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한 평범한 수넴 여인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한다.
다른 성도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특별히 오랫동안 목회를 한 그리고 해오는 사람들에게는
좀더 색다르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바로 수넴 여인의 이야기 이다.
왕하 4:8-13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우리가 잘 아는대로 엘리사는 엘리야의 대를 이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거칠고 반역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어려운 사역을 하고 있었다.
사실 알고 보면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 혹시 부러워하고 존경한다면)
선지자의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잘못되어갈 때 그 잘못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사람들 또한 즐거워하지 않는다.
엘리사는 그러한 일을 하였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오가며 수넴 여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수넴 여인의 생각은 그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선지자를 가끔 대접하는 일로도 힘들 수도 있고
또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데 이 여인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여인이 선지자의 어려운 삶을 이해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우리는 알수가 없다.
하지만 위의 말씀에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이 여인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러한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엘리사가 그를 불러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실 엘리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것이 있느냐?” 고 물었을 때에
그는 충분이 모든 면에서 이들을 통하여 여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인은 무엇을 바라고 엘리사를 도운 것은 아니었다.
수넴 여인은 남편에게 말하여 가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기 집 앞을 지나는 엘리사를 위하여 담 위에 조그만한 방을 하나 마련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선지자가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마련해 두었다.
엘리사가 방에 들어가 누워 가만히 보니
여인이 자기를 생각하는 생각이 너무 기특하였다.
준비한 모든 것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사랑이 베어 있었다.
왜 하나님은 이 수넴여인의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하게 하셨을까?
나도 개인적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수 있는 30 여년동안 목회를 해오면서
수넴 여인과 같은 사람들을 가끔씩은 만나 보았고 또 만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목회가 너무 너무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아마도 남들이 받지 않은 특별한 은사와 육체를 받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즐거움과 더불어 어려움도 많이 만나고 있다.
때로는 허허벌판에 홀로선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사랑하는
성도들의 사랑으로 인하여 무한한 행복감을 맛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목자라고 한다면 전반적으로
목회의 길은 외로운 길이고 험란한 길인 것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목자들이 인정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는대로 성공적인 목회를 한 위대한 사도 였지만
하나님의 사도로서 곳곳에 힘들었던 그의 심정이 나타나 있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후 5: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 7:24)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딤후 4:16)
하지만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을 읽어보면
가끔 이 수넴여인과 같은 성도들로 인하여 큰 위로와 겪려를 받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본다.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골 4:11)
현대를 사는 목자들도 만일 그가 영적인 가치관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를 이끌어 간다고 하면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목자들이 그 어려운 길에도 때때로 힘을 얻고 위로를 얻는 것은
바로 수넴여인과 같은 성도들이 곳곳에 있어 조그만한 방(?)을 마련해 두고
그곳을 지나는 목자들로 하여금 쉼을 얻게 해 준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하나님께 속한 종이라는 생각에서
그 종들을 생각하는 그들의 오밀조밀한 생각들이 드러난 사랑의 섬김을 보면서
목자들은 엘리사가 느꼈던 동일한 마음으로 위로를 받게된다.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
아마도 하늘나라에 가면 이들이 그 누구보다. 더 큰 칭찬과 위로를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 마 1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