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
본문 : 누가복음 1:5~25
설교자 : 최  종  혁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22.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24.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지난 설교의 주제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누가의 시대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여기서 ‘이루어졌다’는 말은 ‘성취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누가가 우리 중에서 ‘이루어진 사실’이라고 말할 때 이는 우리 중에서 ‘성취된 사실’이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성취되었다는 것은 어떤 일이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누가의 시대에 이루어진 일이 누구에 의해 계획되고 성취되었습니까?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48절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모든 십자가의 사역을 끝내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4-48).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실 모든 일이 구약성경에 기록되었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예수님을 통하여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누가는 그 제자들의 그 증언을 바탕으로 누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누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성경에 기록했을까요? 누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그 일들을 이루게 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도 전에 구원의 계획을 세워놓으셨고 그 뜻을 원하시는 때에 정확하게 이루셨습니다. 인류는 역사를 인간이 이루어 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역사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고 이루고 계시며 이루어 가고 계시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런 역사들을 이루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적과 섭리(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기적이라고 하며, 간접적인 개입을 섭리라고 말함)를 통해 그의 뜻을 계속해서 이루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사역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저자인 ‘누가’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누가는 역사가이자, 의사, 신학자, 목사였습니다. 그는 누가복음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신 역사를 하나의 동떨어진 역사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계획의 한 페이지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은 구약성경이 끝나는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말라기 4장 5-6절입니다.

“보라 너희는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이것이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즉, 메시야가 이 세상의 왕으로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누가복음 1장에서도 그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 1:17).

천사가 얘기해주었던 이 세례 요한이 바로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엘리야’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내용은, 세례 요한이 태어날 것이 예고된 사건입니다. 말라기에 따르면 “공의의 해가 떠오르기 전”의 상황입니다.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시면서 어떻게 이 작은 한 가정을 사용하시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5절). 복음서 말씀에는 헤롯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여기서의 헤롯은 ‘헤롯 대왕’이라고 불리우는 왕으로, 예수님의 탄생 조금 이후에 죽은 왕입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헤롯들은 그의 아들들입니다. 헤롯은 이두메인, 곧 에서의 후손이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는데, 헤롯은 유대 지방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그 위의 갈릴리, 시리아와 베레아 등 유대인들이 사는 모든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헤롯은 왕으로서 농업을 장려하고 경제적 기반을 잘 닦아 놓는 등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자들은 아내와 장모, 아들들까지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그는 동방박사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의 탄생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이를 모두 죽였던 왕입니다.

