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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제 디도서 말씀을 다룰 건데요. 제목은 같은 믿음을 따라입니다. 디도서 1장 1절에서 4절 말씀입니다. 어, 찾으셨으면 다 같이 한번 본문을 읽어 볼까요? 어, 디도서 1장 4 1절에서 예, 1장 1절에서 4절입니다. 하나님의 종이요부터 시작.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있을지어다. >> 어이 편지 내용을이 지금 읽었던 내용이 인산말이거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보통은음 신약 성경의 서신서들이 교회에게 쓰여진 편지입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식으로 인산말도 기록되어 있는데이 편지는 분명히 디모데라는 개인에게 쓰여진 편지고요.
아 디모데가 아니라 디도죠. 디도라는 개인에게 쓰여진 편지고요. 또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있을지어다. 너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분명하게이 개인을 가르쳐서 이야기합니다. 물론 디도를 통해서 디도가 지금 섬기고 있는 그레데 교회 전체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 쓴 편지이긴 하지만이 편지의
일차적인 수신자는 누군 거죠? 디도라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쓴 사람은 바울이었고요. 그리고 받은 사람은 디도였습니다. 어, 먼저이 편지에 배경이 되는이 성도들, 성도들이 살았던 그레데라는 섬을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이 그레데라는 섬은 오늘날 크레타라고 불립니다. 크레타. 어, 크레타라는이 섬에 음, 살았던 성도들에게이 편지가
쓰였는데 어,이 그레데섬의 크기는 오늘날이 우리나라 제주도섬에 약 네배 정도의 크기예요. 그래서 굉장히 큰 섬인 거죠. 아주 작은 섬이 아니라 큰 섬입니다. 거대한 섬으로서 여기에서 그리스 신화 중에 가장 유명한 신이 어, 태어났다라고 사람들이 믿었었어요. 누굴까요? 천동이 번개를 막 >> 아 제우스입니다. 맞습니다. 제제우스. 어 제우스 신이 여기에서
탄생했고 또 여기에서 죽어서 무덤이 있다라고 그렇게 알려진 그러한 섬이었습니다. 그만큼 신을 숭배하는 섬이다 보니까이 우상숭배가 굉장히 많았겠죠.이 이 우상숭배가 굉장히 많았던 그러한 섬이었습니다. 그리고 섬상 어 섬이라는 곳에 특성이 다 있어요. 그래서음 좀 단절돼 있는 곳이기도 하고 많은 배들이 여기에 머물렀다가
떠나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문화를 가지고이 안에 들어와서 주고 갔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많은 문화들이 섞일 수 있고 많은 지식들이 뒤섞일 수 있는 곳이 바로이 섬이었습니다.뿐만 뿐만 아니라 어 저도 요번에 휴가 때 남에 뭐 이런 데를 갔다 왔는데 마을 전체가 무슨 관광지처럼 꾸며져 있어요. 뭐 다 맛집 식당에다가 막이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건가? 평 일상이 없는 건가? 그냥 다 관광지고 막 음식이 있고 막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섬은 전체가 관광지입니다. 어 그러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러서 향락과 이런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그러한 곳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는이 섬이었습니다. 유흥과 향락이 성행하는 곳이니까 그만큼 거룩했을까요? 타락했을까요? >> 네. 달았겠다는 겁니다. 어 실제로 바울은이 디도서 1장 12절을 보시면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 중에서 말한 거예요. 그들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기를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른뱅이라 하니이 증언이 참되도다. 어 바울이 볼 때도 그레인들은 정 이랬다라는 겁니다. 거짓말도 잘하고 뭐 악한 일도 많이 하고 배만 불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이렇게 세속적인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라는 겁니다. 뭐 그레데인 전체가 다 그랬다라는 건 아니겠지만이 일반적으로 그레데인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곳에 교회가 생긴 거예요. 이런 도시에 교회가 생긴 겁니다. 어 어떻게 그에 대해 교회가 처음 생겨났을까? 어 오순절에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모여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방언을 가지고 이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복음을 전했는데 어 어떻게이 사람이 우리가 배우지도 않은 자기가 배우지도 않은 우리의 언어로 말을 하지라고 하면서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놀랐다라고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그레데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레데인인 중에서이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들었던 사람이 있었던 거고요. 그렇게 복음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그에 대해서 모이기를 시작했을 겁니다. 그렇게이 지역의 교회가 생긴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사도들의 공적인 가르침을 받았어요. 그러니까이 교회가 유대교나 잘못된
