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침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엽니다.
그리고 “하나님 당신의 뜻을 알려주세요”
”하나님, 당신의 길을 보여주세요”
”제게 말씀해주세요”라고 외칩니다.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때론 너무 깊고 포괄적이며 광범위합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 전체를 흐르는 하나의 큰 섭리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각각의 본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가장 확실하고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명령어입니다.

명령어는 때로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b)

때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신 5:5b~7)

때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의 설교에서 발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이 주어졌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계시 안에서도 발견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물론 본문에 나타난 명령어를
현재 성경을 읽는 독자인 나에게 하신 명령이라고 무조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누가 누구에게 한 명령어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신약성경에 기록된 명령들은(특히 서신서 안에서 성도들에게 명령한 것)
쉽게 오늘날 우리들에게 적용이 가능합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반영하는 원리들,
그 진리의 말씀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그 명령에 따를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를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엡 4:1~7)

이 본문의 첫 시작은 “주 안에 서라”는 명령입니다.
주님 안에 형제 자매가 함께 굳건히 서기 위해서 뒤이은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먼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어떤 마음인지는 2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기뻐할 이유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7절부터 21절까지 바울은 하늘의 놀라운 시민권과
영광의 형체로 변화될 소망에 대해 말합니다.

주 안에 있기에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관용을 알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가 경험한 긍휼과 자비를
세상에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또한 모든 것에 염려하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그 명령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의 평강과 보호, 인도하심입니다.

이렇게 명령들은 바로 지금 이 은혜를 얻은 자로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나님의 분명하고 확실한 뜻을 알게 해줍니다.

읽고 있는 본문 가운데 명령어가 나오는지 확인해보십시오.
먼 길을 돌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방황하지 말고
그 명령어를 주목하십시오.

그것이 오늘날 성도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원리를 가진다면
그것을 붙들고 어떻게 내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굳게 선 신앙을 갖기 위해
어떻게 주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쁨이 없는 내 삶의 특정 영역에 주 안에 참 기쁨의 이유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천국 소망과 영원한 기업의 풍성한 축복이 내가 불만족하는 영역을
어떻게 채워주고 일깨워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자, 그런데 명령형이 없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는 문맥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항상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적용을 이끌어 내기를 권합니다.

예로,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게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 4:42~44)

위의 본문에서 어떤 사람은 문맥과 관계 없이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는 것에 감동하거나,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에 감동하여 엉뚱한 적용을 도출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문맥이 강조하고 있는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신 창조주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소명에 따라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 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그분을 닮고 싶다. 그분을 따르고 싶다! 라고 적용을 도출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예레미야 51장 25~26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사람이 네게서
집 모퉁잇돌이나 기촛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영원히 황무지가 될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에서 오늘 적용할 것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때도 역시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좋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주권적이신 분이시며
심판의 주요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멸망의 산과 같은 바벨론을
멸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
세계 만국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심판자,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지,
어떻게 높이며 살지 고민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적용을 도출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의 결론은 항상 순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에 순종하기 위해
성경을 매일 읽습니다.

명령어를 찾는 것은 그 일을 쉽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 중심으로 문맥에 따라 성경을 읽을 때
적용을 비교적 쉽고 안전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