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다 나은 기독교, 이번 주는 미디어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정래형제가 교재를 잘 정리해 놓았는데요.
다음 링크를 따라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토론을 하면서 청년들 스스로도 영화나 드라마를 고르는데 있어서 어느정도의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선정성, 폭력성에 민감하였고, 또 반성경적, 비성경적 사상이나 교훈을 주는 영화도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기준이 되는가? 였는데,
교재에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약화시키는 유혹을 멀리하라”고 한 것처럼
자신이 더 죄에 빠지기 쉬운 부분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선정적인 것에 유혹이 강한 청년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더 강한 기준을 세워 자신을 보호해야하고,
사상과 이념에 흔들리는 사람은 그러한 미디어를 접하는데 더 주의해야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
존 파이퍼는 영화나 드라마를 대하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하라고 권합니다.
1. 나는 반드시 이 영화/드라마를 봐야 하는가?
무조건 보지 말라는 뜻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심심해서 혹은 남들이 다 재미있다고 하니까, 유명하고 인기 있으니까 그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선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미디어를 선택할때 반드시 성경의 기준으로 심사숙고하여 선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아무 음식이나 마음대로 먹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잡다한 음식들 가운데,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지 고민해봐야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고전 6:12)
2. 이 영화/드라마는 진리를 제대로 담고 있는가?
영화는 때로 폭력을 미화하고, 복수를 멋진 것이라고 말하며, 부와 권력을 쟁취한 자들의 인생을 멋진 삶으로 묘사합니다.
드라마는 고부갈등이 당연한 것이라 말하고, 부부가 누가 권위를 쟁취하는가의 문제로 싸우는 것을 익살스럽게 보여줍니다.
반성경적인 해결방안이 삶의 문제의 멋지고 현명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기도 하며,
죄를 병으로, 죄인을 오히려 피해자, 희생자로 그려내기도 하고,
진리, 의로움, 사랑과 겸손을 부끄럽고 비굴한 것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화/드라마가 말하는 것이 진리를 얼마나 담고 있는지 생각해봐야합니다.
3. 이 영화/드라마의 참 주인공이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바뀌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은 위 2번에서 말하는 비현실적인 세상에서 비성경적인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참된 진리를 말씀하시는 유일하신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라면 과연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그분이라면 영화에서 말하는 저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하셨을 것이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셨을까?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마지막 엔딩 음악이 들리면서 사실 이 미디어의 컨텐츠들은 우리의 영혼에 흡수됩니다.
세 번째 질문은 이렇게 걸러지지 앟고 우리 영혼에 스며드는 여러 가지 사상과 생각들을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걸러 받아들이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교재에서 말하는 미디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잘 선별해서 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하는 시간과 물질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귀한 시간과 물질이라는 달란트를 주인되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합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더 미디어를 선택하거나 즐기는데 있어서 신중해야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은 항상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디어를 보는 그 시간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재산을 팔아 보물이 있는 밭을 산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분으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생명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시 63:3)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미디어를 대하는 목적도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고 높이는 일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함께 모여 좋은 기독교 영화를 보고 서로 토론하며 유익을 끼치거나,
때론 문제가 있는 드라마를 함께 보고, 성경적으로 어떤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지 배우는 시간을 갖거나,
함께 쉬면서 유쾌한 미디어를 함께 보고 같이 교제나누는 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도를 사랑하는 일에 미디어가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가 미디어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더 많이 대하고 애착을 갖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미디어를 사랑하게 되고,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며,
결국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미디어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재를 쓴 커트 게브하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딤전 6:12).
미디어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소망을 흐리게 만들어 버렸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을 식게 하였을까?
왜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대신에 그 시간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가?그리스도의 눈부시게 찬란한 영광으로 한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데
왜 당신은 실제가 아닌 흐릿한 텔레비전의 장면들을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가?우리의 눈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에게 고정하자.
그렇게 하면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세상이 주는 환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C. J. 매허니의 “세속주의를 경계하다”라는 책에
밥 코플린이 쓴 “기독교인과 음악”을 정래형제가 정리한 글을 링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