이교도의 이런 이론들, 지식들, 철학들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사도들이 날마다이 진리로 가르쳤다는 겁니다. 보호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레대는 어땠을까요? 누가 있나요? 없죠. 그러니까 기존에 있었던이 온갖 신하와 잡다한 지식들과
그리고이 당시이 사람들의 타고났던 그러한 세속적인 성품들이 온통 뒤섞인 교회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이 교회에 대해서 신경 쓰기 시작한 거예요.이 교회를 돌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5절을 보시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너를 글에 대해 남겨둔 이유는 무슨 말이에요? 바울이이 디도를
그레대에 보냈다는 얘기입니까? 아니면 함께 가서 그 사람을 남겨 두고 자기 떠났다는 얘기입니까? >> 예. 남겨두고 떠났다는 얘기가 되겠죠. 그러니까 바울은이 그레데 교회를 돌보기를 원했고 직접 방문해서 여러 번 돌봤을 겁니다. 그런데 특별히이 상황 이때는 바울이 로마이
감옥에 두 번 갇혔잖아요. 첫 번째 감옥에 갇혔던 가택 연금 시절과 그리고 두 번째 감목에 진짜 갇혔던 그래서 결국엔 순교하게 됐는데이 두 번의이 투억 생활 가운데 간격이 있습니다. 바울이 풀려났던 시기가 있어요. 바로 그때에이 디도를이
그레데섬에 남겨 두고 마게도니아에서이 편지를 쓴 겁니다.이 편지를 쓰면서 내가 너에게 부탁한 것들을 반드시이 그레대 섬에서 이루어라라고 부탁을 하는 겁니다. 5절에 보시면 내가 너를 그레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성의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예.
바울처럼 사도적 가르침을 가르쳐서이 섬에 있는 교회 성도들이 진리 가운데 굳건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그 일을 하려고 했던 거고요. 디도가이 거대한 섬의 각 성마다 그러한 장로들을 세우는 역할을 맡아서 이곳에 남겨졌던 겁니다. 어
디도는 언제 구원받았다라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어 그런데 아마도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을 통해서 구원받게 된 그러한 이방인이었을 겁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 1장 어 4절에 보시면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뭐라고 돼 있죠? >> 아들된 디도라고 얘기를 합니다. 바울이 결혼을 안 했다라고 우리가 알고 있죠. 그러니까 육신의 아들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믿음의 아들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보통 이런 표현들을 디모데에게도 했거든요. 나의 믿음 안에 나의 참 아들된 디모데. 이런 표현들을 왜 언제 사용했느냐면 자기가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을 통해서 믿음 안에서 거듭나게 된 그런 열매들을 가르쳐서 바울이 아들이라고 표현을 많이 했었습니다. 어 그래서이 디도는 아마 바울을 통해서 회심한 이방인 그리스도인일 것이다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고요. 갈라디아서 2장 1절에서 3절을 보시면 바울은 이들에게이 디도를 이방인 지역에서 활용하는 일꾼으로 사용을 하는데 일부러이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나와요. 왜냐하면 그것이이 유대인들이 혹은 이방인들이 구원받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어 기도는이 사도 바울에게 굉장히 큰 신임을 받았던 일꾼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다뤘지만 고린도 교회 문제 엄청 많았잖아요. 그렇죠? 근데 그 교회의 문제를 중지하라고 보낸 일꾼이 바로 디도였습니다. >> 그래서 고린도 후서를 보시면 디도가 나에게 왔는데 좋은 소식을 전해줘서 내 마음이 너무 기쁘다. 이런 표현을 바울이 사용하기도 해요. 고린도서 7장에 기록되어 있고요. 또
예루살렘에 엄청난 흉년이 들어서 바울이 세운 각 교회마다 기금을이 모아서이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하려고 했었습니다.이 이 구제금을 다 모아서 책임지고 예루살렘에게 전달하는 일꾼이 바로 디도였습니다. 그니까 그만큼 신임했던 거예요. 엄청나게 많은 금액인데 그것을 책임지고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일을이 디도라는 사람이 맡았다라는 겁니다. 그만큼의 신임을 얻었고 또 신뢰할 수 있는 동료였던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서 2장 13절에 보면 바울은이 디도를 내 형제라고 부르고요. 또 고린도서 8장 23절에 보면 디도는 나의 동료이며 나의 동역자다라고도 불렀습니다. 어
그만큼 신뢰하고 사랑하는 주 안의 형제이고요. 그리고 바울이 믿고 가르치는이 진리를 디도만큼 확실하게 정말 내가 가르치는 것처럼 똑같이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디도밖에 없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이 디도를이 그레데섬에 남겨 둔 거였습니다. 음. 바울은이 편지를 통해서이 디도가
