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등불의 비유
본문 : 누가복음 8장 16~18절
설교자 : 조정의

지난 시간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의 중간쯤에 와 계십니다. 유대와 여러 지역을 다니시다가 이제는 갈릴리에 집중하셔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조금 더 제자들 중심으로,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네 가지 종류의 땅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온 제자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네 가지 종류의 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씨는 동일하게 떨어졌는데 그 땅의 종류가 달랐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단단한 땅이었고(마귀가 그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간 자), 또 하나는 돌밭이었습니다(시련 당할 때 배반하는 자). 그리고 가시떨기가 있는 땅이었고(이생의 염려, 재물, 향락에 기운이 막힌 자), 마지막은 좋은 땅이었습니다(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 세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했고 하나만이 열매를 맺는 땅이었습니다. 이 비유를 마치시고 바로 이어서 오늘 본문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짧은 구절이지만 내용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의미를 설명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유에 대한 적용이 뜬금없기 때문입니다. 16절에서 비유를 말하고 17절에서 빛의 원리를 말하고 18절은 적용으로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싶습니다. 또 하나는 좀 이상한 경고입니다.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18). 단순하고도 어려운 비유, 하지만 매우 중요한 비유입니다.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고 말씀에 대해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 점검하게 하는 비유입니다. 네 가지 땅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그러니까 너희가 좋은 땅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나쁜 땅과 좋은 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분명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18절)” ‘잘 들어야 한다, 더 받기 위해서 그렇다’, ‘또 잘 들어야 한다, 있다고 착각하는 것 마저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비유(16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16절)”

비유 그 자체는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문화 속에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들어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려고 등불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과거에 사용하던 호롱불과 비슷합니다. 토기 안에 기름을 채워 심지를 넣고 불을 밝히는 도구입니다. 램프, 형광등처럼 사용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릇은 조명을 끄는 도구였습니다. 평상은 동양식 주택의 침대입니다. 등경은 등불을 올려두는 촛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등불을 켠다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캄캄한 방을 밝히 비출 때, 등에 불을 붙여 등경에 올려두어 방 전체에 빛이 고루 퍼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정전이 되면 초를 찾아 거기에 불을 붙입니다. 누구도 뚜껑을 덮어버려 끄거나 촛불을 침대 밑에 두지는 않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도시는 밤에도 어느 정도 밝지만, 과거에 밤은 정말 캄캄했습니다. 주님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원리로 넘어가기 전에 “등불”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추측해봅시다. 신약성경에 “등불”(루크노스)이 14번 등장합니다. 등불의 의미를 알기 위해 몇 가지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5-40).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19-21).

“그 성은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3).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계 22:5).

그렇다면 등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사람들이나 도구를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 그러했고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들과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등불이시자 참 빛 자체이셨습니다(히 1:1-2).

원리(17절)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빛의 특징은 어두운 것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빛이 없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동일한 삶을 살게 됩니다. 빛은 모든 흑암을 몰아냅니다. 숨겨진 모든 것들을 드러냅니다. 숨은 것, 어두운 것이 장차 드러날 것이라고 하셨는데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추어졌다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있느니라”(골 2:2-3). “누가의 관점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 강림, 교회의 사명과 연합, 예루살렘의 함락 등 이 모든 사건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서 감춰져 있던 것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지금껏 하나님이 하고 계셨던 일들이고, 머지않아 진리가 밝혀질 것이다” <톰 라이트, 누가복음, 150-151>.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들이지만 이들에게는 참으로 생소하고 낯선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진리를 감추지 않으시고 모두에게 드러내십니다.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요 18:20-21). 예수님은 여러 회당을 다니시면서 감추어져있던 하나님의 모든 비밀들을 밝히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이전에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것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하나님은 빛을 비추고 계셨습니다. 진리를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계셨습니다. 한 번도 빛은 감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그분의 진리를 백성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시던 시점은 특별합니다. 태양이 매일매일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많은 선지자들이 말씀을 전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참 빛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직접 알려주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그 어느 시대에도 이처럼 하나님의 메시지가 강렬하지 않았습니다.

적용(18절)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이 음성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선지자 랍비를 통해서 설교를 들으며 진리를 접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듣는다는 것이 익숙할 것입니다. 그러나 “삼가라”는 명령은 원래의미가 ‘보라’(βλέπω)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스스로 잘 관찰해 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내 아이의 수업태도가 어떠한지 보기 위해 CCTV로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는 CCTV로 아이의 수업을 듣는 태도를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점점 드러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CCTV로도 확인할 수 없는, 그러나 우리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 볼 때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진리에 대한 나의 태도를 점검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저는 작은 하나님의 등불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미국에 있을 때 세계적인 설교가인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었지만 긴 설교시간이 힘들어 사탕과 껌을 먹으며 버텼습니다. 저는 일시적인 말씀을 듣는 자세들이 아니라 전반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들으려는 사람인가, 듣지 않으려는 사람인가? 나는 빛 가운데 나아오는 사람인가, 멀어지는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믿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학생은 공부를 할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계속해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가진 지식마저도 잃어버릴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인생에는 정지상태가 없다는 말이 된다. 항상 우리는 진보하든지 퇴보하든지 둘 중 하나의 상태에 있다.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자는 언제나 찾게 되지만 추구하기를 그만두는 자는 가진 것마저도 잃게 될 것이다’(바클레이, 150)

예수님의 마지막 경고의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자신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인가, 듣지 않으려고 하는 자인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바른 자세를 가진 사람은 항상 말씀을 귀 기울여 듣습니다. 좋은 땅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처럼 말씀을 듣고 지키고 인내로써 결실을 맺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더 풍성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말씀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고 그것으로 충분해서 더 안 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지적했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딤후 3:7)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장차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주가 보이신 놀라운 가르침에 두려워 떨었고, 놀라운 기적을 보며 주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지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어려운 이야기, 그들의 생각과 반하는 이야기를 했을 때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측근이었던 가룟 유다는 주님이 베푸신 많은 기적들을 보고 전하시는 말씀들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도 했었지만 결국에는 그를 거절했습니다(요 6:70). 예수님의 제자들은 연약하고 깨닫는 것도 더디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말씀의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놓지 않았습니다. 믿고 지키고 인내하여 그것을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 17:8). 열 한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질문이고 단 하나의 명령어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듣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땅입니까? 여러분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는 어떻습니까? 그것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여러분이 사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닌 마귀에게 속한 자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있다면 계속해서 따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더욱 풍성히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자와 나사로를 비유를 하시면서 부자가 뜨거운 지옥불에 있으면서 나사로를 자신의 자녀들에게 보내서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그것이 말씀을 듣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말씀을 듣는 태도가 그렇다면 죽은 자가 부활해서 직접 말한다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인의 완악함입니다. 지금 그들은 참 빛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주님의 신성과 기적을 보면서도 그 가운데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들 중 한 분이라도 스스로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다 빼앗기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를 돌이켜보시고 과연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대하고 있는지 자신을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구역모임을 위한 질문들

  1. 등불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빛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2. 등불을 평상 아래 두거나 그릇으로 덮는 것은 왜 문제가 되나요?
  3. 빛이 하는 역할을 17절을 참고하여 설명해보세요.
  4. 당신은 “항상 우리는 진보하든지 퇴보하든지 둘 중 하나의 상태에 있다”라고 말한 바클레이의 말에 동의하나요? 왜 그런가요?
  5. 당신은 “어떻게” 듣고 있나요? 당신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요?
  6. 듣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는 언제일까요? 혹시 그런 경험이 있다면 나눠보세요. “빼앗기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7. 더 잘 듣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