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누구나 좋아하는 사랑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사랑이야기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되십니까? 젊은 남녀가 만들어내는 극적인 이야기,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보는 긴장감 넘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는 이야기, 재벌가의 아들이 가난한 집안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정의 반대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만나면서 갈등하지만, 결국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는 이야기. 아니면 주인공이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음이 이르는 슬픈 사랑이야기. 거기에 출생의 비밀까지 추가되면 드라마 흥행 공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룻기의 사랑이야기는 남녀 간의 그런 로맨틱한 사랑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의 사랑이야기는 과부가 된 늙은 시어머니와 동일하게 과부가 된 며느리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통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가까이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관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부간에 갈등을 겪기도 하고, 서로를 어려워하는 겁니다. 하지만 룻기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다릅니다. 서로 국적이 다르고, 살아온 문화와 환경이 다르고, 둘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남편이나 자식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펼쳐갑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드라마 속의 그런 사랑은 아니지만,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낭만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 이타적이고 헌신된 감동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룻기에서는 “헤세드”라고 말합니다. 헌신되고 충성된 사랑을 헤세드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기 힘든 관계라 말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서, 때로는 원수라고 일컬어지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우리도 그와 같은 헤세드 사랑을 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가족들 간에 이런 사랑이 있고, 우리의 교회에 이런 사랑이 넘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나오미와 룻이 보여주는 이 헤세드 사랑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랑, 헤세드를 행하다”입니다.

오늘 본문은 나오미가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의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본 것처럼, 나오미는 베들레헴의 흉년을 피해 모압에 왔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물론 두 아들을 잃는 비참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중에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심으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 명의 과부는 죽은 남편들을 묻어 놓은 그 땅에서 나와 먼 여행길을 나섭니다.

이것은 나오미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두 며느리에게는 고향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겪어왔던 수많은 일들, 그 모든 추억들이 머물러있는 곳, 부모, 형제, 친구, 친척들이 살고 있는 자기 나라를 떠나는 것입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서 이방인으로 살아야합니다. 여러 가지 고민과 불안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성경은 간단하게 함께 일어나 있던 곳에서 나왔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8절에서 18절까지의 내용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중에 나눈 세 여인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선 며느리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불쌍하고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 그동안 자신을 향한 헌신된 사랑에 감사하면서 이제는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권유합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8-9).

사실 두 아들이 죽었을 때 나오미와 며느리와의 사회적인 관계는 이미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들이 나오미를 모셔야할 책임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홀로된 시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합니다. 이들의 헌신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나오미는 8절에서 “선대”라고 말하는데 이 단어가 바로 “헤세드”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가 자신을 헤세드로 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헤세드를 베풀어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며느리에게 새 남편을 허락하셔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인생의 모진 시련과 어려움을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의 따뜻함과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오미는 참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위험을 만날지 모르는 먼 여행길을 그래도 여자 혼자서 가는 것보다 세 명이서 같이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같이 가면 의지도 되고, 외롭기도 덜하고, 여러모로 큰 자원이 됩니다. 힘든 일은 부탁할 수 있고, 어려운 일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만 하면, 얼마든지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그들을 생각해서, 그래서 돌아가라고 합니다. 자기도 지금 힘들지만, 자기보다 자기 처지보다 며느리들을 보며, 그들을 생각하며, 더 마음 아파하는 것입니다. 며느리를 향한 나오미의 사랑입니다.

시어머니로부터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두 며느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며느리들은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 며느리들에게 나오미는 다시 한 번 더 돌아갈 것을 권합니다.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11-13).

여기서 나오미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혼’이라는 규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신명기 25장 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가족 중에 한 형제가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해서 아들을 낳아 그 가문과 기업을 잇게 해주는 규례를 말합니다. 나오미는 자신에게 또 다른 아들이 있으면 남편으로 주었을 텐데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은 늙어서 결혼 할 수 없고, 아이를 낳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설사 재혼을 해서 자신이 아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그 아들이 자라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 마디로 자신을 따라 오는 것은 소망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는 그들을 딸이라고 부르면서 거듭 권합니다. “내 딸들아 돌아가라,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오미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겉치레로 말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딸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며느리들이 새 남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통곡이 터져 나옵니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보는 겁니다. 완전히 헤어지는 겁니다. 잠시 헤어졌다가 이따금씩 볼 수 있는 그런 이별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을 수도 없습니다.

이 며느리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별을 앞에 두고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 시어머니와 함께 울며 서로를 위로했던 일들, 그 모든 과정들이 영화처럼 지나갔을 겁니다. 며느리들은 심하게 웁니다. 소리를 높여 통곡합니다. 그런 후에 오르바라 이름 한 며느리는 나오미에게 입 맞추어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갑니다. 아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갔을 겁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간 오르바는 이제 성경 어느 곳에서도 다시 볼 수는 없습니다. 오르바처럼 하는 것은 현실적이고, 당연한 선택입니다. 오르바가 나오미를 떠난 것을 두고,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오르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 이상으로 했고, 시어머니의 축복을 받으며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오르바는 자기의 백성과 자기의 신들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반면에 또 한 명의 며느리 룻은 더욱 시어머니에게 달라붙었습니다. 그녀는 자진해서 시어머니 곁에 머물며 그녀를 보살피고자 합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대하는 모습, 시어머니를 향한 헌신된 사랑, 이것이 룻기가 말하는 헤세드입니다.

