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이루다’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 말할 때 주로 과거에 일어난 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구원’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칭의’의 부분,
또 하나는 날마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성화’,
그리고 나중에 주님과 같은 몸을 가지게 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즉 구원에는 이미 이뤄진 것이 있고(과거),
지금 이뤄가고 있는 것이 있으며(현재),
앞으로 이뤄질 것이 있는 것(미래)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것을 칭의, 성화, 영화라고 구분하고 있지 않고
그저 “구원”이라는 말 하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이 구절의 다른 번역본을 보면 “항상 복종했던 것 같이”로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그동안 복종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너희의 구원을 계속해서 이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말씀에 순종하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 1:2)
라고 말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순종의 본은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빌 2:8).
그리스도의 삶이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삶입니다.
믿지 않았을 때 “불순종의 자녀”였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면
“순종의 자녀”가 됩니다(엡 2).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즉 ‘순종의 삶’과 ‘구원을 이뤄가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순종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다 칭함 받는 것은 오직 은혜로 되는 것이지
우리의 어떠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바울은 편지의 대상자들이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고 칭함 받은 “너희 구원”을 이뤄가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두렵고 떨림으로” 그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구원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평안의 삶,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내가 어떤 자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뤄가는 과정에서도 죄에 민감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신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은혜와 자비, 사랑이 풍성하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에 기쁨과 두려움이 함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쁨과 두려움 가운데 “구원을 이루어 갈 때”
우리는 여러번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의 옛 자아와 세상으로 부터 오는 죄의 영향력과 싸울 때
종종 져서 상처입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는,
우리에게절대 스스로 갈 수 없는 성화의 길에 우리를 등떠밀어 세우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을 이루는 것”이 반드시 성취될 이유가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13절)
성도 행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에서 ‘행하다’는 ‘능력있게 행한다,’ ‘효과적으로 일한다’는 뜻으로,
어떤 행동 자체에 결과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원하는 일을 행하고 그것은 반드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와 같이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절)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선한 것을 갈망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을 때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죄를 사랑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는 죄를 미워하고 선한 것을 사모합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받은 자들에 대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것을 갈망하는 마음을 주실 뿐 아니라(“소원을 두고”)
그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 뜻을 이루도록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13절)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는 신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삶이고 앞에서 말했던 ‘복음에 합당한 삶’,
성화입니다.
칭의가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라면
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져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역사하십니다.
이 성화에 대해 사람들은 두 가지로 오해를 합니다.
하나는 지나치게 인간적인 노력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들은 ‘구원은 하나님이’, ‘성화는 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오늘 하루 하나님을 잘 섬긴 것 같으면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자랑할 것이 생깁니다.
반대로 오늘 하루 실패하는 삶을 살았으면 쉽게 좌절합니다.
또 다른 오해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굴복할 때
그제서야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노력은 오히려 성화에 있어서 방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 사람은,
나 자신을 완전히 비우면 내가 사라지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셔서
아무런 죄의 유혹도 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완전성화주의).
그러나 우리가 말씀에서 본 것처럼, 성경은 둘 중 하나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고 말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다 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내 노력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일하지만 그 힘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 말씀은 바울 자신이 했다는 것인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인지 의미가 모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일하신 것입니다.
그는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더 많이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넘어지고 실패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 자리에 머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속 해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확신 있다면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갈 수 있습니다.
한 쪽에 치우친 생각으로 구원을 이루는 길에서 헤매지 마십시오.
좌절하고 낙심하여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약속하신 그것에 신실하십니다.
당신의 구원을 이루는 일에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명목으로 순종의 의무에서 발을 빼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능력주시는 하나님은 확실하십니다.
그 안에서 당신이 모든 것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게 하신 이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돌리십시오.
이 칼럼은 2014년 11월 2일 주일, 빌립보서 설교 내용을 정리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칼럼은 성화의 명령만 다루고 있으며, 구원을 이루어가는 데 꼭 필요한 태도와 시각에 대해
더 알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따라가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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