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본문: 누가복음 24장 36절~49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증인으로 삼는 모습을 살펴볼 것입니다. 4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사용된 “증인”은 헬라어로 “마르투스”입니다. 이 헬라어 단어에서 영어 단어 ‘martyr’가 나왔는데, 그 뜻은 “순교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 대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행 2:32; 3:15; 5:32; 10:39; 13:31).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 역할을 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몸에 불이 붙어도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원래부터 이들이 이렇게 담대했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데 둔하고 의심 많고 믿음이 약하고 두려움이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 되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의 담대한 증인이 되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담대한 증인이 될 수 있을지 배우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의 증인으로서 우리의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혜와 힘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 살아계신 예수를 보았다(36~43절)

첫째로, 의심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담대한 증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살펴본 것처럼 몇몇 여인들과 베드로 그리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제자들은 여전히 도마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막 16:14). 예수님의 죽으심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심 많은 제자들에게 살아계신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때는 36절에 나오듯 “이 말을 할 때에”, 즉 엠마오에서 다시 올라온 두 제자가 그들이 만난 살아계신 예수님에 관해 말할 때입니다. 장소는 예루살렘 성안에 있던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다락방이었을 테고, 이 집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눴던 곳이자 추후 예루살렘 교회의 첫 예배당이었을 바로 그 장소입니다.

이 다락방엔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었고(눅 24:33),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습니다(요 20:19). 그런데 그때 홀연히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눅 24:36)

예수님의 인사말은 축복과 위로의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눅 2:14, 7:50; 행 10:36), 제자들은 오히려 깜짝 “놀라고 무서워” 했습니다(37절). 예수님이 닫힌 문들을 통과하여 갑자기 그들 한가운데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예수님이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이긴 하지만 몸은 없고 영혼만 떠돌아다니는, 그래서 벽을 마음대로 통과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마음에 요동치고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라고 물으시고는(38절), 그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시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39절)

우리는 도마만 의심이 많은 제자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보십시오. 열한 사도 모두가 의심 많은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에게 “손과 발을 보이”셨습니다(40절). 유대인의 겉옷은 길게 내려와 팔다리를 가리기 때문에 예수님은 옷을 걷어 손과 발을 직접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옆구리도 보여주셨는데(요 20:20), 예수님이 보이신 부분은 모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흔적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 봐라, 지금 너희 눈앞에 살아 있는 내가 바로 너희가 본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예수다’ ‘자 나를 만져보아라, 나는 유령이 아니다. 나는 참으로 부활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의심이 걷히고 예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생겼을까요? 41절을 보면 반신반의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겼습니다(41절).

마태의 기록을 보면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이 사건 이후로 갈릴리에서 대위임령, 즉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받았는데, 그때도 그들 중에는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마 28:17). 그만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정말 기쁜 일이었지만 동시에 쉽게 믿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그들의 믿음을 확실히 세워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41절). 그들은 예수님께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고(42절), 예수님은 그것을 받고 그들 앞에서 잡수셨습니다(43절). 영은 음식을 먹을 수 없지만, 예수님은 음식을 드셨습니다. 확실히 살아났다는 것을 제자들 앞에서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굳건해지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의심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담대한 증인이 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그들이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증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지어낸 이야기의 증인이 아니었습니다. 보고 듣고 만져본 살아계신 예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열두 사도가 오순절에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1). 

또 성전 미문에 앉은 병자를 고치고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 3:15).

공회 앞에 끌려간 사도들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에게 끌려가 한 말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행 5:32).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이렇게 담대히 전도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려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 10:39-41).

의심 많던 그들이 오순절에 수천 명의 사람 앞에서 담대히 예수를 증거한 것, 공회 앞에서 채찍질을 당했어도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한 것, 예상되는 유대인의 반대를 무릎쓰고 이방인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공회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베드로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

의심 많던 제자들이 주님의 담대한 증인이 된 것은 첫째, 그들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주님의 증인으로서 담대히 주님을 선포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같은 신화를 믿고 전하는 증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조상신이나 산신령같은 귀신이나 우상을 믿고 전하는 증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 땅에 사셨다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분명히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진 증인들의 증언이 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계신 예수님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2. 살아있는 말씀을 알았다(44~48절)

살아계신 예수를 본 것으로 제자들의 의심은 걷혔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한 가지 더 분명한 증거를 제자들에게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이 둔한 그들이 예수님의 담대한 증인이 된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말씀을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자주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제자들은 정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는 것처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막 8:17; 요 8:43).

예수님이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눅 18:31-34).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집어넣으라고 종용하시면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간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53-54). 하지만 베드로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요한은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이 빈 것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지만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였습니다(요 20:9). 

