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가 성령을 대적할 때

본문 : 사도행전 5장 1절~16절

설교자 : 조 정 의

 

모든 살인 사건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처럼 특별한 이름이 붙 어 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사건은 ‘예루살렘 교회 부부 살인사건’ 이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부부는 충격적인 죽임을 당했고, 더 놀라운 것은 이 둘을 죽인 사람이 예루살렘 교회의 목회자 베 드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베드로를 통해 심판하신 성령 하나 님이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무서운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 것일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실까?

먼저 교회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산헤드린의 경고와 협박을 받고 사도들이 교회에 돌아왔을 때, 교회는 하나님께 한마음으 로 소리 높여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성령 하나님의 충만 을 받아 모든 성도가 더욱 힘써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사도들을 통해 큰 권능이 일어났으며, 성도가 자발적으로 한마음과 한 뜻 이 되어 자기 소유를 팔아 사도의 발 앞에 두어 가난한 성도가 없 도록 돌아보는 역사가 일어났다(4:23-37). 날마다 구원받는 사 람을 주님께서 더하게 하셔서 삼천으로 시작한 교회는(2:41) 오 천이 더해졌다(4:4).

그런데 모든 사람이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 님은 자비롭다”는 뜻을 가진 아나니아,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삽비라, 이 부부는 다른 마음과 뜻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비가 아 니라 공의를,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 흉측한 일을 일으켰다.

1. 사건(1-11절)

사건은 매우 간단하다. 아나니아그의 아내 삽비라더불어 소유를 팔았다(, 4절). 둘 중 하나의 생각이 아니라 함께 결정 한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 모든 성도가 한마음, 한 뜻이 되 어 자기 물건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두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아 나니아와 삽비라도 그 역사에 동참하기 원했던 것이다. 작정 헌 금을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사도들과 교회 앞에 ‘우리도 밭을 팔 아 전액 헌금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는 것이다(2절). 아까 웠던 것인지, 자기들의 필요가 있어서 그랬는지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전부를 바치지 않고 일부만 바치는 것을 아내인 삽비라도 알고 있었다(2절). 함께 공모했다는 것이다(9절). 아나니아는 부 부 대표로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의 마음을 꿰뚫어 봤다. 그리고 그의 죄 를 밖으로 끌어냈다. 베드로가 지적한 아나니아의 죄는 돈의 일 부만을 바친 것이 아니었다. 4절을 보라.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 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없더냐” 땅을 처 분하는 것, 처분하여 취득한 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그 에게 있었다.

베드로가 문제로 삼은 것은 바로 아나니아가 성령 하나님을 속이 고 있다는 것이다. 4절을 보라.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3절도 보 라.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아나니아는 사도들 그리고 교회가 자신이 바친 돈이 전부인지 일 부인지 절대로 알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전부를 바치겠다고 약 속하고 돈을 가져왔으니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도들 보기에 다 른 헌신적인 성도(예: 바나바, 36-7)와 같이 칭찬받는 훌륭한 성 도처럼 보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돈도 챙길 수 있었다. 하 지만 그가 고려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그 헌금의 대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삼상 16:7). 아나니아는 참 교회로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성령을 속인 대가는 아주 무거웠다. 성령 하나님을 속이고 그분 께 거짓말을 했다는 베드로의 책망을 듣자마자 아나니아는 그 자 리에서 엎드러져 혼이 떠났다. 죽었다(5절). 그리고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했다. 교회가 성령을 대적한 것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았다.

갑자기, 그것도 불명예스럽게 죽은 사람의 장사는 빨리 지낸다.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세 메고 나가 장사했고(6절), 세 시간쯤 지났다. 그때 죽은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가 들어왔다. 그녀는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7절).

베드로는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 게 말하라.” 삽비라 역시 베드로와 온 교회를 속일 수 있다고 생 각했다. 그래서 “예 이것뿐이라”라고 답했다(8절). 그녀 역시 하 나님은 안중에도 없었다.

베드로는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죄를 이렇게 지적한다. “너희가 어 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9절). 여기서 ‘시험’ 은 무언가의 참 정체를 실험을 통해 밝혀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성령 하나님(주의 영)이 계신지 아닌지 마치 금메달이 진짜 금인 지 깨물어 보는 것처럼 의심을 품고 확인해 봤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 하고 시험하여 책망을 받았다(출 17:2; 신 6:16; 시 78:18). ‘하 나님이 여기 계신가?’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마치 하 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반응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광야 에서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을 시험한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교회 가 되었으면서,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께 거짓을 말하고, 하 나님을 속이려 하고, 하나님이 여기 과연 계실까? 우리의 거짓 을 설마 아실까? 하여 시험하였다. 하나님이 마치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사람만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했다. 그것이 바로 성령 하 나님을 대적하는 성도의 신앙생활이다(마 4:7; 눅 4:12).

그 결과가 무엇인가? 베드로가 말하기를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 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 라”(9절). 곧 삽비라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났다 (10절). 그녀의 남편을 장사지내고 온 젊은 사람들은 그녀를 메 어다가 남편 곁에 장사했다(10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 들이 크게 두려워했다(11절). 이것이 일어난 사건의 전말이다.

