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은혜와 고난
본문: 빌립보서 1장 29절~2장 4절
설교: 조 성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누구도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추위가 닥쳐왔을 때 그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처럼, 고난도 피할 수는 없지만 극복할 수는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로 모든 인류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도 그 믿음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내적으로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할 때 영적인 싸움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습니다. 뉴질랜드는 500국이고 하와이는 900국(천국에서 조금 모자라는)이라고 하지만 그곳 사람들도 다른 지역으로 휴가를 갑니다.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갑니다. 그들이 더 나은 삶이라고 찾아간 곳에는 역시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살면 불행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신기하게도 환경이 좋아질수록 마음의 공허함이 더욱 커집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그리 잘 사는 나라들이 아닙니다. 참 잘 사는 나라 중에 하나인 우리나라도 하루에 42명의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29).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눈을 밝혀주시고 불러주시며 택해주시지 않았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고난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피할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어떤 자세로 대하느냐에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영적인 퇴보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당한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역시 어려움을 당한다면,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은 고난도 함께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이 고난을 잘 이겨내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2장 1절에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말과 연관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이 서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1,2).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 국내 모임의 성도들처럼 사랑이 많은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사랑과 자비, 친절, 섬김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을 같이 하여 한 마음을 품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 등의 좋은 것들을 어떤 자세로 행해야 하는가, 바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모래와 같다고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굉장히 단단하지만 하나가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사랑과 좋은 믿음들을 가지고 있어도, 그리스도를 향한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자기를 낮춰서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마음인 것입니다.

미국에 어떤 지역에 방문했을 때 큰 예배당에 단 세 사람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또 한 분은 따로 모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마음이 잘 안 맞아서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과 섬김이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마음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네 사람이 하나가 되지 못하여 한 사람이 따로 모인다면 많은 이들이 모이면 어떨까요.

정계를 보면 여당과 야당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그래서 국민들에게 본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은 다 자신이 하나님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고 예수님이 주님이시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왕이고 주인이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꼬마 아이들도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듣고 싶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내가 최고인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세상은 높아지기 위해 싸우지만 교회는 낮아지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세상은 높은 자가 높지만 교회는 낮은 자가 높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자가 높다는 것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본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5).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태어나신 것도 짐승들이 거하는 곳에 태어나시고, 사는 곳도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곳에서, 하는 일도 천하게 여기는 목수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낮은 자의 자리를 취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성령의 교제, 긍휼, 사랑이 있어도 그것을 실행할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성령님의 기적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만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과 자신의 영광이 아닌,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고 내 경험, 이론에 비춰 맞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주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 그것에 순복할 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많은 이들이 왜 하나되기가 어려울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지 몰라도 주님은 그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2). 훗날 주님 앞에 가게 될 때 이것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각자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 뜻을 합하는 것이 목회자의 뜻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가 아니라 하나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내것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함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1:30).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은 외적인 고난, 성도들로부터 오는 고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유가, 우리가 영광만 받을 것이 아니라 고난도 함께 받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고난을 받기 위해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고난 중에 하나가 ‘뜻을 합하여 하나 되는 것’입니다. 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늘나라가 있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내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신앙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 받게 하기 위해 구원하셨습니다. 주위에 다른 성도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 때에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섬겨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려면 자존심을 죽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4). 성도가 한 마음이 되어 주님께 영광이 돌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목자들도 가장 기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산을 팔고 밭을 팔아 주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교회가 하나되고 한 뜻이 되어서 서로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