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그리스도인과 정치 1
본문 : 베드로전서 2장 13-15절
설교자 : 조정의
벧전 2:13-15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대통령, 국회의원, 경찰 당신들은 고철덩어리다”
“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위와 같은 정치적인 발언들을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가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런 발언을 할 수 없을까요? 잘못된 것에 대해 의분에 차서 한 말들인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세례 요한이 헤롯왕의 부도덕한 결혼에 대해서 말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종교지도자와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위에 세워진 권위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때 꼭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세워진 권세자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것들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정치적인 참여는 개인의 취향이나 자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는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곳입니다. 베드로는 1장에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 하나님의 풍성한 구원의 계획과 섭리, 능력에 대해 말하고 나서 구원받은 자답게 살라고 말합니다. 이후에 베드로는 사회구조 안에서, 육신의 상전과 종 사이에서, 그리고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정치적인 권세자들에 대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우리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살았던 우리를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삼아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퉁이 돌 위에 우리를 세우셔서 신령한 집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남들도 다 이 정도는 말하잖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권세자들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13). 여기서 “순종하라”는 동사는 즉각적인 순종을 말합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쩔 수없이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결정적인 순종을 말합니다. 내 의지를 가지고 순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누군가가 시키고 억압하니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하라”는 명령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그 순종의 대상은 “인간의 모든 제도”입니다. 이것은 정치제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권위자, 왕과 같은 정치인들을 가리키는데, 오늘날로 말하자면 대통령, 장관, 시의원, 시장 등일 것입니다. “모든”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의 폭이 넓어집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른 합법적 권위들(부모/자녀, 교회 교역자/구성원들, 사업상, 교육제도상, 자발적 조직체 등의 권위 구조)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웨인그루뎀, 182). 여기에는 동네 이장이나 아파트 통장도 포함될 것입니다. “뭇 사람(everyone)을 공경하며”(17).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의 범위가 이렇게 넓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 모두에게 즉각적이고 결정적이며 자발적으로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순종하는 이유에 대해 “주를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생각하며 하는 억지 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시는 목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15). 여기서 “선행”은 순종입니다. 우리 위에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들에게 순종할 때 우리는 그 순종을 통해 어리석은 사람들(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고 핍박하는 악인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당시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이들에게 비방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권세자들에게 순종한다면 정직하고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죄와 싸우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2). 그리스도인은 선행과 순종을 통하여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정치적인 발언과 권세자들에 대한 태도는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9).
오늘날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법과 행정법을 어기고 불법적인 것들을 행합니다. 그것을 통해 혜택을 누리면서 입으로는 ‘주 안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도로교통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외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가장 혐오하셨던 것이 이 외식입니다. 한 편에 진리를 가지면서 다른 한 편에는 거짓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우물에서 단 물과 쓴 물을 함께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이 땅의 법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남들도 다 하는데’라고 생각한다면, 그들 중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도록 하나님의 소유 삼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각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리입니다. 우리 위에 세워진 권위를 멸시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거부하라는 명령을 한다면 그것은 거절해야 합니다. 그들은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권위를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거부해야 합니다. 과거 애굽에서 히브리인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에, 산파들이 순종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것은, 생명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금하신 음식을 왕이 먹으라고 하자 먹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사도들에게 예수님을 전파하지 말라고 명령했을 때, 사도들은 목숨을 바치면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처럼 숭배하라고 명령했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거절하여 핍박과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을까요?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때리면 부모를 경찰이 체포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부모는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커튼으로 가리고 매를 듭니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에 대해 죄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법입니다. 외국에서는 이 법을 어기면 벌금을 물거나 구금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우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기 위해 세상의 법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인간의 모든 제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쓸 당시 황제나 지도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말하면서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왕)가…보낸 총독에게 하라”(13-14). 당시 왕은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였습니다. 그는 황제가 되기 위해 아내의 오빠를 살해하고, 황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친어머니 살해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아내를 처형하고 이복동생, 스승, 충신들을 차례로 죽입니다. 우리가 잘 알기로,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화재의 원인을 그리스도인에게 뒤집어씌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의 잔혹함은, 인간의 몸에 송진을 묻혀 인간 촛대로 정원에 세워놓고 파티를 벌일 정도였습니다. 베드로도 이 네로 황제의 정치 하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이러한 악한 왕의 시대에 베드로는 이와 같은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을까요. 베드로는 왕의 비윤리적인 것들을 눈감아주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가 있으니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총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황제가 각 지역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세운 자들이었는데, 그 총독이 있는 나라에 순종하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는 총독에 대해 설명할 때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14)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권세자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 조직에 해가 되면 처벌하고 반대로 유익이 된다면 상을 내리고 그 업적을 기념했습니다.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어떤 정치적인 시스템이든 그것은 사회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는 악마가 만든 것이고 민주주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정부주의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시민도 죄인이고 지도자도 죄인입니다. 민주주의 안에는 죄들이 없습니까?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에 동성애가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일반적인 은혜로 그러한 사회 구조와 그들의 역할을 허락하십니다. 만일 이러한 사회 구조가 없다면, 간음이나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이 없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볼 때 악하고 문제 있는 정치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국가제도는 장차 그리스도가 다스리실 영원한 나라, 왕정국가입니다. 죄가 없으신 권력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죄 없는 백성들의 나라 말입니다.
오늘날은 정치적인 발언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고 어떤 정치적인 의사를 피력하는 것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를 하나님의 명령에 거스르면서까지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권세자들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 위에 세워진 권세자가 비윤리적인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 순종함으로 세상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이 순종의 삶으로써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는데, 거칠고 비윤리적인 말과 행동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따라야 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 19:1~11).
만왕의 왕이시고 모든 창조물을 지으신 분께서, 자신의 앞에 있는 한 인간 위에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합법적이지 않은 심문 과정과,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는 군사들과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의 판결에 대해 예수님은 한 마디도 비방이나 욕이 없으셨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순종으로 우리의 죄가 씻겨내려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느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한 개인 위에 세워진 권위에 순종하셨다면 우리 역시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정치적인 발언을 할 때나 권세자들에게 대응할 때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