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아직 들어가기 전에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어느 식당에 들렸는데 우리아이들을 사랑스런 눈으로 지켜보던 나이가 좀 지긋한 식당 사장님이
아이들이 참 예쁘게 생겼다고 말을 하여서 나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힘들다고 말하였다.
그때 그 식당 사장님이 그래도 그때가 좋은 때입니다 라고 말을 하였었는데
나는 그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빨리 자라서
부모의 어깨위에 있는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다는 아니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부모에게 있어 그것은 하나의 헛된 꿈에 불과할 뿐이다.
자녀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모에게 주는 짐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학교를 다닐 때는 학비를 대느라고 허리가 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잡으면
이제 부모는 돈을 세는 즐거운 일만 남은 것 같은데 막상 그렇지 않고
자녀들은 전에 보다 더 무거운 추를 부모의 등에 지워 놓는다.
자녀들이 장가가고 시집가면 부모가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벗게 되는 것일까 ?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떤 자녀들은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 이혼을 하고는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겨두고
늙은 부모님으로 하여금 평생을 손주들과 자녀들을 돌보는데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요즈음 젊은 세대들을 보면 자식사랑에 (?) 자기들의 목숨을 거는 것 같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자식 사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 경기를 보는 것 같다.
자기들이 바라는 자식의 성공을 위하여 자신들의 모든 것을 희생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식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것일까?
아니면 자식의 진정한 행복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성공을 이루려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에 근거해서 자식을 성공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적인 가치관에 의한 성공인가 ?
아니면 사탄이 세상 사람들을 마비시켜 놓은 거짓에 의한 세속적인 가치관에 의한 성공인가?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동원해서
자신의 자식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순수하게 영적인 가치관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항변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신앙 양심에 손을 얻고 정직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 깊은 내면에 나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우리의 영적인 안목이 흐려진다면 양심에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그 동기가 영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도 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영광이라는 이름아래서
자신들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욕구를 채우는 것들을 지켜보았다.
나도 자식을 둘을 키워왔고 또 지금도 돌아보고 있는 입장에서 이것은 쉽게 벗어 버릴 수 없는
아주 지독하게 끈질긴 그래서 잘라 내려고 노력해 보지만 쉽게 잘라지지 않는 욕심의 끈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죄가 내안에서 자주자주 아주 근사면 변명을 만들어 나를 속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이기심을 채우면서도 그것이 곧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자녀들이 나의 소원(?)을 좀 이루워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롬 7:11)
하지만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있어 반드시 지켜야할 하나의 원칙이 하나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크고 강하다 할지라도 삶에 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선순위를 범하는 사랑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그 삶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7-38 )
주님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7-39)
그것은 그 무엇이든지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선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자식의 사랑이 하나님보다 앞선 것이어서는 안된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다.
자식을 잘 양육하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사명 중에 하나이지만
그 사명 외에도 우리 각자를 불러 구원시키시고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이루어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 12:11)
오래전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주님을 깊이 사랑하시는 형제님으로부터 미국에 진정으로 일꾼이 필요하고
또한 미국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좋은 곳이기 때문에 영주권을 얻는데 도와줄 수 있으니까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 교육시키도록 하라는 권고를 받게 되었다.
진정으로 우리를 생각해서 해주시는 도움의 제안이었다.
솔직히 유혹이 되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데 있어 크게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녀들을 미국에 데리고 와서 키우면 자녀들은 잘되겠지만 ( 어쩌면)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과 자녀들을 미국에 데리고 와서 교육시키는 것
( 자식 사랑)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자녀교육도 중요하지만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을 저버릴 수 는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내 자식들을 성공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저버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비록 내 자녀들이 미국에서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저버렸는지는 모르지만
오늘날 나는 그러한 나의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부모로서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할 책임이 있기는 하지만
내게도 내가 이루어야할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첫째 되는 사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아무리 자녀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해도
우리가 이루어야할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아이들을 키우는 그리스도인 부모들 중에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말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녀들을 성공시키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깝다.
