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본문: 창세기 26장
설교자: 이병권
오늘 본문 26장은 주인공인 이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주인공이 되는 것도 잠시, 그의 이야기는 26장에서 시작됨과 동시에 26장으로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인 26장을 제외하면 이삭은 늘 조연으로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등장하든지, 아니면 야곱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겁니다. 사실 26장에서 잠깐 주인공처럼 나오지만, 사실 앞뒤 큰 문맥에서 보면 이삭의 이야기는 야곱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부록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럼 창세기의 저자는 왜 야곱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 중간에 잠시 이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이삭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본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1) 이삭이 거하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흉년을 피해 그랄 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아마도 이삭은 그랄에 잠시 머무르다가 상황을 봐서 애굽에까지 내려가려고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 하나님이 이삭에게 그 땅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흉년 때문에 먹을 것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계속해서 약속의 땅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흉년이 든 가나안 땅에 있는 것보다는 나일 강이 흐르고 있는 애굽으로 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특별한 섭리와 뜻을 이루기 위해 이삭과 그의 가족을 그 땅에 계속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명령에 대한 약속과 그가 순종했을 때 얻게 될 복을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3-5)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 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약속을 이삭에게 다시 말씀하시며 약속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이삭에게도 약속하십니다. 땅에 대해 약속하시고, 자손에 대해 약속하시고, 복에 대해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이삭의 하나님이 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한 세대를 넘어서 그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끝까지 잊지 않으십니다. 비록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이 있다하더라도 그 약속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5절에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는 근거가 아브라함의 순종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5절에 나오는 ‘내 명령, 내 계명, 내 율례, 내 법도’라는 말은 율법을 가리키는 당시 독자들에게 친숙한 용어들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 율법에 순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시내 산에서 구체적으로 제도화되어서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에게 율법에 포함된 원리를 부분적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들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이미 가인과 아벨의 때에 제사를 드렸고, 노아 때에는 짐승들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들로 구분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할례에 대한 규례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부분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율법을 계시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훗날 모세는 이것을 모아서, 새로 받은 계시와 함께 정리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실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실한 삶은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하나의 모델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고(15:6), 훗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 부르기도 하십니다(사41:8).
아무튼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그대로 머무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에게 말씀하셨고, 이삭은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렇게 그랄에 거주하게 된 이삭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을 합니다.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7)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삭도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을 속입니다. 아름다운 아내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부전자전인 것처럼 아버지가 했던 일을 아들이 따라서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건과 지금 이삭의 사건에서 닮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둘 다 그랄이라는 지역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고, 둘 다 아내를 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했고, 결국 둘 다 아비멜렉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책망한 아비멜렉과 이삭을 책망한 아비멜렉이 같은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마 두 아비멜렉은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아비멜렉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의 아버지는 왕’이란 뜻인데,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 즉위한 왕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성경에서 애굽의 왕을 모두 ‘바로’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비멜렉’도 그 지역의 왕을 부르는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삭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잘못을 범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 지역에 거하는 동안 많은 부를 쌓게 됩니다. 그는 많은 가축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농사를 해서 100배의 수확을 올립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애굽으로 가지 않아도, 흉년이 든 땅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이삭의 순종에 대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 축복은 말씀에 순종한 이삭에게 허락하신 보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특히 이삭이 애굽으로 갈려고 했던 이유가 흉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농작물을 넘치게 수확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이삭의 재산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시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삭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가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삭이 사용하는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심보가 참 고약합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떠나 주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16)
그들은 이삭을 시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갑니다. 그곳에 거하며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물들을 다시 팝니다. 그리고 판 우물들은 아브라함이 부르던 이름으로 부릅니다. 한 번은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서 우물을 파다가 물이 스스로 솟아나는 샘 줄기를 찾아냈습니다. 19절에 ‘샘 근원’이라고 하는데, ‘콸콸 솟는 샘 줄기’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수고하지 않아도 물이 솟아나는 우물은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삭이 이 우물을 얻었는데, 그 지역의 목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이삭의 우물이 자신들 것이라고 우깁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이삭은 다른 우물을 찾아 떠납니다. 이삭은 떠나면서 우물의 이름을 다툼이라는 뜻인 ‘에섹’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이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의 목자들은 두 번째 우물에 대해서도 시비를 겁니다.
