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본문: 시편 2편
설교자: 최종혁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저는 지난 시간에 ‘인생의 두 길’이라는 제목으로 시편 1편을 통해, 여호와가 인정하시는 복된 자의 길과 멸망으로 향하는 악한 자의 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보게 될 시편 2편 역시 1편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2편은 어떻게 악인의 길에서 돌이켜서 복된 자의 길에 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시편 1편 1절이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한다면, 본문 말씀의 마지막에서는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즉, 어떻게 복 있는 자가 될 수 있는지 시편 2편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2편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메시아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에서 왕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시편 2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본문에서는 이것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우리는 행4:25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편 2편은 총 12절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간단히 3절씩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각 부분에서 어떤 목소리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먼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오고(1~3절), 다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목소리가 나오며(4~6절), 아들 예수님의 목소리에 이어(7~9절), 마지막으로 성령의 목소리가 나옵니다(10~12절). 각 부분을 따라가면서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1). 1절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방 나라가 ‘분노’하고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민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분노’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 기독교, 믿는 사람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난합니다. 기독교에 관련된 인터넷 기사를 보면 수많은 이들의 조롱 섞인 댓글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그들은 ‘헛된 일을 꾸민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꾸민다’는 말은 시편 1편에 등장하는 ‘묵상’이라는 단어와 같은 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그 말씀에 잠겨있는 것이 시편 1편의 복된 자의 묵상이라면, 같은 의미로 헛된 일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그것에 잠겨있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헛된 일을 꾸미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있고, 비록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중심에 헛된 것들, 헛된 가치관이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2). 세상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비방하고 세상의 모든 일들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4:25-28)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23:12).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뜻을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신약의 이 말씀들은 시편2편 2절에 대한 성취입니다. 또한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데 힘을 쓰고 있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와 같이 하는 이유를 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3).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박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그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유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죄에 매여서 고통받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의 멍에를 벗기시는 분, 참된 자유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 세상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죄악된 세상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지우려고 합니다. 창조주, 주권자, 심판자는 세상에 없다고 말합니다. 나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이고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부처님, 알라신 할 것 없이 누구든 좋다고 말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2-23)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4). “하늘에 계신 이”가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양 살아가고 있을 때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을 비웃으십니다. 인간들 스스로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십니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5,6). 여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나’를 가리키는 말이 3번 나오는데 사실 원어성경에서는 4번 등장합니다. 즉, “내가 친히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나의 왕’이라는 것은 나를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나에게 속한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던 그 때에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시면서 그것에도 아랑곳 않고 ‘내가 나의 주권대로 내가 원하는 왕을 내 땅에 세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우리의 주권자가 되십니다. 세상에는 무신론자도 있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오늘날은 다른 사람의 신앙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비단 오늘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거에도 산의 신이든 바다의 신이든 서로의 신을 존중하고 숭배해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신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7~9절에서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분은 아버지께서 하신 말은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7). 2절의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6절의 ‘나의 왕’이 누구인지 분명해집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강조하기 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히1:5에서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임을 말하고 있고, 유대인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되게 말씀하시자 주님을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요5:18).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8).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를 예수님께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9).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의 대적들을 깨뜨리고 예수님께 굴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을 내버려두고 계시지만 때가 되면 그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의 일이지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시행할 능력과 권세가 있으십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당장 행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님은 고난 받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승리하신 주님이 이제 다시 오실 때는 영광의 왕, 심판의 주로서 오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순종한 천사든지 불순종한 천사든지, 누구든지 그분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이 믿는 자들에게는 영광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날,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실까요? 우리에게 심판을 미리 말씀하시는 이유는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노아의 시대 때, 니느웨의 시대 때 계속해서 이와 같은 심판의 메시지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돌이켜 회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9).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향해 교훈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11).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 섬기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위의 3절에서 세상 사람들이 벗어버리고자 했던 ‘결박’은 ‘두려움’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에 매여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평판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 두려움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외에 다른 것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어떤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믿는 자의 삶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또한 떨며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떨며 즐거워한다’는 말이 뭔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그분의 은혜로 인해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단은 일시적이고 작은 것을 보여주며 그것으로 만족하게 하지만,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12). ‘입맞춘다’는 것은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는 것입니다.(왕상19:18) 우리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은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12). 언젠가는 모두가 아들에게 복종하게 되겠지만 그 때는 이미 늦습니다. 아들에게 나와 무릎을 꿇은 자는 여호와께 피하는 자입니다. 심판을 내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피할 길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피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은 재난영화에서처럼 일부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제안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원한다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 있는 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흔히 시편 2편은 구약의 요3:16절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심판을 피할 길을 예비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제는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아직 그 심판을 피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분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고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으신 분, 하나님께 피하신 분은 아마 일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그것일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11)를 기억하시고, 세상을 두려워 마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세상의 즐거움을 즐거워 마시고 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이것이 믿는 자들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