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예수님은 누구신가?

본문 : 마태복음 16장 13-20절

설교자 : 최종혁

 

오늘부터 학생청년연합캠프가 시작되는데 그 주제가 ‘그분의 길을 간다는 것은’입니다. 저는 이 주제를 생각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그 길을 가신 분(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 길은 어떤 길인지,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어떤 길로 부르셨는지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여러분은 예수님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그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물어보는 질문이 아닙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시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정말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여러분이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이 땅에서의 삶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살아갑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두려워하여 나름대로 어떤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착한 일을 하기도 하고 기부나 봉사를 통해 마음 속에 어느 정도의 위안을 얻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낼 소망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 말입니다. 그분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으실 질문은 바로 ‘너는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은, 이스라엘 지도를 보시면 요단강이 이스라엘 동쪽으로 흐릅니다. 그 끝에 사해가 있고 그 시작 지점 바로 윗부분이 바로 이 지역입니다. 이곳은 유대인들이 살지 않는 지역입니다. 예수님은 주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이적을 일으키시며 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거기서 물러나 사람들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으로 오셔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계속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적을 행하셨지만 특별히 제자들에게만 보이셨던 것과 가르치셨던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모든 행적을 목격해온 자신의 제자들에게 지금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은 대답하기 쉬운 질문입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하신 것은 다음 질문을 위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 사역을 통해 그분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렇게 권세 있게 가르치는 자가 없다’라고 평했고, 예수님의 이적을 보며 그분을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놀라기만 했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다윗의 자손인지 계속 의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특별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메시아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16:1). 그들에게는 이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메시아의 선구자로 왔던 세례 요한 역시 예수님을 의심하는 모습을 잠시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 당시 세례 요한은 헤롯에 의해 이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행하시는 것이 그와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예수님을 보면서 저 사람이 혹시 약속된 엘리야가 아닐까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레미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언약궤와 분양단을 느보산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침략당하고 성전이 더럽혀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가 언젠가 다시 와서 느보산에 감춰둔 그것들을 다시 성전에 둘 때가 오는데 그 때 메시아가 온다고 유대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레미야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메시아와 뭔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 보고, 죽은 선지자가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허구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당시 사회운동가라고, 기독교의 창시자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성인이라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예수님을 좋게 평가하더라도 그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분이 인간 중에 최고라고 말할지라도 그분을 메시아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누구라 하는가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내가 하는 모든 가르침을 듣고 이적을 맛보았던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을 대표하여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그의 말은 옳았을까요? 이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 시몬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드러내주신 놀라운 진리의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에는 그리스도라는 말이 여러 차례 기록되었는데, 그동안은 늘 마태의 표현이었지 한 번도 다른 인물을 통해 언급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베드로가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와 같은 의미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기름 부음’은 특별한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세울 때 하던 의식입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이 의식을 통해 세워졌는데, 제사장과 선지자, 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이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죄인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제사장이 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가 되셨습니다. 또한 약속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고 영원한 나라를 다스리실 왕이십니다.

구약의 많은 제사장과 선지자, 왕들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쩌다보니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메시아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곧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동등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양된 것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표현에 담긴 의미를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하나님을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주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의 능력과 권위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약속된 메시아이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이시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 하는가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예수님과,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 여러분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계신지가 중요합니다. 그것에 남은 삶과 영원한 삶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은 베드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스스로 찾아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답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을 받지 않고 그것을 알 수도 없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영적인 진리에 대해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자연 상태(죄악된 상태)의 우리들은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상태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니까 죄 용서는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위험하지 않으니 구원자도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내 갈 길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인도자는 필요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나’고 내 삶이 무엇보다 최우선이기에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울지 않는데 위로자가 필요할 리 없고 지옥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데 구원자가 필요할 리 없습니다. 내가 병자라고 생각지 않으면 의사도 필요 없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그래서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시각장애인인 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자들을 보게 하시는 분, 알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 그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와서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 때 우리의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그것이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종교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종교는 삶의 일부가 되어야지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이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전부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