지금이 그레데섬에서 전파하고 있는 복음이 진리가 사도적인 권위가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를 원했어요. 그래서이 4절에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된 디도라는 말을 했던 겁니다.이 편지가 그레데섬에 있는 교회 앞에서 읽혀졌다면 성도들이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겠어요? 아 바울이 나와 같은 믿음을 따라 아들된 디도라고 부르네. 그러면 저 디도가 말한 것은 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은 믿음이겠구나라는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이 디모데 아 디도의 권위를 세워 주기 위해서 바울이이 편지를 쓴 거고요. 결국에는 그 디도가이 계속해서이 그레데섬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 약속하신이 믿음의 올바른 역사를 일으키기를 간절히 바랬던 겁니다. 어, 바울의이 간절한 바람이 두 가지가이 인산말에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는 그 두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이 하나님이 주관하신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니까 바울은이 편지를 통해서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것 그리고 디도를 통해서 디도의 입술을 통해서 너희에게 전하는이 진리는 내 말도 아니고 디도의 말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얘기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사도 바울은 자기를 가르쳐서 뭐라고 부릅니까? 하나님의 >> 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 종이라고 돼 있으니까 조금은 더 어 가벼운 어 표현 같아 보이지만 원래는 슬레이브
뭐죠? 노예라는 뜻입니다. 귤로스라는 헬라어인데요. 어 슬레이브 노예라는 뜻입니다. 슬레이브는 영어 알아듣시죠? 예, 좋습니다. 예, 노예라는 뜻입니다. 어, 오늘날 종 하면은 막 뭐 저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이 멋있어 보이잖아요, 표현이. 근데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이러면 약간 어, 왜 자기를 너무 선하게 저렇게 이런 생각이 좀 들죠? 그만큼 노예라는 말이 굉장히 낮춰서 하는 표현 같고 그만큼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인이 하는 것만 시키는 대로 그냥 해야 되는 그런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노예가 정확하게 그 뜻이에요.
>> 노예는 정확하게 주인이 말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해야 되는 사람이고 주인이 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사실 노예로서는 가치가 없는 거고 죽임 당할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자기를 하나님의 노예라고 부른 이유는 내가 디도를 통해서 너희에게 전달한 교리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노예가 주인 뜻을 거스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냐라는 거죠.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전달하라고 한 것을 너희에게 전달한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이어서 나온이 표현도 동일한 목적을 가져요. 예수 그리스도의 뭐라고요? 사도인 나 바울. 사도라는 것은 예수님이 특별히 택하신 예수님의 일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이 사도 바울을 다메색으로 가던 사람을 붙잡아서 회심시키고 너는 이제부터 나의 사도가 될 것이다. 일꾼이 될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부르셨죠. 그러니까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의 노예일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나를 택하셔서 나에게 일을 맡기신 사람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 그리스도의 친한 택함을 받고 세우심을 입어서이 일을 하고 있고 그러니까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말들은이 디도를 통해서 너희에게 전하는이 교리들은 가르침들은 절대로
내 말이 아니다라는 거죠. 권위가 누구에게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 있고요. 또 바울을 사도로 삼으신 예수님께 있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도 바울은 이런 목적으로 자기가 사도가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해요.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뭘
강조하는 거 같으세요? 사람이 세운게 아니다. 나는 어 사람으로부터 난 무언가를 너희에게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죽은 자가 살신 그 하나님의 노예로서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사도로서 너희에게 그 말씀을 대원하는 것뿐이다라고 분명하게 밝히는 겁니다.
