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모는 일반적으로 자기 자녀의 건강과 삶에 대하여 걱정을 합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어디에 있든지 늘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소망하고
자녀가 속한 학교, 직장, 사회에서 잘 적응하기를 바라며
자녀가 자신의 삶을 가치 있고 올바른 일에 투자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여기에 한 가지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의 영적인 삶, 즉 아이의 구원입니다.

아이가 사회적으로 잘 되고, 건강하며
학교, 직장, 사회에서 뛰어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세상에서 볼 때 삶을 나름대로 가치 있게 잘 살고 있다고 해도
영적으로 죽어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낙담, 근심, 슬픔, 염려로 가득 차 있게 됩니다.

아이가 구원 받지 못한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자책을 하고
그 죄책감에 오래 시달리게 됩니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차 앞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이를
붙잡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원토록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고통 받을 그 길로
무섭게 달려가는 내 자녀의 영혼을
부모가 어찌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 칼럼을 통해서 저는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아이의 영혼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통해 말씀 드리기를 원합니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의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롬 9:16,18)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지 않는다면
그 어떤 영혼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내가 잘못해서 아이의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자책합니다.
물론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며
부모에게서 받은 환경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완벽하게 잘 한다고 하여도 자녀의 구원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신이 볼 때 자기 역할을 잘 하지 못했다고 자책될 지라도
자녀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긍휼히 여기시는가?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를 반드시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부모는 자기의 역할의 한계를 인정하고
불필요한 죄책감과 자책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부모가 완벽한 환경을 준다고 해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부모가 좋지 못한 환경을 제공했다고 아이에게 소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의 구원은 완벽하게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99%가 아닙니다. 99.99%도 아닙니다. 100%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이를 영혼을 위해서 부모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아이가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예수님의 음성은 참으로 은혜로우시며 자비가 넘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 7:7-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

하나님은 내 아이가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내 아이의 영혼에 대하여 부모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한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 18:12-14)

믿지 않는 내 아이에 대해 교회도 친구들도
부모만큼 간절한 마음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 잃은 양 같은 내 아이를 간절히 찾으십니다.
예수님은 내 아이를 잃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적 자녀인 이스라엘에게 하신
간절한 부르심을 기억해보십시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마 23:37)

내 아이의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이와 같습니다.
잃어버린 탕자가 돌아오는 길까지
달려와서 맞이하고 입맞춘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내 아이의 영혼을 간절히 찾으시고
그 영혼을 불러 모으기 위해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이를 잃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계속해서 그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실 것입니다.
또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셋째, 부모의 역할을 생각해봅시다.
부모는 말씀을 말과 행동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내 아이는 내 입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과
내 삶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무조건 설교 식으로 아이에게 말씀을 주입시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녀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이 하나님을 가르칠 것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6-9)

이 말씀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항상 말씀을 가르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와 함께 있는 동안
늘 성경을 펴서 말씀을 가르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미간에 붙이고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그리고 앉았을 때든지 일어날 때에든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늘, 언제나, 항상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펴서 함께 가정집회를 갖고 말씀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것은 참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자녀와 나누는 대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소개를 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어려움을 갖는 자녀에게
그 마음을 위로해주고 이해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벧전 2).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툰 자녀에게
자녀를 격려하면서 온유한 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용서와 화해의 방법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자녀들과 멋진 곳에 함께 여행을 갔다면
그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야기 해줄 수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큰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이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죄일 뿐만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마음도 아프게 하는 죄라고 알려주고
죄에 대하여 그리고 진정한 용서와 은혜에 대하여 알려 줄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투었을 때
자녀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 용서를 빌고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잘못하였을 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녀에게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보여줄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아이들은 세상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두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지 않는 자들이 참 빛,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정에 믿지 않는 자녀들이 있을 때
믿는 부모는 바로 가정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베드로는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
성도는 이렇게 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믿지 않는 자녀들은
믿는 부모의 신앙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믿는 하나님을 업신여길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권유하는 복음을 강력하게 거부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을 지적하고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비방을 받는 믿는 자들에게 베드로는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일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선한 행실이 믿지 않는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가정의 빛과 소금입니다.
믿지 않는 자녀에게 24시간 일주일 내내 보여지는
하나님의 광고판입니다.

부모의 입술에서 그리고 삶에서 아이는
하나님의 선하심,
은혜와 자비,
거룩하심과 공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맛보아야 합니다.

이 것은 너무 어려운 일 같습니다.
어떻게 부모가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성경은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으로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부모의 삶 가운데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분의 거룩하심과 공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부모의 삶 가운데
보여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아이의 영혼에 대하여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1. 구원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2. 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합하여 간구하라.
3. 구원의 참된 은혜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라.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하여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 있어도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끌고
생명을 샘물 그 곳으로 인도하시고
그 샘물을 향한 갈증을 주시고
그 샘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마음을 허락하시며
그 샘물을 마시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부모는 그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내 아이를 생명의 샘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내 아이에게 샘물을 강요하기 보다는
샘물을 이미 마신 자로서
영원히 갈증 가운데 죽어서 망하게 될 나를
샘물로 인도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목말라하는 내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충만한지
만족스러운지
내 갈증이 완전히 해결되었는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만족함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영혼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이 글을 읽는 모든 부모님의 자녀들에게
은혜와 자비와 긍휼하심을 좇아
잃어버린 영혼을 절대로 잃지 않으실 것이란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