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살펴본 원리에 따라 로마서 7장 1~4절을 관찰해보았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4절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려고 합니다. 관찰은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주목하는 것은 모든 올바른 성경해석이 거쳐야하는 필수단계입니다.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그 의미를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잘못된 해석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늘은 해석을 조금 곁들이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관찰과 해석을 칼같이 분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찰하면서 동시에 해석을 곁들이면서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관찰이 먼저 분명하게 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마세요. 근거 없이 해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시작해보겠습니다.

기억나시죠? 4절의 핵심적인 접속사 “그러므로”는 1~3절의 내용을 4절에 언급된 “내 형제들”에게 적용시킵니다. “너희도”(you also)에서 알 수 있듯이 복수인 이 형제들 역시 같은 원리에 적용이 됩니다. 이 원리가 뭐였는지 기억나시나요?

그들이 잘 알고 있던 “그 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합니다. 그 예로 “남편 있는 여인”(married woman)이 나왔는데요. 그녀의 남편(her husband)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해방됩니다. 그래서 “다른 남자”를 만나도 간음이 아니게 되죠. 반대로 대조되는 것은 그녀의 남편이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간음이 됩니다. 남편의 법에 제한을 받기 때문입니다. “매인 바” 되었다고 말했었죠. 남편의 법에서 해방되려면 남편이 죽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여인 스스로 그 법을 빠져나올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1)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고 했는데 죽은 것은 결혼한 여인이 아닌 남편이었죠.

2) 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별히 도식화 할 때 “율법”을 죽은 대상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너희”와 죽은 대상의 사이를 구속하는 구속력을 의미할지 궁금합니다. 이 말이 조금 어려우시다면 아래 그림을 보세요.

“율법”이 두 군데 적혀있죠? 위에 언급된 “죽은 남편”의 자리에 “율법”이 들어가야하는지, 아니면 “남편의 법” 자리에 “율법”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위의 2) 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 대한 것입니다. “율법”에 “법”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더 혼동이 됩니다.

4절에서 1~3절의 원리를 적용시켜야 하기때문에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발생하지요.
이제 4절을 관찰해봅시다.

먼저 바울은 “내 형제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를 부르고 있습니다. “나의”라고 말하는 표현은 바울과의 관계를 설명해주고 더 나아가 친숙함과 애정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겠죠?(이런 부분이 조금은 해석으로 넘어온 부분이기도 합니다. 의미를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라는 부분은 특별합니다. 1~3절에는 이러한 표현 “말미암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관찰해봅시다. 위에서 여인이 남편의 법에서 해방된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남편의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남편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밑에 “다른 이”를 바울이 특별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이것과 관계가 있을까요? 네, 흥미롭게도 그런것 같습니다.

물론 본문에서 “그리스도”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의 관계를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사실에 동의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만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말이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라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이 분이 일단 죽으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죽은 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죠. 그 가운데서 그러나 “살아나신 이”가 되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흥미로운 관찰이죠?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사건은 바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한 것”은 누구입니까? “내 형제들” = “너희”입니다. 무엇에 대하여요? “율법”에 대하여 입니다.

1~3절과 연결을 해본다면, “너희”는 “여인”과, “율법”은 “남편”과, 그리고 죽임을 당한 것은 “벗어난 것” 혹은 “자유롭게 된 것”과 연결이 됩니다. 도식화 해볼까요?

4절을 위의 원리에 맞춰 도식화해보겠습니다.

해석으로 살짝 넘어와 이를 통해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 생기는데요.

1)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리를 의미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끊어주는 것이 죽음입니다. 율법과 “너희”가 매어 있던 것이 끊어지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은 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시에서 죽는 대상이 뒤바뀌는 문제는 관계가 없어집니다.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누가 죽는가? 보다는 관계의 분리에 있기 때문이죠.

2) 법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율법이 “법”이라서 조금 혼동이 되었지만, 결국 법이 의미하는 것은 그 관계에서 비롯된 구속력, 요구입니다. 관계가 사라지면 구속력도 사라집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분리되면 그 관계가 요구하는 구속력도 사라집니다. “율법”과의 관계에서 분리되면 그 “율법”이 요구하는 것, 그 구속력도 사라집니다. 결국 “너희”와 분리된 대상이 “율법”이요 그 율법과 분리되어서 사라진 것이 그 율법의 요구, 율법의 구속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율법”과 “너희”가 분리된 사건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무엇을 하였는데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아내와 남편이 분리되고 남편의 법에서 해방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너희”(성도)와 “율법”이 분리되었고 “율법”의 구속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개념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1~3절까지 “다른 남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4절에서 “다른 이”로 등장하는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너희”와 “율법”의 관계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율법의 구속력에서 해방되게 하셨고, 대신 자신에게 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는”으로 시작되는 목적이 등장합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다른 이”에게 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른 남자”를 만나게 하시는 것이죠. 그 다른 이는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이시며 그분에게 “너희”는 가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에게 갈 수 없겠죠? 그분은 “살아나신 이”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갈 수 있습니다.

그분께 가서 “너희”는 무엇을 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이 다른 이에게 가는 목적인데 누구를 위해서인가 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입니다. 율법을 위한 열매도 있을까요? 5절 이후로 내려가면 더 자세히 나옵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매와 사망을 위한 열매가 비교됩니다.

옛 남편 율법은 “너희”로 하여금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존재였는데, 그리스도라는 새 남편은 “너희”와 “율법”의 관계를 끊으시려고 죽으셨고 그로 인해 너희를 “율법”과 분리시키심으로 “율법”에서 해방되게 하셨고 살아나셔서 “너희”의 새남편이 되셔서 이제는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관찰. 바울은 “너희가”라는 말에서 “우리가”라는 말로 마지막에 변경하였습니다. 바울과 바울의 형제들 모두가 이 영적 원리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관찰하고 해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4절을 정리해봅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죽으심으로 우리 스스로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율법과의 관계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요구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우리와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살아나신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도록 요구하십니다.

1-3절의 원리와 4절의 원리가 잘 조화가 되고 있죠?
그리고 이 놀라운 연합의 원리, 율법과의 완전한 분리와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연합이라는 개념은 로마서 내내 중요한 원리로 작용합니다. 특히 전후 문맥이라고 하죠? 6장과 8장에도 계속해서 연결되어 사용되는 원리입니다.

흥미로우신가요? 다음주에는 5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