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는 아니라
본문: 요한복음 1장 19-28절
설교자: 이병권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부터 본격적으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 있도록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도 요한은 먼저 세례 요한을 소개합니다.
요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요한을 소개할 때 “요한의 증언”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요한복음의 특별함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을 소개하면서 부모가 누구인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가 어디서 지냈으며, 외적인 모습은 어떠했는지, 백성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선포했는지,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서론에서도 세례 요한을 말하면서 여러 번 “증언”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1:7,8,15). 정리하면,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하러 온 자로서 그의 사명은 증언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일을 위해 증언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세례 요한이 보내심을 받은 목적은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에게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보내심을 받은 요한을 만나도록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의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조사단을 조직해서 요한에 대해서 조사하도록 파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낸 사람이고 또 하나는 보낸 장소입니다.
먼저, 보낸 사람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은 요한복음에 많이 나오는 특징적인 표현입니다. 공관복음은 모두 합쳐서 17번이 나오는데 요한복음은 71번이 나옵니다. 그만큼 요한복음에서 유대인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부정적인 의미로 예수님을 대적했던 유대 지도자들을 말할 때 사용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유대 지도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고 일반적인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1:24).
다음으로, 보낸 장소는 예루살렘입니다. 이스라엘의 중심, 예루살렘에서 변두리에 벌어지는 일을 조사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중앙정부 관리들을 파견한 것 같습니다. 지금 요한이 있는 곳은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입니다(1:28).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는 우리에게 더 친숙한 베다니,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는 동네와는 다른 곳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가시는데 하루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베다니가 갈릴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곳으로 갈릴리 가까운 지역에 위치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이 멀리 요단강 건너 북쪽에 있는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던 요한에게 성전 관료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조직해서 보냈습니다.
세례 요한이 백성들로부터 선지자로 인정을 받으며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나고 있기에 유대 지도자들은 그의 정체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이기에 요한이 무슨 목적으로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자기 무리에 속하지 않은 누군가 나타나 특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니 불편하고 경계가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요한은 세 번에 걸쳐서 “나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첫 번째 대답,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요 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요한은 오해의 여지를 두지 않습니다. 숨기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입니다. 신구약 중간기에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컸습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구원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례 요한이 했던 일은 그가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잘못된 기대나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합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얻거나 이득을 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뿐입니다.
두 번째 대답, 나는 엘리야가 아니라
요 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뿐 아니라 엘리야가 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죽지 않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말 4:5). 엘리야가 와서 기적들을 행하며 메시아를 소개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러면 엘리야인가?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4; 17:12; 막9:13).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엘리야는 그들의 질문에 맞게 대답해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올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요한은 그들이 잘못된 기대를 하지 않도록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은 엘리야가 아닌 다른 선지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엘리야로서 충성했던 자입니다.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요한에 대해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메시아를 위해 백성들을 준비하리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눅 1:17)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그에게 맡겨진 사명 주의 백성을 준비하는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 대답, 나는 그 선지자가 아니라
요 1:21 …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신 18:15). 그래서 그 선지자에 대한 질문과 기다림이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다림은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과 겹쳐지기도 했고, 엘리야처럼 메시아를 앞서 오는 인물로 이해되어 메시아와 구분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메시아와 그 선지자를 다른 인물로 생각했기에 그리스도인지를 물은 후에 이어서 그 선지자인지도 물어봤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또한 그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감추어있던 비밀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이렇게 조사단이 와서 세례 요한에게 했던 질문마다 아니라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합니다.
요 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당신은 자신에 대해서 누구라고 말합니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참 중요한 질문입니다. 중요한 만큼 잘못 생각하기도 쉬운 질문입니다. 스스로를 오해하고 잘못 생각하며 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아닙니다.
요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하나의 소리일 뿐입니다.
이사야 본문에서 이 말씀은 비유적으로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내는 것을 말했는데, 요한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증언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길을 곧게 하고 장애물을 없애고 잘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왕의 오심을 앞두고 왕이 가실 길을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오셨을 때 그것을 알리고 왕을 소개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하는 일이 그러합니다.
요한은 소식이 아니라 소식을 전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하나의 소리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자신은 한낱 목소리일 뿐입니다.
세례 요한의 대답에 대해서 그들은 또다시 질문합니다.
요 1: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당시에는 부정한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세례를 받음으로 의식적으로 정결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지금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권위를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는 일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요한은 직접적인 대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에 요한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 “내 뒤에 오시는 분” 그분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소개합니다.
요 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요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한이 그분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푸는 일을 할 만큼의 자격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분과 비교하면, 자신은 그토록 부족한 자이고 그분은 그토록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신발 끈 푸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신발 끈 푸는 일은 종에게도 시키지 않는 일로 그만큼 비천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조차도 요한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얼마나 위대하신 분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첫째 날, 세례 요한의 증언입니다. 요한의 증언은 “네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아니라”는 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닙니다. 요한은 세 번이나 나는 아니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베드로도 세례 요한이 했던 말을 똑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처럼, 세 번에 걸쳐서 나는 아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같은 말이지만, 그 말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 다르고 결과도 다릅니다. 베드로와 요한 모두 나를 부인하는 나는 아니라는 말을 했지만, 하나는 나를 위해 주님을 부인하는 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을 위해 나를 부인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상황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는 말, 그대로를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겠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부인하는 말을 하고 그러한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나를 부인하는 선택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를 위해 주님을 부인하는 선택과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부인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위해 나를 부인함으로 내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그렇게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나를 위해 주님을 부인하는 삶을 산다면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를 오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도록 바르게 나는 아니라고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이 아니라 주님의 종입니다. 나는 주님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하는 자입니다. 나는 주님이 아니기에 주님이 명하신 일을 할 뿐입니다. 내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삶으로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