마치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이웃 나라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이익을 위해서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하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그릇된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어떻게 합니까? 이삭은 그들에게 다시 우물을 내어줍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우물의 이름을 대적함이라는 뜻의 ‘싯나’라고 지었습니다. 이 우물들의 이름은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이삭이 그랄 사람들에게 받은 대우와 그들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삭은 또 다시 우물을 팝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우물의 이름을 넓은 지역이라는 뜻의 ‘르호봇’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번성할 수 있는 넓은 땅을 찾게 되었다고 기뻐합니다. 이삭이 이렇게 말합니다. “…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22)
이삭은 우물을 얻은 그 지역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는 말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1:28)는 말씀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이삭을 축복하고 계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삭에게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다툼이 있었고 이삭은 계속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물을 파고 또 파고 또 팠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면, 주변의 모든 적대적인 것들이 사라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렇게 어려움이 전혀 없는 환경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바꾸어 주실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분은 환경은 그냥 두시고 우리를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짜 복입니다.
이삭은 다시 거처를 옮깁니다. 이번에는 브엘세바로 갑니다. 브엘세바는 옛적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곳입니다. 이삭이 브엘세바에 도착한 날 밤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24)
하나님이 이삭에게,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시면서 이삭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들은 이삭은 그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오래 전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처럼 이삭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이삭에게 아비멜렉과 그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이 그랄에 거할 때 그의 번성함을 보고 그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해서 부와 세력이 커져가는 이삭을 보며,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의 선조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것처럼 자신도 이삭과 언약 맺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말합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8-29)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계심을 그들도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세력이 커진 것 때문만이 아니라,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그들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의 삶을 볼 때는 어떨까요?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이 나의 삶을 보고 어떤 결론을 내릴까?’라는 질문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삭은 자신을 찾아온 아비멜렉을 위해서 잔치를 베풉니다. 이들은 함께 먹고 마심으로 계약을 맺었고 확증하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이삭이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은 그가 더 높은 자로서 계약을 맺었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당시 가나안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아비멜렉 보다 더 힘이 있는 자로서 그와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아비멜렉 일행이 돌아간 날, 이삭의 종들은 새 우물을 찾았는데 이삭은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우물의 이름을 ‘세바’라고 합니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계약을 맺었던 것을 기념한 이름입니다. 이삭이 이 우물을 브엘세바라 부르는 것은 이미 아버지 시대 때부터 불렸던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삭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나고, 26장 마지막에는 에서의 이야기가 짧게 등장합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의 두 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는데, 이 일이 부모에게 근심이 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일을 예고하며 에서가 하나님이 택하신 믿음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는 가나안 족속으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야곱과 에서가 비교되는 점이고, 앞으로 있을 갈등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26장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을 연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의 생애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창세기의 저자는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오늘 본문의 내용들만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들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삭에게도 나타나셔서 명령하시고 약속하셨음을 기록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두 번이 있는데, 모두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을 떠올릴 수 있는 비슷한 내용입니다. 또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비슷한 실수를 했고 같은 아비멜렉이라는 왕에게 책망을 듣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말씀을 듣고서 아브라함처럼 예배했으며, 아브라함처럼 이방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복을 누리며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이삭에게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저자는 이삭의 이야기를 아브라함과 병행해서 기록합니다. 그래서 26장 시작부터 아브라함의 이름이 나오고 계속 그 이름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제 이삭에게도 연장되었으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것처럼 이삭을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삭도 그의 아버지처럼 실수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인정을 받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수 있고,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주저하게 하며, 엉뚱한 일을 하게 만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들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관계없이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그 말씀하신 대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도 동일하게 섬기고 있고, 우리도 그분을 따르고 있으며, 그분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해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믿음 안에서 강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하고 그분의 변하지 않는 말씀을 신뢰할 때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에 대한 믿음은 두려움 없이 그분과 동행하게 만들지만, 두려움으로 포기하는 것은 그분이 허락하시는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날마다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누리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