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처음 네 가지 계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이고,
그 다음 여섯 가지 계명은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법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출 20).
예수님은 구약성경(“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종합하여 말씀하시되
그 중 첫째 되는 계명을 가리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둘째 되는 계명으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 22:39)
고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성경의 우선순위는 항상 하나님이 앞서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첫째는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땅히 첫 번째가 되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둘째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온전히 대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원천과 힘과 동기가
풍성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서도
처음 세 가지 기도 제목이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되어 있으며
그 다음으로 양식을 구하는 것과, 서로 용서하는 것,
악과 시험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는 것입니다(마 6:9-13)
예수님은 이렇게 분명하게 결론지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당신의 영광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다른 이에게 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사 42:8)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만물을 지으셨습니다(사 43:7)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사 49:3)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셨습니다(시 106:7-8)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를 택하셨습니다(엡 1:4-6)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죄를 용서하십니다(사 43:25)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요 7:18)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요 12:27-28; 롬 3:25-26)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와 연합하십니다(롬 15:7)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시 오십니다(살후 1:9-10)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의 영광을 가지고 우리에게 임하십니다(요 16:14)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이 땅에 가득 채우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합 2:14)
새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해를 대신할 것입니다(계 21:23)
만군의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에 계십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먼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으며,
창조와 멸망, 택하심과 부르심, 거룩하게 하심과 영화롭게 하심
온 세상의 심판과 새롭게 창조하시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계획되었고 허락되었으며
준행되어질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근본적으로
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돌릴 마땅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 외 다른 것과 바꾸는 것입니다(롬 1:21-23).
하나님의 영광에 흠집을 내는 일은
그것이 얼마나 작은 일이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은 그에 합당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합당한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자신이
그 영광에서 멀어진 죄인인지 깨닫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신자 역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고전 10:31)
삶과 죽음, 모든 결정과 선택이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됩니다(롬 14:8)
그들의 택하심, 부르심, 의롭다하심과 영화롭게 하심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9).
성도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과 바꾸는 일에 바쁩니다.
어두운 세상의 주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대항하여 싸우기 때문이며
세상은 그 마귀의 주관 아래 급속도로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엡 2).
미디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남자와 여자들을
성적 상품으로 만들어 쾌락과 정욕의 열매를 맺는 곳에 사용하도록 만들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풍성하게 누려야 온전해지는
남녀간의 사랑을, 하나님 없이 육체적, 정신적 사랑이 가능한 것처럼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항하고
성경의 내용을 더하고 빼서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포장하거나
왜곡시키고 하나님을 미친 신처럼 보이게 만들거나
인간의 사랑 앞에 쩔쩔매는 바보같이 그려내기도 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은 죄인인 그들이 선택한
극단적이고 저돌적인 반항의 결과입니다.
끝 없이 악의 끝으로 달려가는 세상이 하나님을 비방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찌해야 할까요?
최근에 영화 <노아>가 개봉하고, 비기독교 혹은 반기독교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의 말이 참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트로트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목사가 방송에 나와
찬반에 대한 의견으로 인터넷이 뜨거웠습니다.
사람들은 참 쉽게 두 번째 카테고리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생각 이전에
먼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인격에 대한 생각이 앞섭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비그리스도인이며
영화는 문화적 표현이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하거나,
그것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하거나,
영화를 통해 텍스트 안에 있는 인간적인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거나,
반대로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하며 영화를 보러 가면 잘못된 것이라 말합니다.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라고 하기도 합니다.
트로트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목사를 정죄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니 좋다고 칭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말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라고 합니다.
다른 권위주의적인 목사나 비리를 저지르는 목사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비판합니다.
세상 말세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대부분 이러한 반응들과 공방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여호수아나 모세와 같이
먼저 하나님의 크신 이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어디 없을까요?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수 7:9)
영화 노아를 통하여
분명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무시되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분명한 말씀의 진정성과 신뢰성에
손상이 가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말씀 그 자체의 가치가 손상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 말씀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삐딱해졌으며
그 삐딱한 시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늘어났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서 더 멀어지는 즐거움(?)을
심지어 그리스도인도 기꺼이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 영화를 통해 더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지는 노력을 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즐기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의 참 진리보다는
허구와 판타지로 빚은 거짓을 더 즐거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트로트 목사의 동기나 열정은 둘째 문제입니다.
그의 현란한 몸짓과 우스꽝스러운 복장, 여성도들과 함께 만든 춤바람 분위기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쓴 고귀한 명제를
담기에 합당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태초에 계획되고 오랜 선지자의 목숨을 바친 연구와
순교의 피를 흘려가며 수많은 복음 전하는 자들이
지켜온 복음의 메시지가
한 시간 남짓 되는 TV오락 프로에서
출연자들의 폭소와 유흥거리로 다루어 진 것은 비극입니다.
얼마나 더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으로부터 비방을 받아야
그리스도인이 힘있는 목소리로 담대하게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변호하겠습니까?
주를 믿고 주의 영광을 위해 먹고 마신다고 말하는 성도들이여!
왜 그렇게 성급히 두 번째로 넘어가
영화감독을 옹호하고, 영화 보러 가는 자를 비방하며, 보지 않는 자를 판단하고
트로트를 부르는 목사를 비판하거나 혹은 옹호하는 일에
많은 열정과 시간을 쏟아 붓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합시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을 받은 사실에 의분을 갖기 바랍니다.
영원 세세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직접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에게
먼저 진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고
왜곡된 거짓을 그려낸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드러내고 높이기 보다는
썩어질 인간의 영광을 높이고 그것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라고 분명하게 말해 줍시다.
보러 가는 사람이나 보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분별은 그 다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과 구속사역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열정과 열심, 동기와 마음이 어떻게 되었든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고귀하신 영광이
마땅히 받으셔야 하는 영광과 찬송이 아니라
사람들의 충동적인 지지와 칭찬,
그리고 폭소와 가벼운 재미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슬퍼해야 합니다.
음악적 취향의 문제, 진정성의 문제, 진심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이름과 그 영광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일들만
우리의 심판 날에 남게 될 것입니다(고전 3).
당신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비웃을 때
당신은 무엇을 먼저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조작하고 왜곡하며
그 권위를 무너뜨릴 때
당신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문화와 미디어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속사역을
가볍게 다룰 때 당신의 첫 번째 반응은 무엇입니까?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여
세상에서 빚어낸 썩어질 황금송아지를 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크신 이름이 비방을 받은 것에 대한
의분이나 부르짖음 없이
그것을 만든자들을 옹호하거나
그것을 만든 자들의 심정이나 진심을 먼저 생각하거나
그것을 만든 자들을 이해하고 안으려고 노력합니다.
모세처럼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기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만군의 여호와의 영광을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담대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하고 완벽하신,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