어, 그리고 나서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바울은이 디도와 바울을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 그 복음이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이야기를 해요. 어, 디도가 전달한이 믿음의 도, 진리의 말씀 혹은 복음이 분명한 출처가 있는데 그거는 하나님이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2절과 3절을 보세요.이 이 영생은 내가 너희에게 영생의 말씀을 전하는데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그러니까 바울과 디도가 전하는이 영생의 말씀이 그들이 지어낸게 아니고요. 그리고 그 시초가 언제래요? 언제부터 이게 작성된 거래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자가 하나님인 거고요. 하나님이 언제 쓰셨느냐? 지금 막 쓰신게 아니라 영혼 전에 기록하셨다는 거예요. 자, 영혼 전에 존재하셨던 분. >> 난 영혼 전부터 있었어요. 계신가요?
저 혹시 주어 손들었나요? 아니죠. 영혼 전부터 계셨던 분 안 계시죠? 그 시기에 영혼 전에 존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죠? 있었다 한들 하나님이 이러한 약속의 말씀을 생각하실 때에 계획하실 때에 하나님 이건 어때요라고 제안할 사람이 누가 있었냐는 거죠.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랑 상의해서 이걸 만들어 내셨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뜻하신 바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13절과 14절만큼 이것을 정확하게 말해 주는 내용이 없는데요.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모사라는 것은 어떤 상담가 혹은 뭐
뭐라고 하죠? 제갈공명 같은 사람 >> 책사 그렇죠. 예.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어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그가 누구를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돌을 보여 주었느냐 대답이 뭐죠? 누가 하나님께 영원 전에 이런 걸 가르쳐 줬느냐? 누가 의논했느냐? 대답이 뭐예요? 아무도 없다라는 겁니다.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바울과 디도를 통해서 지금 그레대 성도들에게 전달되는이 믿음의 돈은 순전히 누구의 아이디어라는 거예요? 하나님일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전적으로 절대 주권자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분명하게 밝힌 겁니다. 어, 두 번째 바울과 디도가 전한이 메시지의 특징은 하나님으로부터 낫기 때문에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이 말씀에 보시면 음, 2절에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부터 약속하신 것이다.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하나,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에는 무엇이 없을까요? 거짓이 없다는 겁니다.
완전한 진리를 담고 있다라는 거예요. 조금의 오류도 없고요. 오류가 있을 수도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메시지는 그런 특성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 특징은 약속하셨다라는데 있어요. 하나님이 약속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아, 미안해. 아, 약속 요번에 못 지킬 것 같아.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안 되죠. 하나님을 약속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55장 11절을 보시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히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 입으로 나온 말씀은 하나도 땅바닥에 떨어져서 돌아오는게 없다는 거예요. 뭐든지 그 말씀하신 것들이 관역을 정확하게 맞추고 돌아온다는 겁니다. 모두가 다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건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거기 때문에 거짓이 없으시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네 번째로는 하나님은이 감추어진
진리를 전도라는 일반적인 방식으로이 사람들에게 나타내셨다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정하신 방법으로 정하신 사람들을 통해서이 놀라운 말씀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하셨는데요. 첫 번째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셨고요. 그다음에는 그다음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선출하신 사도들을 통해서이 말씀을 전달하셨습니다. 그리고이 사도들을 통해서 특별히 세워진 디도와 같은 일꾼들을 통해서이 말씀이 전파된 겁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4절에 디도를 바울이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너도 나랑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똑같은 진리를 똑같은 그 하나님의 변함없이 약속된 반드시 성취되는 거짓이 조금도 없는 오롯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뜻을 너도 믿고 너도 전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이 그레데섬의 성도들은 이것을 반드시 인정해야 됐던 거예요. 이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듣고 있는 온갖이 세상의 지식들과 온갖 신화들과 섞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것만이 진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것을 그들이 이해하고 반드시 인정하고 또 받아들여야만 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이 강단에서 여러분에게 전파되는 말씀도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라는 것을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돼요. 제가 전한다고 그래서 그런 거 아닙니다. 뭐 제 목사님이 전한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요. 뒤에 있는 주어 아빠가 전한다고 해서 혹은 저기 인하 아버지가 전한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이것이 하나님 말씀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누가 됐든지 상관 없는 거예요. 사실은 누가 됐든지이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하나님이 창세전에 의도하신 그 의도대로이 기록된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달해 준다면 그건 어떤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말씀이다라는 겁니다.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돼요. 무엇이 사람의 지혜인가 혹은 무엇이 사람의 어떤 설득력 있는 웅변과 같은 그런 말들인가 아니면 무엇이 진짜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인가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 감춰 두셨던