나는 요즈음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당신의 자녀를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성공시켰다고 해도
성공한 이후에 당신의 자녀의 마음속에 주님이 첫째자리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 성공은 결코 진정한 성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전 어떤 교회 장로님이 내게 말씀하신 탄식 아닌 탄식이 생각이 난다.
이 장로님은 좋은 직장에 다니시는 관계로 자녀들을 사회적으로 잘 키우실 수가 있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학원에 열심히 다녔고 공부를 아주 잘해서 여러 가지 대회에서 입상을 하여
전국적으로 이름도 알려지게 되었고 그것이 부모의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다.
그래서 자녀의 보다나은 발전과 성공을 위해 자신의 직장은 지방에 있었지만
주말 부부를 하면서 까지 희생하며 집을 서울로 옮기고 자식 교육에 힘을 쏟아 부어
결국 아들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그런데 그렇게 까지 성공한 아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교회에 대해 흥미를 잃더니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아예 주님을 멀리하고 세상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분의 탄식은 이것이다.
결국 그들의 그동안의 모든 수고의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성공인가?
주일날 자녀들의 일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기초가 되며
진리의 기둥과 터가될 하나님 말씀에 대한 공부와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며
또한 구원받은 자들의 의무인 예배를 등한이 하고
그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안에 무엇을 심어 주고 있으며
또한 무엇을 심어 주려는 것일까?
공부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곧 시험이 있기 때문에 중고등부에 참석하는 것도 절제시키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마음에 무엇을 심어주려는 것이며
또한 어떤 성공을 그들을 통해 이루려는 것일까 ?
주일날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자녀들을 태우고 학원으로 달려가는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무슨 성공을 거두려는 것일까?
먼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이 생각하여야 할 것은 자식사랑이라는 것
또는 자식 성공이라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은 소홀이 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자식 사랑과 성공이라는 이유로 자식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첫째자리에 계시는 것을 빼앗고
세속적인 성공을 그 첫째자리에 앉게 하도록 유도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입으로 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된 당신의 삶으로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적으로 성공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결혼 하는데 는 별 문제가 없는데
영적으로 성공한 그래서 정말 영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
그러나 세상 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세상 적으로 성공하도록
그래서 세속적인 가치관이 그 마음속에 우선순위를 차지하도록 열심히 양육한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수고의 결과일 것이다.
오늘날에 교회 안에서 세상 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좀 부족해도 인정을 받는데
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세상 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전자에 비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그리고 그들의 자녀교육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진정한 자식 사랑과 자식성공은 과연 무엇일까?
유능한 교육자로. 음악가로. 사회사업가로. 기업가로 정치인으로 유능한 의사로 변호사로 키우는 것일까?
그런데 만일 그들이 그렇게 훌륭하게 된 다음에 그들이 마음속에
주님이 첫째자리에계시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성공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게 될까?
하나님의 이름이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이름이나 가문 그리고 그 부모의 이름을 빛내는데 사용하지 않을까?
진정한 자식 사랑과 성공
그렇다면 이 땅에서 하는 세상적인 교육은 중요하지 않으니 등한이 하자는 이야기 인가?
아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첫째 자리에 계시도록 교육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입이 아닌 삶에서 가르치자는 것이다.
아이들을 주일날은 그 어떤 일보다 교회에 참석해 말씀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며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며 사귀게 하고 아무리 학교 공부가 중요해도 청년회나 중고등부에 자녀들을 참석시켜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배우게 하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식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첫째 자리에 계시도록 양육하는 것이 아닐까 ?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말한 대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 확실하고
앞으로 우리가 하나님말씀대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된다면
그것이 정말 성공적인 자식 교육이며 또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5)
“하나님 우리의 아이들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 위에 임하며
또한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하나님이 첫째 자리에 계시게 하옵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그들의 인생의 최대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그들이 되게 하옵소서”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