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밀러는 “일상기도”(A Praying Life: Connecting with God in a Distracting World)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드린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우리 안에 조용히 냉소주의가 생기거나 영적인 피로가 몰려온다…우리는 믿음이 부족하거나 못된 그리스도인처럼 보이기 싫어 자신에게마저 의심을 숨긴다. 냉소에 창피함까지 더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흔히들 하는, 기도에 관한 입에 발린 말들도 우리의 냉소를 더 굳혀준다. “기도할게” 혹은 “기도해 보자”라는 말로 대화를 끝내기도 하는데, “당신을 기도로 올려드리겠다”, “기도할 때 기억하겠다” 따위의 용어들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만 그렇게 해놓고 정작 기도하지는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기도해봐야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냉소와 입에 발린 말은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흔한 좌절은 기도 그 자체다. 기도한지 15초만 지나도 난데없이 할 일들이 떠오르면서 생각이 삼천포로 빠진다. 순전히 의지력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기도로 돌아가 보지만 어느새 똑같아진다. 기도 대신 잡념과 염려가 뒤죽박죽 섞인다. 그러다 보면 죄책감도 든다. ‘난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다른 사람들은 기도할 때 이런 문제가 없는 것 같던데.’ 그러면서 5분만에 “난 기도할 사람이 못 돼. 차라리 볼일이나 처리하는게 낫겠다”라고 말하며 포기해 버린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 기도하고 싶은 본능은 창조 때부터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해 기도할 줄 모르는 무능함이 생겨났다. 악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켜서 하나님께 말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기도하고 싶은 갈망과 철저히 망가진 기도 안테나가 서로 마찰을 일으켜 끊임없이 좌절을 낳는다. 꼭 우리가 뇌졸중 환자라도 된 것 같다.
여기에 어떤 기도가 좋은 기도인가 하는 엄청난 혼란까지 가중되면 사태는 더 복잡해진다. 기도를 시작할 때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기도 첫머리에는 예배를 드리려 한다. 그러나 잠깐 동안은 그런 대로 되지만 그래도 억지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다 보면 다시 죄책감이 들고 의문이 생긴다. ‘내 예배가 충분했을까? 정말 진심으로 했을까?’
갑자기 영적인 열심이 생겨 기도 리스트를 만들고 기도 제목에 따라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곧 무덤덤해져서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 같아진다. 기도 제목은 점점 많아지고 귀찮아지며, 많은 제목들이 피부에 와 닿지도 않고 기도가 허공의 메아리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병이 낫거나 문제가 해결되어도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러다 어느새 기도 제목을 적은 종이를 잃어버린다.
기도는 우리가 얼마나 자아에 함몰되어 있는지를 드러내고 우리의 회의를 들추어낸다. 기도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더 쉬웠다. 우리의 기도는 몇 분만 지나면 아수라장이 된다. 겨우 출발선을 떠났나 싶은데 어느새 냉소와 죄책감과 절망에 빠져 옆길에 주저앉고 만다(일상기도, 폴 밀러, 18-20pp)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내 사정을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기도의 문제점을 폴 밀러는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주었습니다.
밀러는 이렇게 형식적이고 삶과 동떨어진 기도가 아닌 ‘기도의 삶’이 진정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과 교신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와 동행하고 계신 하나님과 대화나누는 것이 곧 기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 우리는 더 애타게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절박할 때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듣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그러한 사건만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과 친밀하게 나누는 교제입니다.
[일상기도]의 5부에서 “일상 속에서 기도하라”를 다루기 앞서 밀러는 먼저 어린 아이처럼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우리 하늘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자하시며 성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력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내 연약함을 다 쏟아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처럼 체면을 차리거나 내가 어떻게 보일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연약함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까? 어디까지 꺼내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께 다 쏟아내십시오. 시편에서 다윗이 자신의 감정을 다 쏟아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 다 아뢰십시오.
그 다음으로 밀러는 “냉소”를 극복하라고 말합니다. ‘기도해도 아무 소용없다’라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 각 개인의 삶에 관심을 두고 계시고, 우리의 삶에 철저히 관여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봐도 그들의 삶에 항상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밀러는 바로 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구하기를 연습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이것을 구해도 될까?’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워하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분께 모든 것을 구하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십시오. 물질적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구하시고 세세한 것을 다 아뢰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관심을 갖는 분이십니다. ‘에이~ 이런건 하나님께 구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 구하십시오. 다만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내게 필요한 것을 잘 알고 계시며 나에게 있어 가장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는 것, 그래서 당신의 뜻에 따라 응답하신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고 나를 통해 어떤 일을 이루기 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바른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내 욕심에 따라 나에게 도리어 해로운 무언가를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요 나의 행복이 되는 것들을 알맞게 구할 수 있습니다. 밀러는 “아버지의 계획을 발견하라”는 제목으로 일상 속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는 것을 연습하도록 권면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상 속에서 어떻게 기도를 할 수 있을지 다양한 도구들과 연습,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기도 일기나 생활 속 기도를 적용하는 방법을 이야기 해줍니다.
폴 트립은 [일상기도]에 대해서 “기도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 그 이상이다…정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라고 평하였습니다. J. I. 패커 역시 “솔직하고 현실적이고 성숙하고 지혜롭고 깊다. 적극 추천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책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폴 밀러의 “일상기도”는 좋은 도구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일상 속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현실적인 제안을 주는 책입니다. 이 멋진 도구를 가지고 우리가 날마다 매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주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