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구원에 합당한 삶 PART II
본문 : 베드로전서 1:13-17
설교자 : 조정의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본문 말씀에서는 앞서 베드로가 찬양하고 감사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대한 성도의 합당한 반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바랄지어다”(Hope),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Holy), “두려움으로 지내라”(Humble), 이 세 가지가 구원에 합당한 성도의 삶을 가리키는 명령어입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앞서지 않으면 이 구원에 합당한 반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특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강력한 의지를 벧1:3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이루시며 하늘에 간직하시고 보호하시고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에는 성령 하나님의 강한 의지와 능력도 담겨있습니다. 날마다 주어지는 시험에서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키시고 구원을 이뤄가십니다. 또한 아들 예수님은 친히 희생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에 참여하셨습니다. 옛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고 전도자들을 통해 전해진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이 바로 여러분과 저를 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생각하고, 그 구원의 가치를 깨달을 때 우리는 마땅히 베드로가 제시한 세 가지 삶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 첫 번째 명령으로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는 명령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에 대해 기대하고 소망하며 확신 가운데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구원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생각과 가치관들을 버리며 온전히 구원을 확신 가운데 소망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입니다. 사람들은 “거룩”을 생각할 때 전혀 악한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아무 욕망도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상태를 생각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철야집회를 마치고 돌아와 자신의 딸에게 “여자여 나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거룩을 뭔가 도덕적으로 청결한 상태,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높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도 ‘거룩하다’는 단어는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거룩이라는 개념은 인간으로서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하게 합니다. 악한 생각이 전혀 나지 않고 욕망을 초월한 성인과 같은 상태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가갈 수도 없고 절대 만족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을 보여줍니다. 이런 거룩을 추구하게 만들고 이런 자가 되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해탈의 단계에 이르러야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고행을 통해 거룩한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인간은 어차피 거룩하게 살 수 없으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냥 마음대로 살자고 말합니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며 적당히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이런 거룩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구별’, ‘성별’, ‘따로 떼어서 구별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신 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도덕적으로 청결하고 하나님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가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수 24:2).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따로 떼어서 구별’했을 때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소수였고 불순종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출 6:7; 레 26:12)으로 삼아주실 때 그들은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하나님이 따로 구별하신 것들, 물건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는 사람에게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기독교는 우리가 이미 거룩한 자이기 때문에 의로운 삶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은 도덕적인 기준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별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14). 하나님은 우리를 “순종하는 자식”으로 불러내셨습니다. 반대로 “불순종의 아들들”(엡 2:2)은 구원받지 않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은혜를 베푸신 자, 구원받은 자를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식”이라고 부르시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불순종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또한 “거룩한 자”와 “거룩하지 못한 자”입니다. 세상에는 오직 이들 둘 뿐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이 말씀은 구원받기 전의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불순종의 아들이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육체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자들이었으며, 그들의 결론은 ‘하나님의 진노’였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구원받지 않은 자들은 도덕적으로 그가 얼마나 청렴하든지 얼마나 많은 선행과 공덕을 쌓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의 아들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진노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도덕적 얼마나 깨끗한 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가 얼마나 선행을 쌓았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4-7).

우리는 불순종의 자녀였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순종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벧2:9에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런 자들로 따로 구별해 내신 것입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아비로 섬겼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불순종의 자녀들이 순종의 자녀가 되었으며, 죄와 허물로 죽고 어둠에 속했던 자들이 빛의 자녀, 새생명을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치 않는 자들이었는데, 예수를 본 적이 없으나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롬 1). 자기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자들이 아닌,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엡2). 믿지 않는 자들은 죄악 가운데 내버려 두신 자들이지만(롬 1), 순종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택하여 불러내신 자들입니다 (벧전 1:2, 17). 그것도 창세전에 택하셔서 거룩하게 예정된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불순종의 자녀는 그가 도덕적으로 청결해도 거룩하지 못한 자이고, 순종의 자녀는 하나님의 구별하심을 받았으므로 거룩한 자들입니다. 어떻게 불순종의 자녀에서 순종의 자녀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던 하나님의 원수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원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정말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희생으로,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시고 이뤄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다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식처럼 예전에 구원을 알지 못하던 때로(진리를 발견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불러내심을 받은 그 자리로 돌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적당히 섞여서 살아갈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온전한 구별을 받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자들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5). 앞에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했다면 이제는 긍정적인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이와 같은 거룩에 대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15절 참고). ‘양심이 깨끗한 정치가의 비자금’, ‘진리를 선포하는 선지자의 거짓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순결한 신부의 불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성별하여 불러내신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인데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완벽하게 거룩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거룩하십니다(호 11:9; 합 1:12; 요일 1:5; 2:20). 아들 하나님도 거룩하십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벧 2:22).

성령님은 그 이름 그대로 거룩한 영이십니다(벧전 1:2; 고전 6:11). 
하나님이 각각 거룩하시고 온전하신데 우리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은 앞에서 예로든 말들처럼 모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하신 사랑의 관계 속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 더러운 자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자로 부르셨기 때문에 마땅히 거룩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불순종의 자녀”에서 “순종의 자녀”로, 거룩하지 못한 자에서 거룩한 자로 삼으신 것, 그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모든 행실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 때만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가정에서만,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말에서만, 행동에서만이 아닙니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말과 행동에서, 그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을 만나고 어떠한 환경에 처하고 삶을 살아갈 때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속성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8).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여러분이 죄를 범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인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거룩함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삶은 거룩함입니다(살전 4:3).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거룩한 자로 구별 받았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한 사귐의 관계를 맺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6절) 이 말씀은 레위기 9:2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레위기에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따로 불러내실 때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에는 수많은 규례들이 있었습니다. 일례로 그들은 전쟁 중에도 칼과 함께 삽을 들고 나가야 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엔가 용변을 보면 그것을 치워야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규율과 법들을 통해 하나님은 삶의 작은 부분까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이 드러나길 원하신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이방 백성들에게 드러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백성이라고 택함을 받은 것은, 모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고 그것으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 많으시다면 그의 백성들은 그 사랑을 닮아야 하고, 그분을 따라 자비를 보여주어야 하며 그분을 닮아 질서 있고 거룩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삶이 우리에게 정말 가능할까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우리를 거룩하게 불러내신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기억하십시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하나님은 계획과 열심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가운데 선을 이뤄내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힘은 우리를 깨끗케 하기에 충분하고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기에 충분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계획하시고 역사하시며 이루시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특권을 받은 자처럼 세상에 거룩을 보여주고, 그러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