헤롯 왕의 시기는 우리 나라의 일제 강점기처럼 어둡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단지 헤롯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으며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그들이 다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였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말씀을 주시고 나서 약40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암흑기를 거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은 에돔 출신(에서의 후손)으로, 정통성을 중시하는 유대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헤롯은 성전을 웅장하게 건축했지만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태양신을 숭배하는 독수리 상을 만들어놓았고, 그 성전 안에서 로마황제를 위한 희생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 성전의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착취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듯 당시 상황은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그만큼 깊었다는 것은 이제 해가 떠오를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가 절정을 맞이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한 제사장 부부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5). 당시에 제사장은 약 2만 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제사장을 24개의 반열로 나누고 각 반열이 각각 차례를 돌아가며 성전에서 섬겼습니다. 그리하여 각 반열이 일 년에 두 번씩 일주일을 섬기게 했습니다. 사가랴는 그가 속한 여덟 번째 아비야 반열을 따라 봉사를 하러 성전으로 갔던 것입니다. (참고로 사가랴는 아비야의 직계 자손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맨 처음 스물 네 반열이 있었고 포로로 잡혀간 후 그 중 네 반열만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그 네 반열을 다시 스물 네 반열로 나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름은 전에 있었던 처음의 스물 네 반열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러므로 사가랴가 아비야의 직계 자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가랴는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800~900명 가량 되는 제사장들 중 평범한 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사가랴’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30명 정도 등장하는데,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았습니다. 영적, 사회적으로 암흑기였던 시기에 사가랴의 부모는 하나님께 당신의 약속을 기억해달라는 마음으로 이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의 집안 역시 제사장 가문으로서(아론의 자손) 그녀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맹세이시다, 분깃이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누가는 이 두 사람의 ‘영적인 상태’와 ‘육적인 상태’를 알려줍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6). 이것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우리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제사장들에 대해서 형식적이고 종교적이며 외식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지만, 이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앞에서 의인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참된 의인이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이들도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영적으로는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육적인 상태는 달랐습니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7). 엘리사벳이 불임이었고 그들은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지금도 앞으로도 자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나이가 많았다는 것은 엘리사벳의 나이가 60세 이상이었던 것을 말합니다. 이 부부는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아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자식이 많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었습니다. 반대로 자식이 없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거나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결과로 자식을 안 주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문헌에 따르면 랍비들이 하나님 앞에서 파문을 당하는 유형으로 첫째가 ‘유대인으로서 아내가 없는 사람’, 또는 ‘아내는 있는데 자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자식이 없으면 이혼 사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60세가 넘도록 자식이 없는 것은 사람들에게 많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할 때 하갈에게 멸시를 당한 것이나, 라헬이 남편에게 “자식이 없어서 죽겠다”고 했던 말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뭔가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상황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실 때, 삼손과 사무엘을 주실 때도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일 년에 두 번 성전에 가서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진실히 믿고 섬기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기쁜 마음, 들뜬 마음으로 갔을 것입니다. 9절에서 사가랴에게 이보다 더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데, 바로 제비에 뽑혀서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분향을 하는 일은 제비에 뽑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게 한번 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육십 평생을 제사장으로 살아도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분향하지 못했던 사가랴가 지금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일생에서 딱 한 번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들뜬 마음, 경건한 마음, 엄숙한 마음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분향하는 단이 있는데 그 위에 숯불을 놓고 향을 뿌려야 했습니다. 그 향의 연기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의 상징이었습니다. 분향하는 시간에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를 하고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의미로 분향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사가랴는 그러한 큰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아마도 그 안에서 작은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긴장했을 것이고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 볼 성소 안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가랴의 일생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큰 그림에서 보면 평범한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말로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13-16). 사가랴는 아마 이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삶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7).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때에 천사를 보내신 후로 500년 동안 인간에게 천사를 보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분향제를 드리고 있는 순간 그 오랜 침묵을 깨시고 천사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가랴 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가랴는 놀라고 무서워하였습니다. 천사를 보자마자 ‘아 이제 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사가랴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사가랴는 무슨 기도를 하였을까요? 천사가 너의 간구함이 들렸다고 말했는데 사가랴는 어떤 간구를 했을까요? 자녀를 달라는 기도였을까요? 사가랴가 온 백성의 대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분향제를 드리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떤 기도를 했을 지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과 메시야의 도래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나타났을 때 아마도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일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사가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집을 통해 그 큰 일을 이루게 하심에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처음에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18). 사가랴가 이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묻습니다. 자신들 부부가 나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는 천사의 말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며, 무슨 증거로 ‘내’가 이것을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천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19). 천사는 그가 하나님 앞에 있는 가브리엘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가브리엘은 구약에서 다니엘에게 나타나 인류의 역사를 펼쳐 보여주었던 천사였습니다. 그 천사가 나타나 말하고 있는데 사가랴는 그에게 표적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는 증거를 요구하는 사가랴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표적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표적이자 심판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었는데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놀라운 메시지를 직접 받은 사가랴인데 정작 그는 그 사실을 말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상관없이 자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다만 사가랴는 역사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분향은 그리 오래 걸릴 일이 아닌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사가랴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후에 성전 밖으로 나온 사가랴를 본 백성들은 그가 안에서 환상을 본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말을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듣지도 못하게 되어 사람들이 얘기할 때 몸짓으로 말하고 사람들도 몸짓으로 말해야 했습니다. 사가랴는 그 놀라운 일을 직접 보고도 말하지 못하게 된 자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이 왜 그랬는지 회개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후 엘리사벳은 천사의 말대로 아기를 잉태하고 사가랴는 그 예언이 성취된 이후에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가랴라는 한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누가는 서문에서 데오빌로 각하가 알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해주려고 이 글을 쓴 것이라 말합니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본 예수님의 삶은, 유대라는 조그만 땅에서 한 청년이 일어나 무언가 큰 일을 할 것처럼 하다가 죽어버린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통해서 계속해서 사도들이 일어나고 복음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데오빌로도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의 데오빌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거나 믿기 직전의 상태로 보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에서 일어났던 한 혁명가나 교사가 아니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예언해 오셨던 바로 그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구약의 마지막에 쓰인 예언이 신약에 이르러 마침내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그분께서 친히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당신의 시간에 이루십니다. 그것을 미리 예언하셨고 기적과 섭리로 이루셨습니다.

오늘 사가랴의 모습을 보면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본 사가랴의 모습은 사실 우리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지만 때로는 연약해서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연약한 사가랴를 통해 놀라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내가 빠지면 안 돼’라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그 분 혼자서 일하실 때 가장 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며 그 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그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큰 기쁨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사가랴가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