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축복,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다

본문 : 룻기 2장 1-7절

설교자 : 이병권

룻 2:1-7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축복이란 말을 아무데나 함부로 쓰다 보니 축복이란 말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이라고 하면 기복적이고, 지상적이고,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가짜입니다. 참된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을 정말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축복이라면, 참된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정말 우리 인생을 의미 있게 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축복,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축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축복,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보고, 그 교훈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장을 보면 한 남자가 소개되는데, 그의 이름이 나옵니다. 1장은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전체가 여자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근데 2장에서 드디어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1) 1절은 우리에게 보아스란 사람에 대해서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는 이 사람이 나오미의 죽은 남편인 엘리멜렉의 친족이라는 사실입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을 대신해서 그 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보아스가 유력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유력한 자”라는 단어는 단순히 돈 있는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힘이 있는 사람, 재력이 있는 사람, 인격적인 힘과 가치를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단순히 돈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인 힘이 있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룻기를 읽는 독자는 보아스의 등장으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 하며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짝 보아스를 설명한 다음에, 이야기는 다시 룻에게로 돌아옵니다. 2절입니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나오미와 룻이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그 때가 보리 추수를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지금 바깥에서는 베들레헴 온 마을이 분주하게 추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두 여인에게는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룻이 나섭니다.

이스라엘 율법에는 추수할 때 이삭이나 과일들이 떨어졌을 때 다 가져가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라는 명령이 있습니다(신24:19-22). 룻은 아마도 그 율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러 가겠다고 말했고, 나오미도 허락을 합니다.

룻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입기를 바라면서, 마음이 후한 사람의 밭으로 가기를 바라면서 길을 나섭니다.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고, 모든 게 낯선 그런 곳에서, 누구의 밭인지도 모르고, 여자 혼자서 이삭을 줍기 위해 나가는 겁니다. 아마 마음을 졸이며 갔을 겁니다. 그런데 갔는데, 마침 그 들어간 밭이, 이 무슨 운명 같은 일입니까? 그 밭이 바로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3절에 보면,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기 저자는 “우연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건 성경에서 잘 안 쓰는 단어인데,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쓴 것입니다. 저자는 “우연히”라고 말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게 진짜 우연인지, 우연이 아닌지 생각해볼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결코 우연히 된 일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우연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들어간 그 날, 보아스가 그 밭으로 왔습니다. 4절에 “마침”이라고 되어 있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짠”하고 보아스가 등장한 것입니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이건 마치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드라마에서 나오면 흔한 장면입니다. 어느 날 여자 주인공이 남편과 다른 여자가 만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충격을 받고서 뒤돌아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누군가와 부딪힙니다. 그런데 부딪힌 사람을 보니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진 첫사랑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이와 같은 온갖 우연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드라마에서 이런 우연을 남용하다 보니까, 우리가 지금 이 말씀을 봐도, 이게 정말 놀라운 일인데, 별다른 감동이 없는 겁니다.

본문에서 룻이 보아스의 밭으로 간 것, 그리고 보아스는 룻이 일하기를 시작한 바로 그 날에 그 밭에 가서 둘이 만나게 된 것, 이것이 그냥 우연의 일치일까요? 룻기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답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읽어보면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연히”라고 표현했지만, 독자는 “우연? 당연히 아니지,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밭에 등장한 보아스는 일터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꾼들을 축복합니다. 4절입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보아스는 밭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하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축복입니다. 보아스는 이러한 축복의 말씀으로 문안하며 복을 빌어줍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들도 보아스에게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구합니다. 보아스와 그의 종들의 이런 인사는 인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던 사사 시대에, 서로가 하나님 안에서 축복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보아스는 헤세드의 사랑을 실천하는, 약자를 존중하는 그런 인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한 낯선 여인이 보아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보아스는 저 여인이 누구냐고 일꾼들을 감독하는 사환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사환은, 그녀가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모압 소녀라고 대답합니다. 이방여인이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것, 베들레헴에 이런 일은 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압에서 온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온 사방에 퍼졌을 것입니다. 보아스도 그 소문을 들었는데, 지금 처음으로 그녀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환은 보아스에게 말합니다. 7절입니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와 자신의 양식을 위해서 정말 성실하게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삭을 줍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생각해보십시오. 보아스는 이 말을 듣고 더 마음이 뭉클해졌을 것입니다. 룻을 생각하는 긍휼의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이어질지 기대가 되십니까? 그럼 이제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축복에 대한 교훈을 세 가지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축복,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룻은 자기 시어머니를 따라서 낯설고 무서운 외국 땅으로 왔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땅에서 이방인입니다. 룻기 저자는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계속해서 룻에게 “모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모압 여인, 모압 지방, 모압 소녀’ 아는 사람도 없고, 지리도 익숙지 않고, 문화도 다른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룻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 같으면 무서워서 밖에도 안 나가고 집에만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뭔가를 하기보다 시어머니를 붙잡고, 시어머니가 뭔가 해주기를 바랐을 겁니다. 시어머니는 여기가 고향이고, 아는 사람도 있고, 익숙한 곳이니까 당연히 시어머니가 앞서서 뭔가 해주기를 기대할 것 같습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면서,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둥지 속에 있는 아기 새처럼 하늘을 향해 입만 벌리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룻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압 여인 룻은 가만히 앉아 있기를 거부하고, 일어나서 나갔습니다. ‘내가 다른 것은 못하더라도 이삭은 주울 수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거라도 해보겠다는 겁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그 모든 장애 요인을 무릅쓰고 그녀는 자기 삶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결심했고 일어났습니다.

