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로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14: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14: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우리에게 있는 자유는 절제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자유를 절제할 때 우리의 삶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을 수 있고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럴 자유가 있습니다. 만물이 다 깨끗하기에 주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누리며 나에게 있는 자유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 형제에게 거리낌이 되는 일이라면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유를 절제할 수 있습니다.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가 아니라 절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 형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있는 자유를 사용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선순위에 있는 일이고 우리 삶의 목적이 맞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을 생각해볼 때,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 반대편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더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놓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사용할 수도 있고 자유를 절제할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절제하는 것도 무조건 사용하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조금 더 자유를 절제하게 될 것이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조금 더 자유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어떤 결정을 하든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 우리 삶의 목적에 맞는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야합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4: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삶의 목적에 따라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다시 정리하면, 자유는 절제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는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서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에 맞게 섬기는 자로 살 때, 섬기는 일을 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과 평화를 이루는 일을 해야 하고 서로의 덕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섬김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힘써야 하는 일입니다. 여기 힘쓴다는 말은 추구한다는 뜻인데, 이 일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섬기는 일을 추구합니다. 화평과 덕을 세우기 위해,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합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자유를 사용하고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있는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할까?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더 좋을까?’ 그런데 우리의 목적을 생각하면 이 질문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형제, 자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떻게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 삶에 계속되는 질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그 결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목적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사용해야 합니다. 자유를 절제함으로 자유를 섬김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바울의 모든 권면은 사랑이 바탕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따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절제하고 섬기고 사랑으로 믿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나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사랑으로 나의 유익을 내려놓고 사랑으로 나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태도이고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결정에 대해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YOU’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당신은 먼저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먼저 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사셨기에 그래서 우리도 내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삽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당신은 실제 삶에서 형제, 자매에 대해서 적용됩니다. 형제, 자매에게 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이 때문입니다. ‘내가 아니라 YOU’ 이것이 우리의 삶의 기본이 되고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