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죄인의 구주 예수님
본문 : 요한복음 8장 1~11장외
설교자 : 염  창 훈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저는 오늘 이 본문 말씀으로 죄인의 구주 예수님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문에 기록 된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실 때 일어난 일입니다. 요한복음 7:53-8:2을 보면 전날에도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 감람산에 가셔서 밤을 지내시고 아침에 성전에 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누가복음 9장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 9:58).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주무실 곳이 없어서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감람산에서 지내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풍요롭고 편안하게 사는 것만 추구하는 우리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한쪽에서 여러 사람들이 한 여자를 끌고 옵니다. 요즘 TV에서 자주 보는 장면 같습니다. 경찰들과 기자들, 여러 시민들 앞에 얼굴을 가리고 서 있는 범죄인 말입니다. 간음한 이 여인은 그보다 훨씬 비참한 모습으로 서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간음하다 잡힌 사람은 돌을 쳐서 죽이라는 율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형장에 끌려 나온 죄수의 모습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녀는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인 여자입니다. 서기관은 성경을 필사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인쇄술이 없었기에 성경을 일일이 필사하는 일을 하였고,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해석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은 거룩하며 죄에서 구별된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열심히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 누가복음 18:10-14에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정죄하고 무시하며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주님의 평가를 들어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마 23:1-5). 이들은 외식자들이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3-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한척하나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는 잘 밝혀내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죄는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눈에 티를 빼겠다고 합니다. 더러 믿는 성도들 중에도 이런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주님은 죄인의 친구가 되시고 그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데, 자신의 죄는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만 비판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인을 잡아온 이유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시험하려고 했습니다(6).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어겼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니 하나님을 모독하는 죽을 죄를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5:18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이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도록 하여 죽일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간음 중에 잡힌 이 여인을 살려 주라고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게 됩니다.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는 간음한 남녀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간음이란 결혼한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한 부부 이외의 모든 성적관계는 하나님께 미워하시는 죄입니다. 출애굽기 20:14의 십계명에도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신명기 22:22, 24에는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면 간음한 남녀는 반드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메시아가 아니라고, 백성들을 선동할 것입니다.

반면에 돌로 치라고 말한다면 당시 유대인들을 다스리던 로마 정부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도록 압력을 넣습니다. 이때 빌라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요18:31)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죽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로마 정부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가르친 예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으며 무자비한 자라 트집을 잡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병들고 멸시 받는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트집 잡는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종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증언했습니다.(마 12:1-21).

이들은 예수님이 궁지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진퇴양난입니다. 죽이지 말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요. 죽이라고 로마정부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7절에 그들이 계속 질문 공세를 합니다. 마치 오늘날 기자들처럼 말입니다. “신명기 말씀을 아십니까?” “증인들이 여기 다 있습니다.” “보세요. 이 여자는 얼굴도 못 들고 죄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돌로 칠까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죄를 깨닫게 하심

6, 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땅에다 손가락으로 무엇을 쓰고 계십니다. 그리고 일어나셔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손가락으로 땅에다 무엇을 쓰시고 계십니다. 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신명기 17:5-7에 범죄자들에 대한 사형 집행절차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확실한 두세 증인이 있어야 하고 증인이 먼저 돌을 던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돌을 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웬일일까요?

9절에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 18:4에는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음죄 뿐 아니라 어떤 하나님의 계명도 어기면 죽을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은 하나님만 섬기지 않는 것, 우상숭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 안식일에 일하는 것,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탐심 모두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중 하나만 어겨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말씀에 비춰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들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니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었습니다. 7절에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다 떠나갔습니다. 여인을 끌고 온 자들도 다 떠났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이 죄인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이들이 주님 앞을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하나님, 구원자 예수님을 몰라보고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생수를 달라는 수가성 여인에게 주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남편을 두고 부도덕하게 살던 여인에게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양심의 가책은 받았지만 주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떠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아직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첫 설교제목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라”였습니다(막 1:14,15).

저는 19살 때 구원을 받으려면 회개해야 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밤에 하나님께 기도 할 때 어렸을 때 남의 집 과일을 밤에 몰래 따먹은 일, 가게에서 만화책을 훔친 것들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모든 죄를 용서 받게 되었습니다.

아직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저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우리 엄마도, 동네 분들도 다 착하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부모님 모르게, 교회 사람들 몰래 지은 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욕하는 것,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이 죄옥 갈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은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죄인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10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너를 고발 하던 자들이, 정죄하던 자들이 없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여인이 “주님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주님은 11절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죄가 없으십니다. 고후 5:21에 예수님을,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을 돌로 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정죄 하지 않으셨을까요? 요한복음 3:17에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으며 누가복음 19:10에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17에는 이렇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내가 너의 간음 죄 대신 죽으러 왔다” “너를 구원하러 왔다” “죄를 회개하고 나를 믿으면 너의 모든 죄를 용서 해 주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은혜로우신 말씀입니까? 여러분 가운데 죄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죄를 뉘우치고 주님께 나오는 모든 이들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얼마나 은혜로우신 말씀입니까?

11절 뒤 부분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주님은 우리 죄를 용서 해주실 뿐 아니라 주님을 만난 후에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죄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믿기 전에 지은 죄로 충분하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4:3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6:9-11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죄를 계속 짓는 것은 구원 받지 않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구주이십니다. 구원 받으려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회개 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한 연회장 앞에 어린 소녀가 울고 있었습니다. 직원이 왜 여기서 울고 있냐고 물었더니 저 연회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왜 들어갈 수 없냐고 물었더니 이 연회장에는 장애인 어린이들을 위한 파티를 하고 있는데 자기는 건강해서, 장애가 없어서 들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죄 없는 사람인 척 하지 맙시다.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들만 비난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맙시다. 오히려 자신을 바로 보고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 하고 용서를 구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믿는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맙시다. 죄는 구원 받기 전에 지은 죄로 충분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이 늘 우리 마음속에 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