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본문 : 사도행전 23장
설교자 : 조정의
본문은 바울이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 서서 심문당하고 이후 유대인 암살단의 위협을 피해 가이사랴로 이동하는 역동적인 사건을 담고 있다. 본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바울이 전에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다(롬 9:28).
“모든 것” 안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모두 있다. 원하는 일과 원치 않는 일, 덕이나 해가 되는 사람, 좋은 상황과 나쁜 상황, 실수, 죄, 우연 등 모든 게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본문에 기록된 바울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말씀을 통해 당신 삶에 허락된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을 이루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길 원한다.
1. 바울에게 허락된 모든 것
① 부패한 지도자들
천부장은 바울이 흥분한 다수의 유대인 회중 앞에서 변명을 했는데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보고는 채찍질하여 바울의 죄를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 나서 이튿날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을 소집, 정식 재판을 받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부패했다.
당시 대제사장은 아나니아였는데(2절), 48~59년까지 세도를 누린 자로 세속적이고 탐욕스럽고 불 같은 성질을 가진 자로 유명했다(요세푸스 기록). 본문에도 그의 불의함이 잘 나타난다. 바울이 공회 앞에서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진심을 고백했지만(1절), 대제사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입을 치라”고 명했다(2절).
이런 사람이 의회를 이끌고 있으니 심문이 바르게 될 리 만무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장 공의로운 판결을 내려야 할 지도자들이 이토록 부패했다. 바울의 무죄와 유죄 판결 여부가 이들에게 달려 있었다. 하나님은 왜 하필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공회에 바울을 맡긴 천부장 역시 정의롭고 공의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많은 돈을 들여 로마 시민권을 사고 자기 입지에 방해 되는 것을 최대한 감추려는 기회주의자였다.
나중에 이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로 호송하면서 그곳 총독 벨릭스에게 편지할 때(26-30절), 이렇게 말한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천부장 이름)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26-27절). 불법적인 채찍질로 심문하려다가 로마 사람인 줄 알게 된 사실은 쏙 빼버렸다. 하나님은 왜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을까? 바울의 상황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사랑하는 부패한 사람들이라니…
② 무서운 암살단
바울을 둘러싼 상황 중 최악은 바로 사십여 명의 유대인으로 구성된 암살단(시카리)이었다(12-15절). 날이 새매(공회 다음날)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12-13절).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 계획을 말했는데, 부패한 관리들은 이 악한 일을 흔쾌히 수락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14-15절).
오늘날에도 악플러나 스토커 때문에 크게 고통받다가 소송하는 유명인들이 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셀 수 없고, 심지어 맹세하면서까지 암살하려는 수십 명의 자객들이 먹지도 자지도 않고 어떻게든 바울을 죽이려고 곳곳에 숨어 있었다. 게다가 바울을 보호해 줘야 할 지도자들은 오히려 이들과 결탁하여 뜻을 함께했다. 참으로 두렵고 억울하고 무서운 일이다. 왜 하나님은 이런 환경을 바울에게 허락하셨을까? 바울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통해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당신도 이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 그 의문이 길어져 의심과 불신을 낳는다.그때도 우리가 끝까지 믿고 바라봐야 할 분이 있다.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다.
2. 모든것을 선으로 바꾸심
하나님은 바울이 처한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① 부패한 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히 증언하게 하심
마틴 루터는 1521년 보름스 종교재판 앞에서 자기 주장을 모두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았을 때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라고 말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담대히 외친 것이다.
바울도 그랬다. 바울은 자기 입을 치라고 명령한 대제사장을 향하여 아주 담대하게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라고 반박했다(3절). 대제사장이 속은 균열되어 있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면서 겉만 번지르르한 외식 주의자(회칠한 담, 마 23:27)라고 비판하면서 율법대로(레 19:15) 사람의 죄를 묻고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냐고 따진 것이다.
곁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욕한다고 문책할 때도 바울은 주눅 들지 않고 자기도 율법을 잘 알고 있지만(출 22:28), 율법을 이렇게 어기면서 사람을 치는 자가 설마 대제사장일 줄 몰랐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우회적으로 지도자들 모두를 책망했다(5절). 어디서 이런 담대함이 나왔을까?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 13:9, 11).