성경에 대한 그들의 지식,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무엇을 하시겠다고 구약성경에 약속하셨는지 정말이지 그들은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가 계획하신 분명한 뜻이라는 걸 알려주셨습니다. 특별히 44절부터의 말씀은 다락방에서 한 번 예수님이 설명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승천하기 전까지 약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쳐주신 내용입니다(행 1:3).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4-45절)

예수님은 당시 구약성경을 구분하는 법대로 “모세의 율법”(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선지자의 글”(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의 전선지서,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후선지서), 그리고 시편(욥기부터 아가서까지의 시가서)에 “나를 가르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구약 성경의 모든 책에서 나를 가리켜 한 말, 곧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대로 나에게 모두 이뤄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이미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둔한 그들의 마음에 확신을 주고자 다시 한번 그들의 마음을 열고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살짝 전개를 해보면, 예수님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여인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자가 되셨습니다(창 3:15; 갈 4:4). 선지자 미가의 말씀처럼 베들레헴에 탄생하셨고(미 5:2; 마 2:1),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동정녀에게 나셨습니다(사 7:14; 마 1:18). 그분 앞서 사자로 요한이 보내심을 받았고, 선지자 이사야가 이를 미리 예언했습니다(사 40:3; 마 3:1-3). 예수님은 스가랴 9장  9절말씀처럼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고(눅 19:35-38), 이사야 53장 말씀처럼 배척을 당하셨습니다(요 7:5). 유다에게 배신 당한 것도 선지자 스가랴의 예언대로였고(슥 11:12; 마 10:4), 채찍에 맞고 죄인을 위해 고난을 당한 것도 이사야의 예언대로였습니다(사 50:6; 53:5; 마 26:67; 벧전 2:24). 손과 발이 못에 찔리고 옆구리에 창을 찔린 것은 시편에 이미 기록되었고(시 22:16; 요 19:34).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 강도들과 함께 못 박힌 것, 부자의 무덤에 묻힌 것 역시 하나님의 계획대로였습니다(사 53:12, 9; 눅 23:3; 마 27:38, 57-60). 예수님의 부활 역시 시편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습니다(시 16:8-10; 행 13:33-35).

요약하면 예수님은 확실히 하나님이 보내신 자 그리스도였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모든 것을 탄생부터 죽음, 부활까지 모든 삶을 통해 성취하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그리고 변화산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두 이렇게 확증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17:5; 벧후 1:17).

예수님은 곧이어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증인이 돼라”는 사명이었습니다(48절, 행 1:8). 그들이 전달할 내용은 46-47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주 담대하게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선포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담대하게 요구합니다(행 3:19). 옛날 그 제자들이었는가?생각될 정도로 그들은 확신에 차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당시 구약성경의 전문가들이 볼 때 이들은 학문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지만(행 4:13), 구약성경 이곳저곳에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정확하게 사용하여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담대하게 증명합니다(행 2:36). 스데반은 구약의 역사를 개관할 정도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꿰고 있었습니다(행 7). 

서신서를 읽어보면 적재적소에 그리스도를 증명하는 구약의 말씀이 계속해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들이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어디서 이런 확신이 생겼을까요?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성경을 풀어 설명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둔한 제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것은 그들이 살아있는 말씀을 마침내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그들은 마침내 성경이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외에 다른 이로써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춰봤을 때,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행 4:12). 오직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리스도”였습니다(행 3:20; 5:42). 오직 예수님만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였습니다(고전 15:3-4).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세상의 구세주로 담대히 선포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창세기를 펼치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출애굽기를 펴면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실 예수님을 만납니다. 레위기와 민수기를 통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백성의 죄를 대신하실 예수님을 보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셔서 모든 민족에게 미칠 하나님의 복이 될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역대서를 보면 다윗의 자손으로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실 예수님을 만나고, 선지서를 보면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고난받으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종,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시편은 예수님을 통해 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신약성경으로 넘어와 복음서는 오신 예수님이 확실히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심을 목격자를 통해 증언하며, 사도행전은 이 목격자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복음, 곧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진리가 예루살렘으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된 역사를 보여줍니다. 서신서는 참된 구원, 즉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성경을 알면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알면 다른 구원자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임을 확실히 증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구원이 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전파할 수 있습니다.

3. 살아계신 성령을  입었다(49절)

제자들은 살아계신 예수님의 목격자였고,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도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그들을 증인으로 삼기 위해 한 가지 일을 더 하셨습니다. 증인의 역할을 다 하도록 능력을 더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연약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담대한 증인이 될 수 있었던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성령을 입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49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볼지어다.” 앞으로 주님이 하실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며, 예수님이 아버지께 구하여 그들에게 보내실 성령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열한 제자에게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여러 차례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제자들이 증언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3-14)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그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성령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그들에게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연약한 제자들이 힘 있게 예수님을 전파하는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 “위로부터” 입혀진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하늘로부터 성령이 입혀졌습니다(행 2:28).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선포했습니다(행 4:8). 무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행 4:31).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행 7:55). 사도 바울이 거듭날 때 성령이 충만했습니다(행 9:17). 안디옥교회 장로 바나바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고(행 11:24), 복음을 선포하러 땅끝까지 이른 제자들은 환난과 핍박 중에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행 13:52).

성령이 능력을 더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힘 있게 예수님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진리를 가르쳐주시고, 진리로 우리 마음을 감화시키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매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있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서로 다릅니다. 성별도 다르고, 직업도 다릅니다.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 한 가지 분명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는 모두 이 목적을 가지고 삽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일 주님이 오신다고 해도 오늘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내일 주님이 오시면 결혼, 취업은 못 하지만, 주님은 증거할 수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할 수 있지만, 전도는 이 땅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전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목격자의 확실한 증언과 성경의 확실한 약속, 그리고 성령의 강력한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있는 그곳에서 담대한 예수의 증인이 되십시오. 잃어버린 한 영혼이 돌아올 때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질 정도로 우리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오시면 우리가 결산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신 달란트로 얼마나 충성스럽게 주님을 나타냈는지 결산할 날이 올 것입니다. 깨어 준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