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신 장면을 기억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예수님은 또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 24:44)
모세오경과 선지자의 글, 시편은 유대인들이 구약성서를 나누는 기준으로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은 구약의 250여 구절을 인용하여
신약시대 드러난 진리를 확증하고 있으며
암시적인 언급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1,000여건에 달합니다.
특히 우리는 마태복음과 히브리서에서
구약시대 선지자의 예언이나 성막의 모형이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직접적인 가르침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약성서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보물찾기 하듯 예수님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문제는, ‘구약성서의 모든 역사적 기록(내러티브), 시, 예언서에
그리스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가?’입니다.
리처드 슐츠는 한 목사의 설교를 소개하며
“만일 여러분이 읽고 있는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을 찾지 못한다면,
찾을 때까지 계속 읽으세요”
라고 성도들에게 선언했다고 말합니다.
슐츠는 위와 같은 접근법의 문제를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경 본문이 당신에 ‘관한’ 것이거나
당신을 ‘가리키는’ 내용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다만 예수님의 죽음부터 부활에 이르는 그 엄청난 일들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명확히 주지시키기 위해,
예수님과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설명하셨을 뿐이다.
-리처드 L. 슐츠, <문맥: 성경이해의 핵심>, 63p
성경이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계시였으며
점진적인 계시라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성경이 당시 독자가 처한 환경 속에서
또한 구속사의 흐름 안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쉽게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슐츠는 “이런 해석은 창의적이고 위험한 추론으로 무한정 이끌 우려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24장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늙은 종을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따라
늙은 종은 리브가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종을 따라 아브라함의 집으로 내려와
이삭의 신부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예수님, 그리고 리브가는 예수의 신부, 교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늙은 종은 성령님으로 교회와 신부 된 교회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 24장의 내러티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낸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늙은 종이 리브가에게 준 음, 금은 그리스도의 의와 구속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그럴듯한 해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도 명확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24장은 그런 의미를 내포한 본문이 아닙니다.
만일 위에서 찾아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 의미가 본문의 참된 의미라면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1. 교회(리브가)를 택하기 위해 오신 분은 예수가(이삭) 아니신가?
2. 교회(리브가)가 부르심을 입기 전에 원래는 세상의 소욕을 좇아 살던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을까?3. 구원에 있어서 택하심과 미리 아심에 대해서는
(이 본문이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주지 않는가?
하나님(아브라함)과 예수님(이삭)은 교회(리브가)가 아내가 될 줄을 모르지 않았는가?)4. 예수 그리스도(이삭)의 가장 핵심적인 구속사역인 십자가는 이 이야기에 어디서 등장하는가?
5. 성령(늙은 종)은 하나님 아버지(아브라함)와 아들(이삭)과 동등하지 않은 종의 신분인가?
6. 아내를 누이라고 몇 번이나 속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가?7. 성령(늙은 종)이 교회(리브가)를 만나서 데려오기까지 신약성경에서
절대주권으로 구속을 이루어내신 아버지 하나님(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는(이삭)
아무것도 안 하신 것으로 이 내러티브에서 받아들여야 하는가?8. 성령(늙은 종)의 내주하심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9. 교회(리브가)가 성령(늙은 종)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신약의 가르침은
이 내러티브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슐츠의 말대로 “창의적이고 위험한 추론”은 계속해서 심각한 교리적 오류와 이단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드러난 장막과 제사가 보여주는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 역시
성경이 보여주는 선을 벗어나 추론을 계속해서 할 때
우리는 ‘제단의 높이가 삼 규빗인 것은 삼위일체를 상징한다’는
엉뚱한 해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숫자 3에 대해서 우리는 삼위일체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혹은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봐야 하나요?
자색실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청색실은 하늘색이므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홍색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늘게 꼰 베실은 그리스도의 종되심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잠언 31장에 등장하는 현숙한 여인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잠언 31:21~22)
이 여인은 가족을 위해서는 인성을 상징하는 홍색 옷을 입히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왕권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파는 사람으로 봐야 할까요?
조금은 비약적이라고 볼 수 있는 위의 예시들은 사실
우리가 성경의 본문을 그 당시 배경과 상황에서 보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의미와 일대일로 맞대응 시켜
해석을 도출하려고 노력할 때 도출될 수 있는 극단적인 경우를 보여줍니다.
추론의 한계가 해석하는 사람이 정하기 나름입니다.
얼마든지 다양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성경의 모든 구절에서 예수님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이 원래부터 그렇게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성막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하나님께 나아오기 위해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히브리서에서 설명하는 대제사장과 희생제물, 제사제도에 대한
모형적의미,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아브라함 이야기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인도하심으로
늙은 종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데리고 오게 하셨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씨인 이삭,
이제 리브가를 통해 그 계보를 이어 나가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녀가 이삭을 통해 낳은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열 두 지파의 초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중 유다를 통해 왕권이 예언되고
유다 지파에 다윗을 통해 영원한 왕권이 약속되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으로 창세기 24장은 그리스도를 향한 말씀이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구절 하나 하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본래 의미하는 것을 찾으면 됩니다.
성경 본문은 각각 그 시대 그 독자에게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이며
그 안에서 의미를 일차적으로 갖습니다.
그 의미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본문이 점진적으로 드러내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집중하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이며,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어떤 시대, 어떤 배경에서 일어난 것인지 주목하십시오.
그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주권적으로 역사하셨으며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구약의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칼럼에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숲을 보는 성경 해석”이라는 주제로 잠시
말씀을 드리고 본격적으로 성경의 문학적 장르에 맞게
성경 해석하는 법을 다루고자 합니다.
항상 “성경이 과연 그러한가?”를 품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