그 뜻을이 은사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이 말씀을 열어서 여러분들에게 나타내고 계십니다. 순전한 그 말씀만을 여러분들이 붙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순전한 그 말씀만을 듣기를 갈망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동일하게이 같은 믿음을 따라서이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겁니다. 음. 살아내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이것 저것 막 아무거나 막 잡다하게 들으시고 그것대로 그냥 대충 대충 뒤섞인 삶을 살아가시면 안 됩니다.이 그레데섬 사람들처럼 세속적인 삶을 살면서 동시에 교회도 다니고 이렇게 살아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의 말과 삶이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말과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정말로 혼탁하지 않은 빛을 보게 되는 거예요. 정말로 하나님에게부터 온 그 빛을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두 번째로이 인산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바로 그거예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택하신 자들 삶 가운데서 반드시 역사한다라는 겁니다. 택하신
자의 삶 가운데서 반드시이 말씀이 역사한다라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는이 말씀에 있어서 큰 두 가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전하는 사람의 문젠인데요.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답게 전하지 않아요. 하나님 말씀답게 권위 있게 다루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만 있는 그대로 전파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이 그레데인 사람들이 좋아했던 이런 허탄한 신화를 섞어서 말하기도 하고요. 세속적인 지혜를 같이 전달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혼합물들을 전하고 있다라는 거죠. 어. 오늘날 말씀의 가장 큰 위기 중에 하나는 전한 사람이 하나님이 영원 전에 계획하신 그 믿음을 믿음의 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듣는 사람이 듣는 사람이 들려지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주권이 담겨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번 있게 듣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풀어서 설명해 준다 한들 듣는 사람이 아 좋은 조언이었어 이렇게 듣는다는 거죠. 어, 말씀이 그렇다고 말하네. 어,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근데 나는 이렇게 살 거야. 이렇게 이제 듣는다는 겁니다. 그니까 듣는 사람도 사실은 되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이 권위 있게 전파되는 것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하나님 말씀만 전파되는 것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도 정말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라면 그 삶 가운데 반드시 역사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지치고 힘든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격려 정도로 받으시면 안 되고요. 또 내 삶에 조금 정신 차릴 수 있는 조언로
들으시면 안 되고요. 여러분의 삶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셔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택하신 자들 삶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1절과 2절에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말씀이 이렇다라고 얘기했어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나는 지금 영생의 말씀을 전하고 있고 뒤도 너를 통해서 그대섬에도 정안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두 번째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세 번째 영생의 소망을 위한 말씀이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냥 잘 지식적으로 알라고 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겁니다.이 세 가지를 반드시 성취하는 말씀이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특별히 듣는 모든 자들에라고 하지 않았고요. 택하신 자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 그러니까 거듭난 사람들인 거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렇게 역사해야 한다라는 거예요. 반드시 말씀이 그 안에서 들려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 뭐라고 하셨어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뭐라고 했죠? >> 들으며 무슨 말이에요? 귀에 들린다는 겁니까? 소리가 아니죠. 청종한다는
얘기입니다. 듣고 따른다는 말인 겁니다. 어 실제로 목자가 양들을 부를 때이 당시에 어 유대인 지역에서 양들을 부를 때 부르면 양의 이름을 부를 거 아니에요. 찬양아 이렇게 부를 거 아니에요. 양 양 이름 괜찮잖아요. 그렇죠? >> 예. 예. 좋습니다. 아 좋 부르면
자기 주인이 부를 때는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는 거예요. 그렇죠? 내 주인이 부르면 그 음성을 알아듣고 그 주인의 목소리를 따라서 간다는 겁니다. 그게 예수님 말씀하신 거예요. 택하신 자들,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이 들릴 때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말씀이 반드시 자기들 삶 가운데 이렇게 역사한다는 겁니다. 그러한 말씀을 내가 전하고 있다라고 바울이 지금 인산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왜 이것을 처음부터 강조했느냐? 그레데인들은 그런 가르침을 많이 받지도 못했고 그런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도 오랜 훈련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니까 이것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거예요. 세 가지 역할을 합니다. 첫째 믿음을 일으켜요. 믿음을 일으킵니다.