2. 사탄 충만의 결과(3)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너무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 그도 세 번이 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는가? 자비를 보여야 하 지 않았을까? 하지만 베드로가 아나니아를 죽이지 않았다. 하나 님이 죽이셨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거짓말 한 번 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이 셨을까? 한 번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참 교회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삶이 성령을 대적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사람 을 인식하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신앙이었지 정작 성령 하나님 은 철저히 무시하고 시험하고 속이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아나니아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라 고 꾸짖었다(3절). 두 사람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아니라 거짓 의 아비 사탄으로 마음이 충만했다. 사탄은 가룟 유다와 같이 그 리스도를 모르는 이의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기도 하 고, 베드로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의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기도 한다(눅 22:3; 요 13:27; 마 16:23).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참 교회였는지 아니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는 없다(구원받았는지 아닌지). 중요한 건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 사람의 참 신앙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당신의 신앙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진실한 신앙인지 아닌지 반드시 드 러내신다. 확실한 건,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사는 성 도는 성령을 대적하는 성도라는 것이다.

코로나 19사태가 길어지면서 우리는 점점 오롯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를 많이 갖는다. 성도 가 함께 나누는 말씀, 찬양, 교제 등이 우리의 신앙을 더 하나님 과 가깝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은혜의 도구가 되는 것은 사 실이지만, 당신의 신앙이 사람들이 인정하고 칭찬하기 때문에 지 속되고 있었다면, 성령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 앞에서 가 지고 있는 신앙이었다면, 지금 어쩌면 당신은 ‘하나님이 여기 계 신가?’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시험하는 삶을 살고 있을지 도 모른다.

하나님 없는 것처럼, 없어도 상관 없는 것처럼, 그래도 아무런 불 편함이나 갈급함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성령 을 속이고 대적하는 교회를 반드시 책망하신다.

두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건은 참 슬프고 무 서운 일이다. 온 교회가 크게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듣는 모든 사 람들이 다 크게 무서워했다. 13절을 보면 “그 나머지는 감히 그 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라고 나온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으로 교회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사 람을 바라보고 속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함부로 교회와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교회 는 칭송을 받았다. 이 일을 겪고 나서 교회가 더욱 한마음 한뜻으 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 생활 하는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이 아니라 성령 충만 을 받은 교회의 모습은 12-16절에 기록되어 있다.

3. 성령 충만의 결과(12-16)

먼저 교회가 기도한대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 사가 많이 일어났다(12절). 15-16절을 보면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 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 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다(참고. 마 14:36).

이 놀라운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고 그 이름 을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12절). 그들이 성전에 모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 도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웠던 것이다(행 2:42, 46). 사람에게 보이려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 사탄이 아니라 성령이 충만한 교회, 성령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 라 성령에 사로잡힌 순종하는 교회에 하나님은 믿는 자를 더하셨 다. 14절을 보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무리더라.

교회에 흉측하고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이 일은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갖도록 만들었다. 성 령에 대항하지 않고 성령을 속이거나 시험하지 않고 성령의 충만 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게 했다. 그 결과 하나님 은 그들의 손을 통해 권능을 보이셨고 진리를 선포하셨으며 그들 을 통하여 믿는 자들을 계속해서 일으키셨다. 하나님은 건강한 교회 곧 성령을 경외하고 따르는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다.

4. 결론

오늘 설교가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점검하게 만들지 모르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나님 앞에 서 거짓말을 하는지, 성령을 속이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기 삶을 평가해보는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면 좋겠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스도가 머리 이시고 당신은 그분의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된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 을 버리는 것처럼 가장 크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과 당신 사이를 가로막은 죄를 사하기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영원 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하나님과 친밀하고 영원한 관계 를 맺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었다. 당신이 그리 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 앞에 정직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하 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 에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출 20:6; 요 14:15).

당신의 신앙을 한 번 점검해보라.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무 엇을 하지 않고 있는지 점검하기 전에,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를 점검해보라. 그리스도와 당신의 친밀한 관계를 점검해보라. 당신 의 신앙은 누구를 위한 신앙인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 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정말 당신과 함께 계시는가? 당신 은 성령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가? 예수님이 당신에게 물으 신다.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맛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가 된 기쁨을 누리며 참 교회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지금은 사람을 바라보고 남들 보기에 괜찮은 종교인이 되어도 상관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참 슬픈일이다. 마치 진실로 사랑해서 결 혼한 아내와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이제는 아내가 뭐라고 생각 하든 무엇을 느끼든 상관 없이 남들보기에 괜찮아 보일 정도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일에 만족하며 사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다. 하나님은 때로 신랑이신 교회 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무섭게 징계하심으로 나머지 교회가 더 진실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령에게 순종하며 살 게 하신다.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당신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점검하라. 당신의 아내 혹은 자녀가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점검하라. 코로나 위기가 교회에 내려진 하나님 아버지의 훈계라고 생각하고 그 가운데 교 회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진실 한 신앙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하자.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을 대적하는 교회를 체벌하시고 성령 충만한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 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