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걸림돌 극복하기
본문: 갈라디아서 5장 7~12절
설교자: 이병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선두로 잘 달리고 있던 브라질 선수를 누군가가 붙잡아서 달리는 것을 방해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던 브라질 선수는 3위로 동메달을 땄고,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누구보다 많은 격려와 환영을 받았습니다. 만약 이 선수가 방해를 받았을 때 거기서 달리기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요? ‘어차피 달려봐야 금메달 따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계속 달리는 것도 힘든데 그냥 여기서 주저 앉아버리고 날 방해한 사람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자!’ 만약 그랬다면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을 때 받았던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그러한 결과를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벌어졌던 이 사건을 오늘 제목으로 생각해보면, 선수는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걸림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기보다 뛰어넘었습니다. 극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올림픽에만 있는 사건은 아닙니다. 바울은 종종 그리스도인의 삶을 달리기에 비유하는데,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는 수많은 걸림돌을 만납니다.

걸림돌을 만났을 때 어려움 없이 그냥 뛰어 넘으면 좋겠지만, 때로는 걸려 넘어질 때도 있고 어떤 경우는 걸림돌이 끈질기게 들러붙어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뛰지 못하도록 방해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달려갑니다. 그것을 두고 ‘극복’이라 할 수 있고, 또 다르게 ‘회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도 믿음의 경주를 하는 중에 걸림돌을 만났습니다. 누군가가 잘 달리고 있는 그들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지금 어려움에 빠져있습니다. 다시 일어나 달려야 하는데 그 걸림돌을 극복해야 하는데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한 바울의 외침은 계속됩니다. 일어나라고 다시 달리라고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들 앞에 있는 걸림돌을 극복하기 위해서 바울이 이번에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7)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진리를 믿었습니다. 진리에 순종하면서 주님 안에서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그들은 더 이상 달리지 않습니다. 달리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멈춘 것은 진리에 순종하기를 멈춘 것입니다. 단순히 그들의 삶에 사소한 어려움이 추가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지금 진리에서 떠난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 겁니까? 바울이 묻습니다.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바울은 그들이 누군지 몰라서, 알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이 3장1절에도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3:1) 누가 너희를 속이더냐?

바울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갈라디아 교회가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질문한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한 가지 답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으로 다른 복음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떠난 뒤 어느 날 갈라디아 지역을 찾아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새로운 사실을 전합니다. 그들은 더 힘 있어 보였고 그들이 전한 복음은 더 좋게 들렸습니다. 바울이 빠뜨린 것을 알려주며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복음을 따르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사실은 다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속은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의 실체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가 계속해서 다른 복음을 따른다면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알려줍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다른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에 대해서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출처영향결말입니다.

첫 번째로 다른 복음의 출처입니다.어디서 왔느냐?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8)

거짓 형제들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복음의 진리와 다른 것을 전합니다. 다른 복음을 따를 것을 권면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몰랐지만 그 권면을 받아들인 것은 진리를 떠나 달리는 것을 멈춘 것과 같았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게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거짓 형제들은 출처를 속인 것입니다. 원산지가 국산이 아닌데 국산이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온 것이 아닌데 하나님께 왔다고 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했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갈라디아 교회를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1:6) 하나님은 은혜로 부르셨는데 거짓 형제들은 은혜가 아닌 율법의 행위를 전합니다. 다른 겁니다. 이처럼 다른 복음은 하나님의 승인을 받지 않은 가짜입니다.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 뭔가 다른 신선한 것을 들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 출처가 어디인지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라는 걸림돌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새로울 수 있고 뭔가 다를 수 있었겠지만, 그 출처가 하나님이 아니었기에 달리는 것을 멈추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부르신 이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은 더 나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복음의 영향입니다. 얼마나 위험하냐?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9)

다른 복음의 영향은 적은 누룩에 비유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처럼 다른 복음의 영향도 그러합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것을 막는 거짓 가르침은 교회 전체를 오염시킵니다. 이 누룩을 제거하지 않고 그냥 두면 그 영향이 모든 곳에 퍼져서 걷잡을 수 없는 문제로 발전되고 심각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 특별히 더 위험한 이유는 다른 곳으로 퍼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전염병이 유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때 메르스가 유행하면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면 비상이 걸리고 주의를 요한다는 방송들이 나오고 그러는데, 괜히 유난을 떠는 걸까요? 왜 그렇게 하는 겁니까? 한 명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그냥 두면 상황은 악화되고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애초에 시작부터 제대로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 그러합니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교회에 큰 어려움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미 갈라디아 교회에는 이런 어려움이 시작되었고 바울의 입장에서는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이것을 바로 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강하게 그들의 결말에 대해서 다른 복음의 끝을 말합니다.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복음의 결말입니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10)