자,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 그냥 감정적인 어떤 것들을 말하는게 아니에요. 어, 믿어요. 저 너무 신뢰해요. 이런 것들을 말하는게 아니고요. 전달된 객관적 진리가 사실이구나라고 믿는 것 수준을 넘어갑니다. 뭐냐면 인격적이고 관계적이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무언가를 믿는다라는 것은 사실만 믿는게 아니라 그 사람을 믿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라는 수준을 넘어서이 말씀하신 하나님을 내가 신뢰한다라는 데까지 가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정확하게 그 한계를 넘지 못했어요.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는 했는데 예수님을 믿는 것은 거부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의미는 알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하지 못했다는 거죠. 택하신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드릴 때 아, 무슨 뜻인지 알겠네. 어, 이렇게 살려고 하시는 거구나라는 수준을 넘어서 아,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거룩함을 원하시는 거구나. 이런 깨끗함을 요구하시는 거구나. 하나님은 나랑 친밀한 교재를 원하시는구나. 나 그렇게 살고 싶다. 나 하나님과 더 가까이 가고 싶다. 이런 마음을이 말씀이 불러일으켜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들으실 때에 하품이 일으키는게 아니라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살고 싶다라는 그러한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라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더욱 알게 하고 더 친밀한 사김을 갖게 하는 그러한 역사를 말씀이 반드시 일으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어 매일 성경 읽기를 하고 있고 설교를 뭐 유튜브로 듣든지 할 때에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 목적을 수정해야 돼요. 어 나는 이런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겠다라고 다시 수정하셔야 됩니다.음
여러분이 데이트를 하는데 남자 친구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주님 안에서 믿는 형제 자매끼리 이렇게 교재를 시작했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 해서 이제 만남을 시작했는데 어 우리 규칙적으로 데이트 할까? 그래서 월요일 월요일 아니 이상한가? 그 토요일 오후에 1시에 꼭 어떤 커피숍에서 매주 만나자라고 한 거예요. 내 만나서 자 만났지 커피
먹을까? 커피 먹었지? 가면 되겠지? 이제 가자. 헤어지자. 이러면은 데이트가 좋을까요? 아니면은 금방 헤어질까요? 어 수현이가 고개를 절래절래 했네. 그죠? 목적이 뭐예요? 만났다는게 중요합니까? 커피를 항상 맛있는 걸 마셨다는게 중요합니까? 둘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었다는게 중요합니까? 그 만나서 뭐 하는게 중요한 거예요? 서로 더 사김을 누리는 거, 더 친밀해지는게 더 중요한 거잖아요. 그렇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그 믿음을 일으키기 위한 거라는 거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더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이 말씀을 영원 전부터 약속하셨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을 대할 때 그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두 번째 어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전달한다라고 했습니다.이 이 경건함에 속하다라는 뜻은이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에는 우리 삶 가운데 경건함이라는 특징을 나타내야
된다라는 거고요. 지식이라는 말 때문에 여러분이 헷갈릴 수 있어요. 그냥 정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서 뜻하는이 지식의 단어의 참뜻은 경험된 지식을 말합니다. 경험된 지식, 훈련된 지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을 실질적으로 경건하게 그러니까 하나님 담도록 바꾸어 놓지 않는다면 그 말씀의 목적을 달성하는게 아니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이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이유는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조금씩 더 실질적으로 닮아가도록 변화시키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물론 계속해서 치열하게 싸워야 될 영역이 있긴 있어요. 하나님께서이 말씀을 통해서 성적인 거룩을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계속 성적인 거룩을 추구하는데 실패할 수가 있다라는 거죠. 어 혹은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미워하는 죄를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죄와 끊임없이 싸우고 또 패배할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택하신 자들은 항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나서 끝까지 싸우는 거예요. 말씀이 우리를 그렇게 싸우게 만듭니다. 계시록 2장 7절에 있는 것처럼 우리들은이기는 자로서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항상
이긴다는 뜻이 아니라요. 항상 싸운다는 뜻이고요. 말씀이 우리를 결국에는 승리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이기는 자로서 살아갑니다.이 말씀이 그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쳐 주고 악한 것을 대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래서 성령의 검이라고도 부르잖아요.이 말씀으로 우리가 마귀를 대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온갖 더러운 것들, 정제되지 않은 것들을 쳐서 수술시켜 주는 거죠. 깨끗하게 돌려내고 그렇게 우리를 연단해 줍니다. 그렇게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의 양심을 찌를 때에 어 그것을 억누르지 마세요. 그러니까 오늘 아까 예를들은 것처럼 성적인 죄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이 전부화됐을 때 아 그렇지 아 맞아 나는 양심적으로 그렇게 못 살아 근데 다음 주에 또 똑같이 살고 또 말씀을 들 때 아 그렇지 그러 또 똑같이 살고 이렇게 하지 말라는 거죠. 말씀이 들려질 때에 그 말씀대로 여러분 사시려고 애쓰셔야 된다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럴 때에 여러분에게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실 겁니다. 말씀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이거는 경험된 지식인 겁니다. 여러분 삶에 적용되고 그리고 삶 가운데 역사하는 지식이어야 한다라는 거예요.
