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제시 존슨은 자비사역(Mercy Ministry)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교회 안, 또는 세상의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과
고아들과 과부들의 필요를 채우는 사역

야고보는 서신서에서 이러한 자비사역을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말합니다(약 1:27).

자비사역은 결국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를 둔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긍휼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시 111:4; 사 54:10; 마 12:7; 시 25:6; 59:17; 86:15).

시편 103편에서는 여호와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러한 긍휼과 자비가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출 22:27; 레 19:10; 23:22; 신 15:7).

가난한 자를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행위,
돌보지 않는 행위를 하나님은 처벌하셨습니다(겔 16:49; 렘 5:28~29; 암 5:12).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도 동일하십니다.
때문에 신약성경에서도 우리는 여러 가지 자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눅 19:8; 마 19:21; 눅 6:20; 갈 2:10; 롬 15:26; 고전 16:1~4).

제시 존슨 목사님은 신약시대 교회에서 강조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가난한 자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사역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긍휼과 자비의 사역은 교회(단체)에 대한 명령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내려진 명령인가?

존슨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전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임무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의 차이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먼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첫 째, 자신의 가족의 필요를 돌봐야 합니다(딤전 5:8)
둘 째, 교회 안에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약 1:27)
셋 째,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갈 6:9~10; 딤전 4:10; 5:4, 8).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입니다.
세상을 더 밝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물론 부차적으로 그런 효과를 가져오지만)
우리의 선행(자비, 긍휼)으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벧전 2:9-10).

그들로 하여금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벧전 2:12).

그러나, 단체로서 교회의 주된 임무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교회 안에 자비사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자비사역은
그리스도인, 즉 교회의 한 지체된 자들에게 행해진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행 2:45).

조금 더 일반화 시켜 말하면,
교회는 세상을 구제하고 치료하기 위해 세워진 그룹이 아닙니다
.

존슨 목사님은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사명을 주었는지 혹은 주지 않았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 권능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에이즈를 치료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모금을 하며
정치적, 경제적 업적을 이루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교재에서 말하듯

“우리는(교회) 국제적 기아를 종결하거나,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거나
수돗물이 나오는 집에 사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라고 부름 받지 않았”
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세상에 드러내고 선포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단체에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거나
이러한
일에 최우선순위를 세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성도를 굳건히 세우며
말씀으로 성도를 양육할 때
주의 군사요 성도된 자들이 일어나
가난한 자와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교회가 원래 교회의 임무에 성실하고 충성할 때,
교회의 각 지체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비사역에 대해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진짜” 사역이 무엇인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돕는 수많은 단체와 그룹을 볼 수 있습니다.

존슨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실적으로 더 좋지 않은 것은 자비에 초점을 맞춘 대부분의 사역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거나 신학적인 초점이 흐려져 있기 때문에,
목사들이 자신의 성도들을 사역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우리는 왜 우리가 돕고 있는지 그 목적은 무엇인지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을 돕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복음을 들고 그것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구제사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영혼 구제를 뒤로 하고
물질적인 구제 그 자체에만 치중된 사역을 하고 있다면
영원이라는 시간 앞에서 아주 일시적인 도움만 주고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 않는 것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자비사역 자체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세상에 선포하는 일 자체를 멀리하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존슨 목사님은 모든 선교의 목적이 이와 부합 되야 한다고 말합니다.

해외의 가난과 정치적 종교적 탄압, 질병과 싸우는 나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여러 가지 필요를 돕는 교회의 사역들이 참 훌륭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생활조건을 개선해 주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지속적인 긍휼과 자비사역을 행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분명한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존슨 목사님은
우리가 더 자비사역에 힘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물질주의와 싸우며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보이며 복음전파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통해 가능하다
복음 선포와 더불어 이와 같은 종류의 희생적인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복음을 더욱 증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