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
본문 : 요한일서 1장 5~10절
설교자 : 최 종 혁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지난 시간 1-4절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또 완전하신 인간이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을 비롯한 증인들이 그 예수님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말하고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가 나타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분이 정말 사람이셨다는 것, 역사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1),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2),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3).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귀로 들었고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목적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환영(幻影)으로 오셨던 분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자신의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분은 실재하셨고 그분이 하셨던 일들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 곁에 있었던 사도들이 증인이 되어서 그분이 하신 일을 전해주었습니다. 실존한 예수님을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삶에 실제적인 변화가 따라옵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핵심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은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고 예수님에 대해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일서의 목적은 조금 다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말씀의 첫 독자가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고 요한일서는 ‘믿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확신 가운데 거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도 역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생명이 있는지를 어떻게 아십니까? 저는 생명이 있기에 말을 하고 호흡을 하며 여러분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증거, 그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영생도 역시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생은 그 결과가 겉으로 드러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실제적인 변화가 나타납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뭐가 달라집니까? 사도 요한이 주목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다시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2:5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하며 예수님의 인성(人性)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이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이 진리는 성경의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이것을 부인한다면, 예수님이 정말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면, 성경의 말씀은 그저 좋은 이야기들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라’,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라’라는 식의 세상의 수많은 철학과 학문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땅에 오셨기에 성경의 말씀은 다른 세상의 모든 학문, 가치관들과 다른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던 이 역사적인 사실은 어떠한 생각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오심으로 모든 성경의 진리들―창조주이신 하나님, 피조물인 사람,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 예수님을 통한 관계 회복, 장차 올 하늘나라―이 사실이 됩니다.
만일 우리 인간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셔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으시다면(그저 사랑과 은혜만 가득하시다면) 역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 안에서 다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에 죄가 계속 존재하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는데도 죄가 존재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이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5). 여기서 “우리”는 사도 요한을 비롯한 예수님의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그”)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사도 요한이 증언한대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하나님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나 죄로 뒤틀려진 인간과는 달리, 예수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에게서 듣고 전한 “이것”은 그저 사도 요한이 들은 풍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5).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원리를 전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빛”은 정말 중요한 속성입니다.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물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빛으로 표현하시기도 하고(출 13:21-22), 빛을 입고 계시거나 빛 가운데 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시 104:1-2; 딤전 6:16).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을 때 그것을 본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빛’은 도덕적인 거룩함, 정결함, 어떤 흠도 죄도 없으심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진리시라는 것, 참되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빛과 어둠을 대조하여 빛은 거룩한 것, 참된 것을 의미하고 어둠은 죄악된 것, 거짓된 것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엡 5:8-9; 사 50:20; 롬 13:12-14; 살전 5:5-6; 시 119:105, 130).
또한 성경에서 빛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빛을 ‘생명’, ‘생명의 근원’으로 말합니다. 형광등을 켤 때 형광등은 빛의 근원이고 우리는 그 빛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그 빛의 일부를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9). 우리가 빛을 보는 것은 빛의 근원이신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또한 생명의 원천도 주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떠나서 생겨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빛’을 주시는 것은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시 56:13; 욥 33:28-30). 또한 이사야서 말씀에서는 ‘빛’을 비추는 것을 ‘구원’을 주시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은 진리이시고 거룩하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변하지 않는 속성입니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5).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신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인간과 비슷한 신들이었습니다. 큰 능력을 가진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은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 그들 중에도 악이 있고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전해 들은 하나님은 오직 빛이시지 어둠이 함께 있지 않는 분입니다. 또한 7절에서는 그가 “빛 가운데” 계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퍼져 나가고 있는데 그 빛의 근원으로서 그 가운데 계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구별된 영역을 가리킵니다. 빛의 영역이 있고 어둠의 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 말씀을 예수님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셨고(요 1:17; 8:46; 14:6; 6:68), 거룩한 삶을 사셨습니다(요 8:46; 8:29; 15:10). 예수님 스스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분의 증인들도 그렇게 고백했습니다(행전 2:27; 3:14; 고후 5:21; 히 4:15; 7:26). 그분은 완벽한 순종의 삶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죄로 인해 죽은 인류에게 영생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요 1:4-10).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예수님은 빛 되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그것을 목격하고 경험했던 사도들이 그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들이 이 빛 되신 하나님과 전혀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진리와 거룩함, 생명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거짓에 물들어 있고 죄악 중에 살고 있으며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빛 되신 하나님을 볼 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빛으로 나가서 나의 어떠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반응은, 그 빛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살거나 세상 사람들이 주는 해결책을 통해 거짓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빛 되신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거룩하시고 빛 되시고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고 계십니까? 이 빛을 거부하고 계신 분이라면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나에게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과거의 어떤 환경 때문에, 부모나 조상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문제가 여러분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 앞에서 여러분의 죄악됨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해결책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빛에 나와 영원한 생명을 얻으신 분은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제 그분이 승천하시고 이 땅에서 빛 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우리의 몫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이 놀라운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빛의 자녀로서의 하루 하루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