룻의 선택을 생각해보십시오. 현실적이지 않은, 어떻게 보면 비정상적인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일반적인 것을 넘어서는 특별함을 만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일반적인 것을 뛰어 넘어 특별함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헤세드 사랑입니다. 그래서 룻은 시어머니 곁을 지킵니다.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 룻에게, 나오미는 세 번째로 설득합니다. 이미 떠나간 오르바를 예로 들면서,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룻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룻의 마음은 확고했습니다. 이어지는 16과 17절은 헤세드 사랑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표현이라고 평가되는 그런 구절입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의 이 고백을 보십시오. 이건 보통 고백이 아닙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다”며 돌아갈 것을 권면한 상황에서, 이 같은 고백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룻의 선택이 시어머니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결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은 단순히 젊은 남자, 재혼할 수 있는 남편을 버리고 늙은 여자, 시어머니 나오미를 택한 것이 아니라, 모압 사람들의 신 그모스를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택한 것입니다.

룻이 이것을 선택함으로 직면하는 희생과 어려움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녀는 시어머니를 위해서 자기 고향과 친정과 재혼의 가능성과 그 신, 그 문화,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렇게 룻이 고향을 떠난 것을 두고 아브라함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룻은 아브라함처럼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룻이 아브라함보다 더 큰 모험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상황에서 길을 떠났지만, 룻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룻에게는 어떠한 약속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모든 소유를 가지고 길을 떠났지만, 룻은 단지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길을 떠납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헤세드 사랑으로 고향을 떠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룻은 만약에 자기가 시어머니를 떠난다면 저주를 받겠다고, 죽음 외에 그 무엇도 시어머니에게서 자신을 떼어놓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시어머니의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했습니다. 나오미는 이런 룻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사랑이야기입니다. 헤세드 이야기입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향한 목숨을 건 헤세드 사랑을 가지고, 어려운 여행을 동행하며 낯선 유대 땅까지 따라가서 그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녀의 이러한 헤세드는 보아스의 호감을 얻게 했으며, 결국은 룻이 재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갑니다. 이 모든 것은 룻이 자기 시어머니를 향한 헤세드에서 시작 된 것입니다.

2장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이 나오미에게 베푼 그 헤세드 사랑에 대해서 보아스가 알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보아스는 그녀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고, 그 사랑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되갚아 주실 거라고 확신하며 복을 빌어줍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보아스의 말처럼 하나님은 룻이 행한 헤세드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넘치는 헤세드로 되갚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방 여인인 룻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자손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의 족보에 룻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사랑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베푸는 사랑을 통해서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베푼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되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하는 것, 그 이상으로 더 풍성하게 갚아주셔서 그것을 누리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룻입니까? 아니면 오르바입니까?

만약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긍휼함이 없다면,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늘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조금 마음에 안 들면 불친절해지고, 자기주장과 자기고집을 꺾지 않고, 그것만 내세운다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다 하더라도,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이 있습니까? 저 멀리 있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아닙니다. 바로 내 옆에,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 집 안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 속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서, 교회 안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향해서, 정말 내 안에 사랑이 있는가? 평가해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사랑을 말해주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감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헤세드 사랑, 헌신적이고 충성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과 긍휼과 배려가 나에게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 안에 사랑이 있습니까?’ 이 질문을 가지고 내가 고민하고, 이 질문을 가지고 내가 씨름하고, 그러면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주님 제 안에 사랑이 없습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주십시오.

그렇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그 사랑의 힘으로 내가 속한 곳에서, 나의 가정에서, 교회 안에 내가 속한 구역, 내가 속한 부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정답만 말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헤세드를 행하는 일에 우리의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선한 간증을 남기고 있는 차인표가 그의 책에서 한 말입니다. “밥은 먹는다고 하고, 잠은 잔다고 하고, 꿈은 꾼다고 하고, 사랑은 그냥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그냥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품어준다. 불쌍히 여긴다. 함께 울어준다. 오래 참으며 기다린다. 위로한다. 눈물을 닦아준다. 함께 기뻐한다. 손을 잡는다. 이야기를 들어준다. 짐을 나누어진다. 같이 걷는다. 허리를 굽혀 안는다. 힘껏 안는다. 더 더 힘껏 온 힘을 다해서 안아준다.” 이게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합시다.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두신 사람들에게, 내 인생의 길목에서 마주치게 되는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합시다. 사랑은 그냥 하는 겁니다. 그냥 헤세드를 행하는 겁니다. 그냥 그렇게 합시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시면서 그 사랑을 그냥 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냥 합시다. 품어주고, 불쌍히 여기고, 함께 울고, 기다리고,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고, 함께 기뻐하고,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짐을 나누어지고, 같이 걷고, 허리를 굽혀 안읍시다. 그냥 그렇게 합시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하나님께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기억하며, 그냥 그렇게 합시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너무 많이 재지 말고, 너무 많은 이유를 갖다 붙이지 말고, 너무 많이 망설이지 말고, 그냥 합시다. 그냥 우리 사랑합시다. 헤세드를 행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