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위대한 아기
본문: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설교: 최 종혁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뭐라 하는지 대답했는데,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 예레미야라고도 하며 구약의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친구에게 이것을 물으면 그들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이에 대한 통계 자료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한 대학 선교단체에서 조사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조사 대상의 30퍼센트 정도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답했고, 30퍼센트 정도는 구세주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선교단체에서 실시한 조사였기 때문에 이런 대답이 나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생각은 예수님은 기독교의 창시자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조금 더 좋게 말하는 사람은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던 성인, 현인’ 정도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상 실존했던 위대한 사람 중에 하나라고들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후를 나눠 시대를 구분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도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의 기념일인데 오늘날에는 모든 종교를 막론하고 세계인들이 기념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예수님이 위대한 분이신 것은 분명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천사는 예수님에 대해 “그가 큰 자가 되고”라고 말합니다. 그가 위대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세상에 영향력을 많이 미치는 사람, 긍휼과 자비가 많은 사람, 평화를 전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일까요?

본문 26-29절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위대함이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차근차근 읽어보면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 번갈아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세례 요한이 빠지고 예수님 중심의 기록이 이어집니다. 세례 요한의 기록과 예수님의 기록을 비교하면서 말씀을 읽으면 그 의미를 알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의 위대함의 기초는, 위대하지 않은 것에 있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26). 여기 여섯째 달은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 달이 지났을 때를 말합니다(24,36절 참조).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중요한 메시지(메시야가 이 땅에 올 것이라는)를 전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 하나님께서 약 400년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계시도 기적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하나님께서 400년의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는데, 이상하게도 메시야에 대한 것 이전에 세례 요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예언보다 요한의 예언이 먼저 나온 것입니다.

천사가 찾아간 장소는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입니다. 특별할 것이 없는 동네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졸업할 때 졸업식 팜플렛에는 제 이름과 출신도시가 적혀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우리 나라의 서울이나 부산, 인천 정도의 도시라면 알지 모르지만, 제가 태어난 ‘용인’은 알 리가 없습니다. 당시 나사렛이라는 동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갈릴리’라는 지역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것을 세례 요한의 탄생과 비교해보면, 역시 천사가 나타나 그의 탄생을 예언하였는데 그때 사가랴(요한의 아버지)는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스라엘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천사가 찾아갔을 때 마리아는 그 또래의 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사가랴를 찾아갔을 때 그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 요한의 탄생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세례 요한의 탄생이 더욱 그럴듯하고 멋지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서 아버지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27). 주목할 것은 마리아에 대한 설명에 그녀가 ‘처녀’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남자와의 성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았던 어린 여자아이였다는 것을, 두 번이나 강조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당시의 약혼은 법적인 구속력이 있어서 결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1:19-24에서는 이미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약혼 기간에 무슨 일이 생겨서 남편이 죽으면 그녀는 과부가 됩니다.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기까지 1년 정도의 기간 동안에 여자는 자신의 순결을 증명해야 하고, 남자는 살 집을 마련해야 합니다. 누가는 마리아에 대해서 그녀가 처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지, 그녀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부모는 다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1:6). 예수님의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마리아에 대해서는 이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 요셉도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사실 그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다윗의 자손이 매우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도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법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모두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마리아와 요셉 보다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쪽이 더 메시야의 부모로 합당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배경은 매우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28). “평안할지어다”라는 말은 매우 평범한 인사입니다. 특별히 천사는 마리아를 가리켜 “은혜를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30절에서도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라고 말하면서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해 강조합니다.

누가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마리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녀가 처녀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녀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은 그녀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출신 배경이나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뛰어난 존재였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천사의 존재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가 한 말,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말에 놀란 것입니다. ‘천사가 왜 나에게 이런 인사를 할까’ 궁금해 합니다. 그것은 천사가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는 소망을 말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이 인사가 무슨 의미인지, 하나님이 나를 통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평범한 유대 어린 소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배경은 이렇듯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이 갈라지는 것이나 천사의 나팔소리를 기대하지만 그분의 오심을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함은 그 어떤 배경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0-33).

예수님이 위대하신 이유의 첫 번째는 예수님이 인간이시라는 점입니다. 천사는 두려워 말라고 하면서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 예수아와 같은 이름으로 그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이 이름은 당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동일하게 예언을 했습니다(13). 이것은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 일어나는 과정으로 지극히 평범한 것입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2:6,7). 예수님의 탄생은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는 지극히 평범한 탄생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는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소문이 두루 퍼졌고 사람들은 그 아기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하여 기대를 가졌습니다(65,66).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면 헤롯이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모든 아기를 죽일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하신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32). 천사는 예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례 요한도 큰 자가 될 것이지만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15)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 앞에서”라는 수식어가 없는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본질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1:3).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본체를 알 수 있도록 드러내 보이신 것이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보여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여기서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본질 상 하나님이시나 하나님의 구분되는 분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드러내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천사가 예수님에 대해 “큰 자”라고 말한 것은, 지극히 평범한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본질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2,33).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대한 것입니다. 삼하7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여호와의 궤가 휘장 가운데 거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짓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1,12).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어주시겠다 약속하신 집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다윗의 왕조’, ‘집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온갖 영화를 누리면서 그 말씀이 자신에게서 실현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이후로 왕국이 분열되었고, 더구나 솔로몬은 인간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씨”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궁극적인 왕,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이것은 다윗의 왕조와 그 나라에 군림할 한 아기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를 가리켜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예언이 성취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약속된 메시야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 왕위를 차지하고 다스리시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미 왕으로 계시고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리아가 이것을 다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46-56절에는 마리아의 찬가가 나오는데, 그녀는 구원자가 자신을 통해 온다는 것과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말을 보면 그는 예수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눅1:69). 마리아가 낳을 아기는 위대한 아기,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아기였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메시야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들의 염원을 담은 이름이 ‘예수’입니다. 마리아가 그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 마리아는 처녀인 자신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천사는 이에 대해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35).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을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죄의 사슬을 이어온 아기가 아닌, 그 사슬을 끊고 태어날 아기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냥 죄를 무효화하시고 구원하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왜 굳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했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로운 속성은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으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죽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히2:14-17).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으므로 죽기 위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 있는 육신의 몸은 안 됩니다. 만일 죄가 있는 몸이라면 자신을 위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가 아닌,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셔야 했으므로 죄가 없는 육체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 방법이 처녀의 몸을 통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것이 이렇듯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몰랐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씨]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여자의 후손”은 여자의 씨를 말합니다. 처녀를 통한 탄생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놀라운 방법을 통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오셔서 아버지의 계획에 순종함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36). 세례 요한의 일이 먼저 있었던 것은 마리아에게 표적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7).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38). 마리아는 이 모든 진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가지고 이것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리라는 자세를 취합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난 이 아기는 위대한 하나님이셨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기대한 메시야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더구나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훌륭한 사람, 위대한 사람, 역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C. S. 루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전합니다. 예수님은 절대 그저 위대했던 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세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이라 믿고 그렇게 말했던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정신 나간 사람, 미친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알면서 하나님이라고 말한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거짓말쟁이거나 사기꾼입니다. 세 번째 가능성은, 예수님이 실제로 하나님이셨고 자신이 하나님이시라고 하신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구세주,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우리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단지 좋은 일을 한 사람, 평화를 이끌었던 사람이 되실 수 없습니다. 구세주가 되시든지 거짓말쟁이나 미치광이가 되어야 맞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