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삭의 결혼
본문 : 창세기 24장
설교자 : 이병권
하나님께 참 감사하는 것은 우리 교회에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 나오는 여러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배우자를 만나며, 교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있을까? 궁금해집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세상에서 우리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아브라함도 아마 비슷한 소원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이삭의 삶을 인도하시고, 이삭과 함께하심으로 이삭에게 복 주시기를 구했을 것입니다.
사라가 죽은 지 3년이 지났고 이삭의 나이는 사십이 되었습니다(창25:20).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제 이삭의 결혼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이삭의 결혼을 준비함에 있어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믿음과 그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4장은 창세기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창세기에서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창세기의 저자는 특별히 이삭의 결혼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가장 긴 장이 천지창조나 다른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이삭의 결혼이라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결혼 이야기를 넘어서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인도하심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아브라함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삭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는 시점이 된 것입니다.
먼저 1절부터 보면 긍정적인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1)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살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비록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또 여러 실수도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아들이삭이 독신이라는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를 찾아서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남은 마지막 숙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후손들에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종을 불러서 명령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2-4)
아브라함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종을 불러서 이 중요한 임무를 맡깁니다. 이 종에 대해서는 전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전에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던 엘리에셀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종이 그 엘리에셀인지 본문에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릅니다. 이 종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집 모든 소유를 맡고 있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모든 소유를 맡고 있을 만큼 믿을 수 있고, 충성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이가 많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오랜 세월을 함께 했고, 그만큼 경험이 많은 지혜로운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은 지금 엄청난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집안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영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을 고려한 선택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땅을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이미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15:16).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자손이 가나안 사람과 섞이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종이 이 명령을 수행하려면 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여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먼 길을 가느라 고생하는 것은 그렇다 해도, 가는 길에 어떤 일이 있을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데, 과연 어떤 여자가 이 늙은 종의 말만 믿고 낯설고 먼 길을 오겠습니까?
여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결혼하게 될 신랑을 본적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랑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낯설고 먼 곳까지 누가 오려고 하겠습니까? 전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을 수도 없습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취소하고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종은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5)
종은 좀 더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삭이 가면 됩니다. 그러면 여자가 굳이 고향을 떠나 이 먼 곳까지 오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제안을 따르는 것이 이삭의 아내를 택하는 일에 훨씬 더 유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6-7)
아브라함은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딛고 서 있는 가나안 땅을 자기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의 결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삭을 결혼시키려고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목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지혜입니까? 아니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고려해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지혜입니까?
많은 경우에 우리는 여기서 그릇된 선택을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 안에서 방법을 찾기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피할 수 있는 타협안을 찾는 것입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름 똑똑하게 잘 살고 잘 대처하는 것 같은데 나만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별나게 하지 않아도 적당히 하나님 믿는 것처럼 살아도 되는데, 오히려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 앞에 있는 이익보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그 약속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바보처럼 보일 지라도,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말하더라도, 그렇게 바보가 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것을 두고 바보라 말한다면 바보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대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7절에 그가 어떻게 말했습니까?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7)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행복한 바보로 살게 하는 힘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 있습니다.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자가 앞서 일할 거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할 때 고민해야 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냐,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그분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앞서서 준비하시고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 수 있지만,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을 신뢰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확고한 뜻을 이해한 종은 이제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해서 맹세합니다. 이삭의 결혼은 정말 중요한 일이고,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각오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종에게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하는 가장 엄숙한 맹세를 요구했고, 종은 아브라함의 뜻에 따릅니다.
그러고 나서 종은 이삭의 신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신부와 신부 집에 줄 온갖 좋은 선물들을 가득 챙겨서 낙타 열 필에 싣고 먼 여행길을 떠납니다.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최소한 한 달은 족히 걸리는 길입니다. 신부 집에 줄 선물을 실었기 때문에 중간에 강도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표지판이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종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수 있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위험이나 여정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정말 간략하게 그 고향 땅에 이르렀음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자가 그보다 앞서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계속됩니다.
마침 저녁때가 되어 종은 성 밖에 있는 한 우물곁에 낙타를 쉬게 했습니다.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오는 저녁때에 우물가로, 신붓감을 고르기 위해 가장 최적의 장소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어떻게 이삭의 신붓감을 고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낯선 곳에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신부될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12)
종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이 문제를 그분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래서 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기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아내를 찾는 일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구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물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 자신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여자가 나타나면 그 여자가 하나님이 이삭을 위해 준비한 사람으로 알겠다고 합니다.
