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겜에서 벌어진 비극
본문: 창세기 34장
설교자: 이병권

 

야곱은 그동안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큰 위기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무사히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고생은 할 만큼 많이 했으니 이제는 좋은 일만 가득할까요? 정말 그랬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또 다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럼 그 위기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개의 비극적인 사건이 보고됩니다. 첫째 사건은 가나안 족속 세겜이 행한 성폭행 사건입니다. 그리고 둘째 사건은 시므온과 레위가 그에 대한 복수로 행한 살인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의 중심에 세겜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 중 히위 족속이었고 하몰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살던 곳이 그의 이름과 같은 세겜입니다. 세겜이라는 지역에 세겜이라는 사람이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세겜에서 벌어진 비극인데 그래서 오늘 제목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세겜에서 벌어진, 세겜이 행한 비극과 세겜이 당한 비극입니다.

두 개의 이 비극적인 사건은 아주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특별히 창세기의 저자는 일곱 번의 직접적인 대화를 기록하며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이 사건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시면, 이르되 혹은 말하되라는 말이 일곱 번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서 사건에 나오는 인물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에서 첫째 사건의 피해자, 디나의 말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디나는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디나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그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서 1절부터 함께 보시며 사건을 따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1) 디나에 대한 짧은 소개가 나옵니다. 디나는 야곱이 레아를 통해 얻은 딸입니다. 디나가 레아가 낳은 딸이라는 것은 앞으로 전개되는 일에 대해서 ‘야곱의 반응이 왜 그러했을까?’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시므온과 레위가 레아로부터 태어난 디나의 친 오빠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야곱과 레아의 딸인 디나가 무슨 일을 합니까? 그 땅의 딸들을 보러나갑니다. 이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가나안의 딸들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아내를 택할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창세기는 반복해서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세겜에 사는 동안 디나는 그 땅의 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할 때 자녀의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위험한 것과 죄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일, 울타리를 쳐주는 일은 꼭 필요하며 부모의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의 성향이나 처한 상황에 맞게 그리고 자녀가 자라는 성숙에 따라 적절하게 그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지혜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녀들은 항상 부모에 대해서 통제가 과하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부모들은 항상 자녀에 대해서 통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아버지로서 그런 일을 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뼈아픕니다.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2-3) 세겜의 추장 세겜이 디나를 보고 끌어들여 성폭행을 합니다. 그런 후에 세겜은 디나를 마음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디나를 사랑하여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하몰에게 찾아가 디나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겜의 행동은 디나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디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세겜은 디나를 좋아하게 된 철없는 망나니 같은 인물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자기밖에 모르는 안하무인인 재벌2세 같은 자입니다.

야곱은 디나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버지로서 어떤 반응이 자연스러운 걸까요?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5) 야곱은 디나의 소식을 들었지만, 침묵을 지킵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들에 있던 아들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야곱의 이 행동은 지혜로운 걸까요?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괜히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일까요? 단지 이 상황만 보고 생각하면, 야곱이 위험할 수 있으니 아들들이 올 때까지 지혜롭게 대처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 야곱이 하는 일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디나가 라헬의 딸이었다면, 야곱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다르지 않았을까요? 이 일에 대해서 좀 더 단호한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야곱은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유일하게 보이는 감정은 세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들을 향한 분노입니다(30절).

성경은 야곱의 이러한 반응을 그의 아들들의 반응과 대조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7) 급히 집으로 돌아온 야곱의 아들들은 디나의 일로 매우 분노합니다. 아버지의 반응과 아들들의 반응은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또한 성경은 아들들의 분노에 대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은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어리석은 일을 말합니다. 성경에 이 단어가 사용될 때는 흔히 ‘망령된 일’로 번역되는데, 공동체의 안전과 보존을 위해서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범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겜이 누구에게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말씀합니까? “이스라엘에게” 성경은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여기서 ‘야곱’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향해 말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이스라엘이 나라로서 모습을 갖추기 전이지만, 시대와 상관없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결혼했을 때, 그들에게 부모가 없었지만 결혼하면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둘째, 여기서 ‘디나’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 것은, 한 사람을 향한 죄는 단순히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겜이 범죄 한 대상은 누구입니까? 디나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이 됩니다. 죄는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저기 있는 민규를 이유 없이 막 때립니다. 그럼 이 죄는 민규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민규 부모님에 대한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민규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부모님에게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말 민규를 때리고 싶으면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민규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한 다음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내를 때리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마음만 먹으면 주먹으로 때릴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힘을 들이지 않고 그냥 말로도 때릴 수 있습니다. 가시 돋친 말로 아프게 하고, 비꼬는 말로, 무시하는 말로 때릴 수 있습니다. 직접 때리는 것보다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했을 때 저의 말은 아내에 대한 죄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 됩니다. 드라마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니가 우리 집안을 어떻게 보고 이런 일을 했느냐!’ 어떻게 보면 정말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 각 사람 뒤에는 엄청난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귀하게 여기고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세겜이 디나에게 행한 일을 부끄러운 일로 기록하면서, 이 일은 공동체 전체를 더럽히는 일이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로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협상으로 이어집니다.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찾아와 야곱에게 대화를 시도합니다.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8)

하몰은 야곱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면서 디나를 단순히 야곱의 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너희의 딸이라고 말합니다. 당신들의 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말을 반영하듯이 이어지는 대화를 보면, 하몰과 세겜은 야곱이 아닌 야곱의 아들들과 협상을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모든 것을 뒷전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야곱은 마지막에 아들들을 책망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야곱과는 달리 하몰은 적극적으로 이 상황을 이용하는데,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의 딸들을 통혼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양쪽에게 큰 이익이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10) 그들과 함께 거주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고, 함께 잘 살아보자는 겁니다.