 

상황을 핑계 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상황이 어려우십니까? 장애요인이 많으십니까? 우리가 어렵다 하더라도 본문의 룻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룻은 홀로 시어머니를 모시며 한 끼 먹을 양식을 걱정했던 사람입니다. 여러 가지 나에게 주어진 불편한 환경들을 핑계로 삼지 맙시다. 상황의 피해자로 살지 맙시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 맙시다. 그것은 룻이 해야 될 말인데, 그녀는 이삭이라도 줍겠다고 나갔습니다. 나는 안 돼! 나는 원래 이래! 이런 식의 자기연민은 갖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며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은 마귀의 먹이가 되는 일입니다. 지나간 일을 한탄하거나 후회하며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탓하지도 맙시다.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내 삶에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하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오. 나가서 사람을 만나십시오.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성경을 펴고 읽으십시오. 관계 회복을 위해 편지를 쓰십시오. 연락을 하십시오. 생각만 하지 말고, 하다못해 줄넘기라도 하십시오. 뭔가를 해야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죠. 그냥 팔짱끼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미루지 말고 하십시오. 미루는 것은 패배자의 습관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의 길로 이끄실 것입니다. 두 손 놓고 있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로 우리는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룻은 보아스라는 관대한 사람의 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정말 하찮은 일입니다. 밭에서 곡식을 거두는 일꾼들은 하층민인데, 이삭을 줍는 일은 그 일꾼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혹시라도 떨어뜨린 것이 있으면, 그것을 허리 굽혀 주워야 합니다. 하루 종일 주워봐야 얼마 남지도 않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힘들고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는 불편한 일입니다. 하지만 룻은 그렇게 하찮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잠깐 쉬는 것 외에는 아침부터 계속해서 일했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허리를 굽혀서, 계속해서 열심히 일했다는 겁니다. 그녀의 성실함은 보아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하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일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사실 사람에게는 하찮은 일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찮은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충성된 종에게 했던 칭찬을 생각해보십시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커다란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처음부터 큰일을 맡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 작은 일들, 하찮은 일들, 밑바닥의 일이 주어졌고, 그 사람들은 그 일을 정말 탁월하게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랬을 때 더 많은 일들이 맡겨졌고, 큰일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은 일에 신실하지 못하면 결국 삶을 놓치게 되는 겁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을 얻고, 축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어진 작은 일에, 일상의 일에, 주목받지 않는 그 일에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크든 작든 관계없이 그 모든 일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축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축복,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범사에 그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봤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왔을 때 보리 추수할 때였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우연히 어느 밭에 갔는데, 그 밭은 친족인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룻이 일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날에 마침 보아스가 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을 주목하여 봤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인도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잠언 3장 5절과 6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든 일에 그분을 인정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전심으로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나의 삶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룻을 보면 이러한 말씀의 원리가 적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가벼운 결정이 아닙니다.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기의 가족과 자기의 나라와 자기의 문화와 관습을 다 포기했습니다.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맡긴 겁니다. 그래서 11절과 12절을 보면 보아스도 룻에게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분의 날개 아래로 보호를 받으러 온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룻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그분께 맡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분의 선하신 뜻 가운데 그녀를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거꾸로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면 그 다음에 내가 하나님을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맡기면,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거꾸로 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고 먼저 그분을 인정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축복의 길로 이끄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룻의 이야기를 통해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케 하는 축복의 비결‘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고 범사에 그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분을 신뢰합시다. 그리고 잠잠히, 그리고 간절히 그 하나님을 바라는 우리가 됩시다. 그렇게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제가 신뢰하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그 분 앞에 엎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된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