이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메고 우물가로 왔습니다. 성경은 리브가를“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15)으로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이 있습니다. 나홀은 그의 아내 밀가로부터 브두엘을 낳습니다. 리브가는 그 브두엘의 딸, 아브라함 조카인 브두엘의 딸입니다. 그래서 리브가와 이삭을 우리 촌수로 따지면 5촌 사이입니다.
리브가가 물동이에 물을 채워가지고 오자 종은 자신이 기도한대로 그녀에게 달려가서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신속히 물동이를 내려 종으로 마시게 하고 바로 낙타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종이 기도한 조건에 맞는 사람이 이렇게 바로 나타났습니다. 종의 입장에서 이 기도는 상당히 지혜로운 것이었고, 또 그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낙타 열 마리에게까지 물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급히 움직여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해, 낙타들이 마시기를 다할 때까지 물을 길어 나릅니다.
16절에 우물에 대한 표현을 보면 그가 우물로 내려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물에서 물동이에 물을 채워가지고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우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두레박을 내려서 물을 담아서 끌어올리는 그런 우물이 아닙니다. 사람이 밑으로 직접 내려가서 샘처럼 솟아나는 우물에 물을 길어서 다시 위로 올라와야 하는 큰 수고가 따르는 우물입니다.
낙타 한 마리가 물을 먹으면 얼마나 많이 먹을까요? 낙타는 한번에 100리터의 물을 먹을 수 있고, 당시 여인들이 쓰는 물동이는 보통 12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낙타 열 마리면 1000리터입니다. 무게를 따지면 1000킬로, 1톤입니다. 낙타들이 마시기를 다할 때까지 물을 길으려면 대략 80번은 더 다녀와야 합니다. 그만큼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친절하고 심성이 착한데다가 건강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종의 이러한 기도를 ‘매우 영리한, 인격과 체력 테스트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 종은 이삭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이삭의 모든 것을 봐왔고, 이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에게 어울리는 신붓감을 생각하며 이런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이삭과 잘 어울리는 신부의 조건으로 이렇게 적극적이고 힘 있고 친절한 성품의 여자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단순히 조건을 걸고 미신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조건을 두고 이 조건을 통과하는 사람이라면 이삭의 아내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지혜에서 나온 기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종은 열심히 우물을 오가며 낙타에게 물을 주고 있는 리브가를 묵묵히 주목하여 봅니다. 그리고 종은 그녀의 친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금으로 된 코걸이 하나와 금 손목고리 한 쌍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정말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삭의 신부인지 알기 위해 마지막으로 질문합니다. 그녀의 집안에 대해 묻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대답합니다. “이르되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내게 말하라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23-24)
종은 리브가의 대답을 듣고 감격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해주신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멀고도 먼 길을 여행해서 무사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아내를 위한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아름답고 정숙하며 친절하고 부지런한 처녀가 나타난 것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바로 아브라함의 동생의 집안이었습니다. 이것을 다 우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앞서 보내셨고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여기까지 선하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종이 이 모든 일에 대해 이렇게 반응합니다.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26-27)
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하고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찬송받기에 합당하신 분, 아브라함을 향한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않으시고 신실하심으로 아브라함은 물론, 그의 후손에게까지 모든 약속을 지키시고 그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렇게 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삭은 아내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창세기의 저자는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세기의 중심인물을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교체합니다. 그리고 이삭이 결혼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면서 아브라함과 그의 종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마치 우리가 룻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살펴봤던 것처럼 여기서도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감독하시지만, 무대에는 직접 등장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직접적인 말씀이나 어떤 기적으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계속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타났습니까? 먼저,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을 준비하며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에서 이삭의 아내를 구했고, 이삭이 그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리브가를 약속의 땅으로 오게 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성하며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이삭의 아내를 준비하셨고, 만나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없는 걸까요? 그럴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뜻을 이루는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일을 위해, ‘나의 인생, 나의 결혼과 나의 진로, 나의 직업, 나의 자녀, 그 모든 것을 그 안에서 생각하는가‘ 입니다.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헌신하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내 삶을 통해서 성실하게 대답해간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입니다.
잠언 3장 6절 말씀을 보면, 우리 인생길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앞의 조건을 절대로 빼먹어서는 안 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 뜻에 순종할 때 그분은 우리 앞서 행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위하는 마음, 그리고 제가 아버지로서 제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처럼, 그러한 마음으로 제가 교회의 목자로서 우리 교회를 생각하며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삶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과거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신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