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주의 어머니
본문 : 누가복음 1:39~45
설교자 : 조  정  의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누가복음은 단순히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쓰인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생각하는 특별한 사건들이 대조를 이루며 기록된 책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세례 요한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두 가지 사건이 하나로 만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것은 마치 임마누엘 찬양대가 찬양을 부를 때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하나로 만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내는 것 같은 모습과도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두 이야기가 만나 화음을 이루어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들을 각기 살펴보면, 이 여자들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은 60세~70세 정도의 아주 늙은 여인이었고, 마리아는 12살~13살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였습니다. 한 여자의 남편은 제사장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있었고, 다른 여자 아이의 남편은 지극히 평범한 목수였습니다. 한 여인은 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다른 한 여인은 가난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고, 다른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여인들에게 공통점들도 있었습니다. 그 공통점은 바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 여인은 나이가 많아서, 다른 한 여인은 남자를 알지 못했다는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또 이 두 여인은 둘 다 가브리엘이라는 천사를 만나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이야기와 그 아들들의 이름을 전해 들었습니다. 두 여인의 아이들 모두 ‘큰 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으며 가브리엘을 통해서 징표를 얻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대조와 더불어 많은 공통점도 가진 이 여인들은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내는 시간을 맞이합니다. 서로 함께 맞춰 화음을 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때”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때”는 마리아가 천사의 계시를 받았을 때를 말합니다. 천사가 와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마리아는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낳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천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후의 마리아의 반응입니다. 사실 여자 아이가 임신한다는 사실은 두렵고 걱정이 되는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초산인 경우 임산부들은 굉장히 많은 걱정을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이제 갓 열세 살이 된 아이는 얼마나 두려워하겠습니까? 더구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혹시 다른 사람이 마리아를 율법에 따라 돌로 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이 마리아에게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참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라”.

우리는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 속에서 아브라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환경에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것을 그대로 믿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다시 본문 내용으로 돌아오면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불가능해보이고 참 믿기 어렵고 두려운 일이겠지만 정말 사실인 것은 네 친척 엘리사벳이 임신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36절에서 37절을 보면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마리아에게 내려진 징표였습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을 때 심판으로써 말을 못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을 신뢰했을 때 엘리사벳의 모습을 보라는 징표를 얻었습니다.

천사가 떠나갔을 때 마리아는 그 징표를 확인하고 싶어서 지체하지 않고 즉시 일어나 유대의 산골로 가서 자신이 가진 믿음에 대해 확증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가브리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똑같이 받은 엘리사벳에게 찾아가서 그녀가 받은 축복과 은혜에 대해서 함께 축복하고 기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시골 변두리에서 출발하여 90~130km가 되는 길을 3~4일 걸어서 사가랴가 살고 있는 유대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는 열세 살 소녀가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사가랴의 집에 찾아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고 엘리사벳은 그녀의 문안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문안’한다는 말은 그저 “안녕하세요.”, “건강하세요” 정도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으로서의 ‘문안’은 서로 간에 있었던 일들을 잠깐 나누는 것도 포함되는데, 이 관습은 모세와 그의 장인 이드로가 문안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나가서 그의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 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장인에게 말하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출 18:7-9). 이 말씀에서는 출애굽기 18장까지의 많은 이야기를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문안하고 이야기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여기서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아주 디테일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둘이 나눴을 것입니다. 아마 마리아는 자신이 들었던 천사의 말과 여러 가지 징표들과 자신이 고백했던 모든 것들을 이야기했을 것이며 그들이 가진 공통점들에 서로 기뻐하면서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성령님께서 엘리사벳을 충만하게 하시고 감동시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는 세례 요한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다음 말씀인 41절에서 45절까지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마리아를 맞이하여 반응하는 장면과 엘리사벳이 성령충만하여 그녀와 그녀 뱃속의 아기가 반응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모두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주목할 것은 세례 요한이 어머니 뱃속에서 뛴 것입니다. 사실 아이가 뱃속에서 뛰는 것은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그저 우연의 일치로 뱃속의 세례 요한이 뛴 것이 아님을 누가는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해 줍니다. 말씀을 보면 세례 요한이 “뛰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를 문맥적으로 보면 ‘껑충 뛰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아기의 발작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사실 이것은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는데, 천사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이라고 15절에 적혀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기뻐 뛰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엘리사벳이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다”(44). 이것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엘리사벳이 감동되어 아기가 뛰놀았다는 것을 알리는 정확한 표현입니다.

아직 태아가 입술이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없지만 세례 요한은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외치고 뛸 듯이 기뻐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 앞에 큰 자라고 했으며 주 앞에 먼저 와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할 자라고 말하는데 그는 그의 역할에 맞게 메시아를 선포하고 가리키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가 자라서 예수님을 처음 봤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훨씬 전, 그가 아직 형질을 이루기도 전에 이미 온몸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입니다. “이분이 바로 메시야다” 그래서 ‘토리노의 막시무스’라는 사람이 4세기 때 이것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몸이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기쁘게 뛰노는 것으로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합니다’. 바로 이 때가 처음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던 때였던 것입니다.

다음에 성령님께서는 엘리사벳을 감동시켜 그녀의 입술을 통하여 네 가지로 복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어머니 마리아를 복되다고 말하고 둘째, 어머니 뱃속에 있던 예수님을 복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셋째, 그 앞에 있는 자기 자신을 복되다고 하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복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복되다고 하는 대상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먼저는 그 아이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복의 근원은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메시아, 즉 하나님이셨습니다.