하지만 하몰은 실제로 세겜 성읍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23) 하몰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교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양쪽 편에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몰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당사자인 세겜이 입을 엽니다.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12)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사과나 어떤 다른 말도 없이 몸값으로 무엇이든 다 줄 것이니, 이 소녀를 달라고 할 뿐입니다.

가나안의 히위 족속,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에게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달콤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디나의 일이 어찌되었든 간에 디나를 세겜의 아내로 주면, 그 값으로 많은 예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족속들과 통혼하게 되면 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며,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제안에 대한 아들들의 대응은 이 이야기의 전환점이 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대답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13) 아들들은 세겜이 자기 누이동생을 더럽혔기 때문에 속여 말하는데, 그들이 할례를 받아야 통혼하여 한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증거로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세겜과 그의 가족들이 할례를 받는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로 말하면,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침례를 받는다고 해도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야곱의 아들들이 말한 거짓은 그들에게 한 민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처럼 남을 속이는데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들들은 디나를 생각하는 세겜의 마음을 이용했고, 하몰과 세겜은 그 말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즉시 일을 시작합니다. 곧장 성문으로 가서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당시 성문은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곳입니다.

하몰과 세겜은 야곱의 집안과 맺어졌을 때 얻는 이익에 대해서 말합니다. 세겜은 그의 집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 일은 누가 보아도 동의할 수 있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남자들이 이들의 말에 따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24) 특별히 24절에서는 “모든”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추장 세겜의 말을 듣고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굴러온 것은 호박이 아니라 독이 든 사과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비극이 더 큰 비극을 낳는 장면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삼일을 기다렸다가 할례를 받아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몰래 찾아갑니다. 자기의 칼을 들고 담대하게 성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든 남자들을 죽입니다. 물론, 하몰과 세겜도 죽이고 그의 집에서 디나를 데리고 나옵니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재물을 빼앗았고, 여자와 자녀들을 사로잡아옵니다.

그 성읍에는 약탈할 것들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29절에 보면, 우리 번역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모든’ 이라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되면서 야곱의 아들들의 욕심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재물을 빼앗았고, 모든 그들의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노략했습니다.‘

하몰과 세겜은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야곱 집안의 재산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반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재산이 야곱 집안의 재산이 되었습니다.

이 피비린내 나는 복수에 대해서 야곱의 책망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오늘 본문은 마무리됩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30)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뒤늦은 분노로 그들을 책망합니다. 가장으로서 집안의 안전을 위해 한 일이 없는 야곱이 지금 아들들에게 이 집안에 끼칠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정말 집안을 생각하고 걱정했다면, 이 일이 있기 전에 가장의 역할을 했어야 했습니다.

사실, 야곱이 화가 난 것은 아들들이 한 일이 잘못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야곱의 걱정은 자신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다른 족속들로부터 공격을 받을까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죄와 그들이 한 일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 일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군대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주변 족속들의 군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느라 정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위치는 완전히 바닥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야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망가져버린 그의 가정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세겜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이야기는 개인적인 사건으로 시작해서 가족의 이야기로 다루어지지만, 이 사건은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협이 되는 가나안 족속과 통혼하거나 그들과 언약을 맺는 것을 금하며, 오직 그들을 진멸하라고 말씀합니다(신7:1-5). 오늘 이야기는 그 율법의 명령에 대한 근거를 부분적으로 제공해줍니다. 이 사건은 부도덕한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더럽히고, 집어삼키려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가나안 족속의 악함에 대해서 미리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분노하는 야곱의 아들들이 합당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들이 했던 복수와 사용한 방법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증표를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고, 그들이 했던 복수는 잔인하고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균형을 가져야 할 것은, 악을 대적하기 위한 거짓과 통제되지 않은 폭력은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악에 대해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태도 역시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사실, 야곱의 침묵과 무기력한 모습은 그의 아들들의 행동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주도적으로 단호하게 정당한 방법으로 악을 다루었다면, 더 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예는 다윗의 가정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자녀의 죄를 다루지 않고 침묵했을 때, 그 죄는 더 큰 죄로, 더 큰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죄를 다루는 나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결국 그 죄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게 더 큰 아픔을 가져다줍니다. 죄를 다루는 일은 힘듭니다. 하기 싫은 일입니다. 때로 아픔을 가져다주고, 마음에 부담과 어려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제때에 올바른 방법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됩니다. 때를 놓친 후에 다루면 그만큼 더 힘들고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러니 미리부터 죄에 대해서는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나 자신이 그러한 죄에 노출되어 있다면 자신을 살피며 죄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나의 자녀에게 그러한 죄가 있다면 지혜롭게 그 죄를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냥 눈을 감아버리거나, 은근슬쩍 그냥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죄를 다룰 때는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악에 대해서 정당하고 지혜롭게 대응해야 합니다. 보다 성숙한 자들이 이에 대해서 단호하게 행동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약한 자들이 그릇된 방법을 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악에 대해서 제대로 다루지 않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녀들이 그 악에 대해서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악에 대해서 잘못된 대처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세상의 악에 대해서 단호하게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영향과 결과는 다시 교회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고 다음 세대가 그러한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악에 대해서 잘못된 방법이나 불의한 행동으로 대응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악을 용납하거나 악에 대해서 침묵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선을 추구하고 악을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 사실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