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도가 막힐 때
본문 : 사도행전 16장
설교자 : 조정의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사명이다. 그런데 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자주 잊어버릴까? 복음의 가치, 위임된 명령의 중요성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또한 전도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전도의 성공률이 높다면 아마 신나서 할지도 모른다. 전도는 너무 자주 여러 가지 이유로 막힌다.
전도가 막힐 때 우리는 보통 낙심한다. 하지만 이 문구를 기억하자: 전도가 막힐 때, 포기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사도행전 16장 본문에서 1) 전도가 막히는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때 2) 바울과 동역자들이 했던 일,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본다. 그리고 3) 그 결과 주님께서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다(AD 50~53년. 15:36~18:22).
1. 전도가 막힐 때
① 팀의 내부 갈등(15:36-41)
시작부터 전도는 위기에 봉착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히 다투어(화, 짜증, 격분, 하나님의 진노) 피차 갈라서”는 일이 생겼다(39절). 전에 팀을 버리고 떠난 바나바의 조카 마가 요한 때문이었다(골 4:10). 두 사람 입장 다 일리가 있다(사람 vs. 사역). 선교팀 두 리더의 갈등은 오늘날에도 전도의 큰 장애물이다.
② 전도 계획 막힘(16:6-10)
바울 팀은 육로를 통해 갈라디아 지역에 세운 교회를 돌아봤다. 칭찬받는 일꾼 디모데를 얻고, 다음 행선지로 아시아를 택했다. 에베소는 아시아 전역에 복음을 선포할 전초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성령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6절). 내려가는 것이 막혔으니 올라가면 어떨까?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통과하여 무시아에 이르렀고 거기서 북쪽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7절). 결국, 아래, 위 다 막혀서 무시아에서 항구 도시인 드로아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도 계획이 연거푸 막히면 참 힘 빠진다. 어렵게 만든 기회마다 일이 생겨 구도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되면 얼마나 좌절되는가? 주님이 막으시는 건가? 그만해야 하는 건가?
③ 전도 전략 실패(16:11-13)
바울, 실라, 누가, 디모데 이렇게 전도 팀(우리, 11절)은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 빌립보에 당도했다(12절). 이곳은 퇴역한 로마 군인이 많은 로마 식민지로 유대인이 드물었다. 회당에 있는 유대인과 유대교로 전향한 이방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나아가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점진적으로 선포하는 전략이 이번엔 들어맞지 않았다. 한 주석가의 말에 따르면 빌립보 성문에는 포교 활동을 엄격히 금지하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교를 따르는 소수 신도들은 문밖 강가에 나가서 정결 예식과 기도로 예배했다(13절). 바울 팀도 성안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강가에 나가 거기 모인 여자들을 만났다(13절, 16절). 주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온 결과가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더 생산성 있는 장소로 빨리 이동하는 게 낫지 않은가?
④ 전도 방해 공작(16:16-24)
기도하는 곳에 가는 길에 점치는 귀신 들린 어린 여종 하나를 만났다. 그녀는 여러 주인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19절). 그녀는 며칠을 따라다니면서 계속 소리 지르며 심히 괴롭혔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외쳤고, 귀신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즉시 나왔다(18절).
이 놀라운 표적은 기도하는 곳에서 며칠간 전파된 복음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나타내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한편 오랜 세월 귀신과 인간 주인들에게 괴롭힘당한 어린 여종에게는 놀랍고 감사한 구원의 은혜였다. 그러면 이 일이 복음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기폭제가 될 것인가? 아니다.
이 일로 바울과 실라는 여종의 주인들 손에 끌려가 장터에 있던 관리 앞에 서게 됐다. 제대로 된 심문이나 재판 없이 매를 맞았다. 옷을 벗기고 매로 치고 감옥 깊은 곳에 차꼬에 든든히 채워 가뒀다(22-24절). 복음을 전하다 받는 고난은 때로 우리를 기쁘게 한다. 하지만 전도가 막힐 때, 결실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일 때, 그때 당하는 고난은 자주 우리를 낙심하게 한다. 괜한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차라리 전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당신의 전도를 막는 것은 주로 무엇인가? 당신의 죄? 성도와의 갈등? 전도의 방식이나 계획의 실패? 전도할 때 참아야 할 핍박이나 조롱? 어떤 이유든 전도가 막힐 때, 당신은 실망하지 않는가?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가? 선뜻 전하기 어렵지 않나?
2. 포기하지 마세요
바울과 복음 동역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① 심각한 내부 갈등이 있었을 때 사명을 내던지고 주저앉지 않았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와 새로운 전도 팀을 꾸려 교회 앞에서 하나님 은혜를 구했다(15:39-40). 원래 계획대로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 여러 성을 다니며 복음 사역에 힘썼다(15:41; 16:4-5).
② 아시아와 비두니아 전도가 다른 누구도 아닌 성령에 의해 막혔을 때, 바울과 선교팀은 멈추지 않았다. 전도 계획을 접고 파송 교회로 돌아오지 않았다. 밤에 환상을 통해 본 마게도냐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분별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다(에게 해)를 건넜다(이틀 항해, 10-11절).
③ 빌립보에 도착하여 성안에서 복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성 밖 강가에 나가 몇몇 기도하는 여인들을 봤을 때, 바울과 함께한 전도자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기도하는 곳”에 며칠간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16절).
