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초임 교사 사망 사건은 그동안 참아왔던 교사들의 분통을 터뜨렸다.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정상 범위를 넘어서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지독한 이기주의가 더해져 그나마 남아있던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 사이의 아름다운 미덕마저 찾아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로 체벌받은 경험이 있고, 중학교 농업 시간에는 농기구를 깨끗이 씻지 않았다는 이유로 삽으로 십수 대의 매를, 고등학교 때는 칠판을 지우지 않은 주번의 책임을 물어 반장이라는 이유로 따귀를 맞은 적도 있다. 불합리한 이유로, 잘못에 상응한 수준이 아니라 훨씬 과도한 체벌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래서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알고, 그에 대한 노력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도 인정한다. 하지만 책임을 가진 자의 권위를 빼앗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작금의 사태가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처럼, 그 권위를 갈취한 누군가의 횡포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뿐이다.

1. 성경은 권위를 존중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성경은 권위의 출처를 하나님에게서 찾는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쓸 때, 제국에서 가장 높은 권세를 차지한 사람이 그 악명 높은 네로 황제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본문은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분명하다(벧전 2:18). 바울은 일차적으로 “다스리는 자들” 곧 선을 베풀고 악을 보응하는 정치적-군사적 권세자를 염두에 두었지만, “모든 자”, “두려워할 자,” “존경할 자” 등 적용 범위는 훨씬 넓다(롬 13:7). 하나님은 남편을 가정의 권세자로 세우셨다(“남편이 아내의 머리”, 엡 5:23). 부모를 자녀 위에 두셨다(엡 6:1). 육체의 상전에게 권세를 주셨고(엡 6:1), 교회의 인도자에게 권위를 부여하셨다(벧전 5:5). 선생과 제자 사이에서 가르치고 인도하는 자에게 권세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권세 아래 억울하게 압제당하고 억눌린 자를 보호하기 위한다고 말하면서 권세 자체를 부정하거나 빼앗으려 한다. 남편의 권위는 가부장적이라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책임만 무겁게 짊어질 뿐, 양육할 때 필요한 권위는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법적으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엄중히 처벌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노동법이나 고용법은 억울한 피해를 입는 노동자만 보호하는 게 아니다. 상당히 많은 고용주들의 피해를 낳는 데 악용된다. 선생은 가르칠 책임만 있지, 그 책임을 이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권위는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내부에서 이러한 인본주의적 풍조를 지지하고 나아가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 성경의 하나님이 사랑과 평등의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을 따르는 공동체라면 마땅히 세상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랑이 필요한 곳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세를 빼앗거나 무시하는 방식으로 선을 추구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렇게 사랑과 평등을 실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전들에게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라고 말하면서(골 4:1), 더 높은 권세에 호소한다. 권위에 의해 피해를 본 이들은 권위를 빼앗는 것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지만, 성경은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라고 말한다(롬 12:19). 더 높은 권위인 하나님의 권위에 의탁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잘못된 권세를 처벌해야 할 때가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선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더 높은 권세와 절차를 통하여). 하지만 명백하게 드러난 잘못을 합당한 방식에 따라 온유하고 진중하게 처리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를 존중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대하는 것이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 취해야 할 성경적인 태도임에 틀림이 없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가 먼저다(딤전 2:1).

2. 성경은 순종을 요구한다

권세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빼앗는 것과 함께 오늘날 자주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 순종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종’은 과거 강압적인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수행해 온 악습과 폐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본주의 사상은 우리가 모두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중요성과 가치를 갖기 때문에 타인에게 고개 숙이고 요구하는 대로 따를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가르친다. 어떤 면에서 오늘날 세상은 남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자기 권위만 내세우도록 부추긴다. 말세에 이기적인 자기 사랑이 심각한 고통을 초래하게 될 것이란 성경의 예언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딤후 3:1-2).

남편과 아내는 각각 자기 의무는 내팽개치고 서로의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하기에 바쁘다. 학생과 학부모는 자기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선생의 의무를 다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한다. 정치인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교회 인도자의 문제를 다루는 이들 중에는 (다 그렇지 않지만) 겸손과 온유로 옷 입고 자기 의무를 다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각각 순종의 의무를 지고 있고, 하나님의 기준에는 절대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라”(롬 2:1).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율법의 요구와 기준을 만족시킨 자들이다. 그런 자들도 성도가 범죄할 때 죄의 문제를 온유한 심령으로 다루면서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해야 했다(갈 6:1). 남의 문제를 올바르게 다루려면 적어도 자기 의무는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사건이 터지면 판단을 받아 마땅한 죄인을 찾아 온갖 정죄와 욕설을 퍼붓는데 바쁘다. ‘나도 그런 적이 있는지 두려워하며 돌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다. 잘못을 지적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지적에서 자유로운지 돌아볼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권위를 존중하면서 하나님이 설정하신 더 높은 권세를 통하여(궁극적으로는 최상의 권세이신 하나님께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나 자신을 돌아보아 같은 문제에 빠지지 않도록 주어진 순종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정반대로 우리의 의무는 돌아보지 않은 채, 우리 위에 두신 권세를 끌어내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르는 사이 스스로 부여한 권세를 쥐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데 헌신하게 될 수도 있다.

결론: 성경은 거룩함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살전 4:3). ‘거룩’은 기본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아침 세상은 이런 저런 소식으로 시끄럽고 언론이 이끄는대로, 대중이 들끓는대로 우리의 생각이 결정되고 마음이 조성될 때가 많다. 이번 사건을 통해 어떤 사람은 권세자를 더욱 미워하며 모든 압제자들의 권위를 어떻게 빼앗을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의무는 하나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문제가 된 이들에게 분노를 쏟느라 바쁠 것이다.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는 ‘구별’된 생각을 가지고 ‘구별’된 행동을 해야 한다. 먼저, 자기 의무를 다하여 있는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행해야 한다. 내게 부여된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고 내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여 적어도 내가 있는 그곳에서는 문제가 되는 악이 성행하지 않고 선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겸손과 온유로 권세자를 존중하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고, 공의와 정의가 온전히 실현될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구해야 한다.

아무도 자기 짐을 지려 하지 않고, 남에게 자기 짐을 지우려 하는 세상, 자기 의무와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남의 의무와 책임만 요구하는 세상, 남의 권세는 무시하고 자기 권세만 내세우는 세상. 우리는 그런 세상의 풍조를 법제화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롬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