‘복’이라고 하면 혼동된 개념이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복’이란 마치 요한을 주 앞에서 큰 자라고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담당했는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주님 앞에서 크다는 칭호를 받았던 것은 그 전에 하나님 앞에서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그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크다는 표현이 쓰였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여자 중에 복되다’고 한 표현은 히브리어로 최상급의 표현인데 그런 표현이 쓰인 이유는 마리아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사라도 있었고 룻, 드보라 등 많은 영웅적인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맡은 역할이 가장 컸기 때문에 그녀가 그런 칭송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낳은 아들이 나중에 대통령이 된다면 자랑스러우시겠지요? 하물며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만큼 이 예수님이 아주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여자 중에 가장 복되다는 소리를 들은 이유는 마리아가 낳은 아기가 이 세상 그 어떤 영웅적인 인물보다 가장 큰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재패하고 전부 통일한 사람보다, 혹은 가장 큰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보다 예수님은 더 크신 분입니다. 이 예수님이 가장 크신 분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가장 복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엘리사벳의 찬양은 마리아에서 뱃속의 아기에게 옮겨갑니다. 이를 영어 원문으로 표현하면 ‘Blessed is the child’입니다. 이 표현을 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103편에 다윗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을 때 ‘Blessed the lord’라고 합니다. 지금 엘리사벳이 하는 말은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에 ‘아기’라는 말을 덧붙인 것 뿐입니다. 지금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하나님으로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43절에 보면 “내 주”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마리아에 대해서 “내 주의 어머니”라고 고백하는데 여기서의 “주”는 곧 하나님을 뜻합니다. 시편 110편 1절에서 다윗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원수들로 내 발판이 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다윗이 장차 오실 메시야를 향하여 “내 주”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시면서 어떻게 다윗이 자기보다 한참 후에 올 자손에게 “내 주”라고 말할 수 있으며 ‘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십니다. 엘리사벳은 아직 형질을 이루지 않은 태아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찬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주께 복이 있도다. 이 주를 송축하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가 왜 마리아와 엘리사벳을 대조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엘리사벳이 마리아보다 더 높아 보이지만, 그들이 낳을 아기는 반대입니다. 엘리사벳의 아기는 ‘주 앞에 큰 자’였지만 마리아의 아기는 ‘큰 자’였습니다. 엘리사벳의 아이는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자였지만, 마리아의 아기는 하나님의 심령인 성령의 힘을 가지고 활동하셨습니다. 또 엘리사벳의 아기는 ‘주 앞에 먼저 온 자’였지만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아기는 ‘주’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의 아기는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는 자였지만, 마리아가 낳을 아기는 그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건져낼 자가 되셨습니다. 마리아 뱃속의 아기는 조금 더 대단한 아기가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며, 조상 다윗과 맺은 언약의 성취자이며, 영원무궁하신 왕이며, 요한이 가리키기를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자 처음과 나중이며 전지전능하시고 불변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리고 임마누엘이셨던 것입니다. 만유의 주인 하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계셨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그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돌립니다. 어떻게 이 하나님이 내게 오실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사실 어린 여인이 나이 많은 여인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 ‘어떻게 당신이 내게 올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아기가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예수님은 창세 전에 이미 이러한 일을 하실 것이라고 결심하셨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분의 겸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처음으로 실현된 장소와 모습을 바로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태아일 때부터 예수님은 엘리사벳을 찾아가심으로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엘리사벳의 찬양은 45절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했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고백했던 그 믿음, 엘리사벳은 그것을 칭찬하고 복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그것을 믿은 것에 대해 칭찬하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대로 될 것이기에 복된 것입니다. 나아가 이것은 마리아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하고 있는 엘리사벳,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누릴 수 있었던 재물, 돈, 권위, 사회적 지위 등 그 모든 것을 누렸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누렸지만 결국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죽음 이후에 인간의 삶을 심판하실 이가 분명히 있다고 말하며 전도서를 마칩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의 짐에서 놓임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일대일로 대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죄가 없다’고 선포하는 그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원한 삶이 그 판결문 하나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의의 기준은 하나님처럼 완벽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공부를 하던 어떤 분이 이 정도면 내가 도덕적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시다가, 나중에 공부를 마치면서 “저는 죽을 수밖에 없네요.”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이 처음으로 고백해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기준 앞에 모든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운명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가장 복된 소식은 그 죄에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4장 7,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불법이 사하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는 시편 말씀으로서, 바울이 이를 그대로 인용하여 말씀에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참된 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뱃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고 그것에 대해 엘리사벳이 복되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

엘리사벳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시는 분들,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은 오늘이 기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엘리사벳이 노래했던 것처럼 확실한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참된 복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임신 사실을 확인하려고 엘리사벳을 찾아갔으나 그녀는 오히려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예수님으로 인해 큰 기쁨에 차서 소리를 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같은 목소리로 복중에 있는 아기가 복되다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 분이 어떻게 먼저 나를 찾아올 수 있는지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던 아기까지 온몸을 다해 기쁨으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의 마음에는 확실한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에게 말씀하신 대로 나를 통해 메시아를 나게 하실 것이구나, 나는 복된 사람이구나, 복된 소식이 선포되는 것이구나. 하나님이 그 모든 약속들을 마침내 이루시는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쁨과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고 찬양을 시작합니다. 바로 그것이 “마리아의 찬가”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말씀은 다음 번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ma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