④ 어린 여종에게서 예수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낸 후 억울하게 매 맞고 옥에 갇혔을 때, 바울과 실라는 원망과 분노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25절). 전도가 막힐 때, 왜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는가? 왜 끝까지 성실하게 복음을 전했는가? 바울은 수년 전에 갈라디아에 쓴 편지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그들은 낙심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거둘 때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3.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을 때, 주님께서 일하셨다. 때가 이르매 거두게 하셨다. ① 먼저,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수리아, 길리기아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셨다(15:41). 갈라디아 여러 성에 있는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게 하셨다(5절). 팀 내 갈등으로 그들이 전도를 포기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역사다.
②③ 아시아와 비두니아 길이 막혔을 때 포기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 빌립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성 밖에 있는 몇몇 여인을 보고 실망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 유대인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그녀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어떻게? 14절을 보라.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포기하지 않고 전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일하셨다. 루디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에 속한 모두가 다 세례를 받고 주 믿는 자가 되었다(15절). 그녀는 자기 집을 선교팀이 머물 숙소로 내어주었고 후에 빌립보 교회가 모일 곳으로 헌신했다(40절). 전도 계획이 막혔을 때 포기하고 돌아왔다면, 전도 전략이 실패했을 때, 실망하고 도시를 옮겼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역사다.
④ 바울과 실라가 귀신을 쫓은 표적 때문에 억울하게 맞고 옥에 갇혔을 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을 드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죄수들이 들었다(25절).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일으키신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먼저 초자연적인 역사로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렸고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26절). 더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 죄수들이 한 사람도 도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28절).
그리고 주께서 하신 가장 놀라운 일은 이 모든 것을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간수와 그 가족을 모두 구원하셨다는 것이다(31-34절). 만일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 낙심하여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했다면 이를 들은 죄수들이 지진이 났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여 자기 자리에 가만히 남아있었을까? 만일 바울과 실라가 다 포기해버리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다면, 간수가 그 앞에 나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물었을까?(30절).
포기하고 싶을 때, 낙심될 때, ‘전도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마음이 올라올 때, 반드시 기억하라. 하나님은 일하신다. 하나님은 내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을 누군가 듣게 하신다. 듣고 따르게 하신다. 내 입술에서 나오는 찬양을 누군가 듣게 하신다. 듣고 구원을 부르게 하신다. 내가 포기하지 않은 발걸음을 통해 내가 만나는 누군가의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하시고 교회를 견고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끝까지 성실하게 복음을 전하자.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고 계신다.
이 진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이 잘 안 되는 건, 성공률이 너무 낮아서다. 포기하지 않을 때 사도행전 역사처럼 바로바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믿지 않는 부모, 자녀, 친척, 친구에게 수없이 복음을 전해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으면 포기하고 싶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바울과 그의 전도팀이라고 성공률이 엄청 높았던 건 아니다. 물론 성령께서 특별한 역사를 일으킨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복음을 들은 자 중에서 상대적으로 소수가 구원을 받고 엄청난 무리의 반대에 부닥쳐 다른 곳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전도했을 때 얻은 영혼의 가치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성공률보다 영혼을 얻었을 때의 기쁨에 집중해야 한다.
임신을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엄청난 고통과 노력이 따르는 그 일을 수십번 하는 이유는 높은 성공률 때문이 아니라 생명을 얻었을 때의 기쁨, 자녀의 가치 때문이다. 오늘 다룬 본문의 사건을 거듭난 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빌립보 교회 간증시간.
루디아: 저는 장사하는 여인으로 예전부터 유대교가 믿는 하나님에 관해 듣고 그분을 섬기는 신도가 되었어요. 빌립보엔 회당이 없어 강가에 나가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죠. 어느 날 몇몇 남자들이 강가로 오더니,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저의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이야기였어요. 그 말을 듣고 있는데 제 마음이 갑자기 열리고 예수님이 제 안에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저의 집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주를 믿는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요? 저는 이제 예수님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하는 종이 되고 싶어요.
어린 여종: 저는 수년간 귀신의 괴롭힘을 받았어요. 온전한 정신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조종을 당했지요. 제 주변엔 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도 없었어요. 어떻게든 저를 이용해서 돈을 벌 궁리만 했죠.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제 안에 있는 귀신을 꾸짖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고 했고, 그 즉시 저는 귀신으로부터 놓임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내게 자유를 허락하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분이세요. 그분은 나를 괴롭히거나 조종하지 않으세요. 사랑으로 이끄시는 분이세요.
간수: 저는 은퇴한 군인으로 빌립보의 간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유대인 두 사람이 감옥에 갇혔는데, 옷이 다 찢어지고 많이 맞은 상태더군요. 흉악범인지 깊은 곳에 가두고 든든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죄수가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가끔 자조적인 노래나 저주의 노래를 하는 죄수는 봤지만, 이들이 부른 노래는 찬양이었습니다. 감옥에 있던 죄수들 모두가 찬양을 들었는데 그 찬양과 기도가 말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베푸신다는 구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나더니 옥이 다 열린 겁니다. 죄수가 다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명예롭게 죽으려 했는데, 아까 노래하던 두 유대인이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고, 마침내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와 저의 온 가족은 예수님을 통해 죄 씻음을 받았고, 저는 그들의 상처를 씻어주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간증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구원의 기쁜 소식인가?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성공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영혼의 가치,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 이것을 중요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분의 1, 0.000012277%라고 한다. 번개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 모르긴 몰라도 전도할 때 열매를 거둘 확률보다도 더 낮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왜? 한 번 당첨되면 인생 역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현재까지 최대 407억).
한 영혼의 가치는 얼마나 귀한가? 온 천하보다 귀하다.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예수님께서 자기 보혈로 사셨으니 얼마나 귀한가? 그 영혼에게 생명을 주는 복음,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전도가 막힐 때, 낙심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주님께서 일하신다. 영원히 빛나는 우리의 상급이 될 영혼을 주님께서 찾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