거짓 가르침, 다른 복음의 결말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한 거짓 형제들에 대해서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라고 말하는데, 다른 복음이 가져온 영향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갈라디아 교회를 요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가만히 있는 물을 막 휘저어서 온통 흙탕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혼란과 두려움에 빠뜨렸습니다.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믿음의 경주에서 멈추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을 전하며 거짓으로 문제를 일으킨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외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한 심판을 선언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그들에 대해서 아주 강한 책망의 말을 합니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12)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와 같은 표현으로 이번에는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이게 무서운 말인데 무슨 말이냐 하면 그들이 계속해서 할례를 주장하니까, 그렇게 자르는 것을 좋아하니까, 조금만 자르지 말고 아예 다 잘라버리라는 겁니다. 차라리 거세를 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거짓 형제들에 대해서 이렇게 강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망은 직접적으로 거짓 형제들을 향한 것이지만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한 책망이 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는 이것이 자신을 향한 경고의 말씀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른 복음의 결말이 어떠합니까? 심판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그들 앞에 놓인 걸림돌, 다른 복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른 복음의 출처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영향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말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복음이라는 걸림돌을 극복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넘어졌다면,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면 이제는 회복함으로 다시 달려야 합니다. 다시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갈라디아 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달릴 수 있도록 채찍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채찍뿐만 아니라 채찍과 더불어 당근도 사용합니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10)

바울이 목자의 마음으로, 부모의 마음으로, 해산의 수고를 하는 엄마의 심정으로 그들을 타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마음을 품지 않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마치 엄마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엄마는 우리 착한 아들이 딴 생각하지 않고, 엄마 말 잘 들을 거라고 믿어!’ 어쩌면 이 말은 어떤 경고의 말보다 더 강력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거짓 형제와 대조해서 자신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러면서 또 다른 걸림돌 하나를 이야기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11)

바울은 지금까지 박해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울이 할례를 전했다면, 진리를 지키기보다 타협했다면, 십자가의 복음만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를 함께 전했다면, 만약 그렇게 거짓 복음을 전했다면 박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걸림돌을 끌어안고 진리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의 경주에서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이 걸림돌은 갈라디아 교회의 달리기를 막았던 걸림돌과 다릅니다. 진리를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걸림돌은 제거하는 것이 극복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를 따르기 위해 감수해야 되는 걸림돌은 짊어지는 것이 극복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걸림돌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우리 믿음의 무게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거짓 형제들은 할례를 전했지만, 바울은 십자가를 전했습니다. 할례를 전하는 것은 죄인들에게 그들이 뭔가를 해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전하는 것은 죄인들에게 그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열심을 자극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도록 비추기고, 스스로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얻도록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할례를 전하면 열성적인 유대인들과 부딪힐 필요가 없고 핍박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바울은 인기를 포기했고 박해를 선택합니다. 십자가의 걸림돌을 짊어지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갑니다. 진리에 순종합니다. 바울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달려갔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바울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마땅히 감수해야 할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따라오는 박해를 피하려고 다른 길을 가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으로 인해 박해를 기뻐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도전이 되지 않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감당했던 박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4:29)

이제도 그러합니다. 박해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지금도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은 육체를 따라 난 자들에게 박해를 받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러했고 예수님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그러했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따름으로 인해 박해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님이 그러한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을 따라 진리의 길을 갈 때 믿음의 경주에서 박해는 당연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된 소식은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그들의 본성에 반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전하면,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전하면,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느 하나만을 맞다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지한 태도라면 그것이 뭐든지 간에 무엇을 믿든지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오직 이라고 말하고 하나뿐인 진리를 말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을 말하면,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진리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그러한데, 오직 하나의 길 밖에 없는데, 예수님 말고는 다른 구원이 없는데 어떡합니까? 사람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리이냐 진리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가끔 교회로 신청하지 않은 책들이 우편으로 올 때가 있습니다. 책을 주는 건 좋은 일인데 문제는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최근에도 꽤 두꺼운 책이 한 권 왔는데 잠깐 보니까 자신이 재림한 예수이고 성경의 모든 말씀이 자신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 천국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거짓 가르침인데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것들은 아주 교묘해서 거짓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가르침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살피며 나의 믿음의 경주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미혹하는 매력적인 가르침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룩을 제거하는 것처럼 제거해야 할 걸림돌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때 계속해서 우리에게 도전이 되는 것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와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와 죄를 인정하는 않으려는 다양한 도전들과 맞서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진리를 따라 순종하며 달려간다면 진리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걸림돌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고집부리지 말고 살짝 타협하면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데 아직도 그렇게 꽉 막힌 생각으로 사냐고‘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가 붙들고 있는 진리를 놓으라고 십자가의 걸림돌을 제거하라는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붙잡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갈 것입니다. 십자가의 걸림돌을 만나더라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씀에 따라 박해를 기쁨으로 감당할 것입니다. 주의 교훈으로 말씀에 따라 아이들을 훈계할 것이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죄를 분명하게 죄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다른 길은 없음을 선포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은 조금의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전할 것입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누가 와서 어떤 말을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진리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진리에 순종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주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데 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주의 깊게 살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에게서 온 것인지, 그 부르심에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소하다고 작다고 가벼운 거라고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때에 정리하지 않으면 그 영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온 덩이에 퍼질 것이며 어려움이 될 것입니다. 정리해야 할 것은 단호하게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결말을 기억하십시오. 그 결말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걸림돌은 달리기를 멈추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걸림돌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연약함으로 걸림돌에 넘어지셨다면 회복하십시오. 극복하십시오. 일어나서 다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그 길에서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달리고 있는 순간순간의 모든 과정들이 주님의 선하신 손 안에 있음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걸림돌들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