부패한 지도자들, 자기 목숨을 쥐고 있던 그들 앞에서 바울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가 할 말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또 지혜를 주셔서 이 불의하고 무익한 재판을 와해되게 하셨다. 그렇게 선을 이루셨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구성된 공회에서 바울이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라고 말했을 때(6절), 공회는 완전히 둘로 쪼개졌다(10절). 부활, 천사, 영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과 그것들을 믿는 바리새인이 바울을 가운데 두고 크게 다투었다(찢겨질까 하여, 10절). 권력다툼, 진영논리가 워낙 심했던 터라 바리새인 중에서는 바울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9절).
이처럼 성령 하나님은 바울에게 담대함과 지혜를 주셔서 부패한 지도자들 앞에서 용감하게 변론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② 무서운 암살단을 인하여 안전히 호송되게 하심
바울에게 허락된 최악의 상황은 무서운 암살단이었는데, 하나님이 이를 선으로 바꾸시는 모습은 정말 경이롭다. 이름도 모르는 바울의 생질(10-20대)이 ‘우연히’ 암살단의 계획을 듣게 됐다(16절). 이는 곧 바울 그리고 천부장의 귀에까지 들리게 됐다. 천부장은 이를 계기로 바울을 예루살렘보다 안전한 가이사랴로 호송하기로 결정한다.
만일 바울이 유대인들 손아귀에 있었다면 부패한 유대 지도자들 손에 금방 살해됐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의 결박을 받아 이방인 손에 넘겨지게 됐고, 자기 권력과 명예를 끔찍하게 여긴 이방인 관리 천부장은 로마 시민인 바울 때문에 자기가 책임질 일이 생기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아주 파격적인 보호를 하며 바울을 넘긴 것이다. 23-24절.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저녁 9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바울이 자비로 여행 경비를 충당할 필요도 없고, 곳곳에 매복한 자객들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유대인의 돌에 맞아 죽을 염려도 없고 심지어 가이사랴까지 걸어갈 필요도 없다(노새, 당나귀).
무려 470명의 완전무장한 군사들의 보호를 받아 가이사랴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했다(물론 아직까지는 피의자 신분이지만). 게다가 천부장은 벨릭스 총독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판결을 전달했다.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29절). 로마법에 따르면 무죄라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간 구금되어 있는 동안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에게 받을 재판의 판례가 됐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사는 참으로 놀랍다.
3. 적용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관하여 잘 알고 있다(“우리가 알거니와”, 롬 8:28).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의심과 불평이 나올 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신뢰할 수 있는가? 그게 문제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시는 동안 바울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었을까? 11절.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바울 곁으로 오셨다(‘위를 덮다, 압도적 임재’).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주님을 증언하도록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담대하라고 격려하고 위로하셨다. 그런데 주님이 바울에게 허락하신 선이 무엇인가? 바울 개인의 행복? 평안? 안락한 삶? 부와 명예?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이다. 로마서 본문에서도 ‘합력하여 이루시는 선’은 다른 게 아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 그 목적을 위해 우릴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날까지 우리 곁에 서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이다(롬 8:29-30).
하나님은 오늘 이곳에 당신 곁에 임재하여 말씀하신다.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나를 증언한 것 같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증언할 수 있도록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 말씀은 대위임령을 받은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 20).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당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통해 문제를 뛰어넘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신다. 당신의 약함을 드러내 하나님의 강함을 보이신다. 당신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통해 오히려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나타내신다. 당신의 불의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당신의 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당신의 가난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유함을 선포하신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을 증언하도록 이끄신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당신에게 허락된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우리 삶을 마치는 그날까지 우리는 바울처럼 우리가 달려갈 길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도록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정교하게 맞춘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셨다.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 자기 목숨을 당신을 위하여 버리신 가장 큰 사랑의 주님이 당신 곁에 서서 말씀하신다.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증언할 것이다’ 당신은 뭐라고 답하겠는가? 바울처럼, 루터처럼 담대히 답하라.
“아멘, 주 예수여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를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