이번에 어 같이 그 휴가를 가면서 아내랑 처음에이 길을 떠나면서 처음부터 제가 말을 했는데 아내가 동의한게 있습니다. 여보, 우리 가지고 있었던 OTT를 다 탈퇴합시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애초에 TV를 갖지 않기로 한 것이이 모든 매체를 떠나서 하나님 말씀을 쫓고자 한 거였는데 어느덧 OTT가 하나씩 들어와 가지고 TV가 있는 거만큼 이것저것 내가 찾아보게 된다라고 생각이 들어서 여보 그냥 나 없시다. 근데 기다렸다는 씨
오케이하더라고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거죠. >> 네. 좋습니다. 그래서 예. 다 탈피했습니다. 어 왜냐하면 계속 밀었어 어느 정도 제가 좀 밀어왔던 거 같아요. 약간 계속 타협해 왔던 거 같은 거죠. 물론 그것이 알고 싶다 보는게 죄는 아닙니다. 이제 볼 수 없게 됐지만 너무 아쉽지만 그러나
그러나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가 있어요. 예. 말씀에 순종하려면 실질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쳐서 잘라내야 되는 겁니다. 실질적으로 내가 뭔가 쳐서 복종시켜야 되는 거예요.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래 그렇게 살아야지 맞지. 난 참 잘못 살았어. 그리고 뒤돌아서 똑같이 살고 이런 삶은 언제까지 우리가 반복해야 될 거냐라는 거죠. >> 말씀이 실제로 여러분 삶에 역사하도록 하나님의 의의 변기로 여러분들을내어 주라. 로마서 말씀에 써 있죠. 하나님의 의의 변기로 내 지체를 내어드인다.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잘라내고 끊을 거 끊고 탈 때할 거 탈 때하고 보지 말아야 될 거 보지 말고 봐야 될 거 보고 여러분 그렇게 실질적으로 말씀이 여러분 삶 가운데 역사하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영생의 소망을 붙들게 한다는 거예요. 그레데인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진짜 세석적이었다는 겁니다.이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향락을 즐기고 그렇게 살아왔다라는 겁니다. 그냥 자기 배를 불리면 그걸로 되는 거예요. 먹고 마시는데 도움이 되면 그걸로 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는 거죠.이 이 땅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최고의 즐거움을 누리는이 영생을 위해서이 땅에서 참고 인내하는게 아니라 그냥이 땅에서 모든 걸 즐겨 보자라는 그러한 삶을이 그레데인들이 살았던 겁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 가운데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거예요. 그런데 말씀은
무슨 특징을 갖고 있느냐? 우리로 하여금이 세상이 아니라 영생을 바라보게 한다라는 거예요.이 땅이 아니라 천국을 바라보게 한다라는 겁니다. 어, 영생의 소망을 붙든다라는 말은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천국에 소망을 두며 산다라는 의미고요. 거기를 넘어서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해 아래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아니라이 영생의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영생의 소망을 갖고 산다는 것은 나중에 죽고 나서 우리가 누리게 될 무언가만 얘기하는게 아니라는 거죠. 지금도이 해 아래 사는 지금도 우리가 눈에 보는 여러 가지 것들에 얽매어서 사는게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시는 하나님을 느끼면서 그분과 사귀면서 살아가는 것이 곧 영생의 소망을 가진
삶이라는 겁니다. 음. 주님을 빼고 나면이 해 아래 모든 것들이 다 헛되고 헛되다라고 고백하는 삶이 바로 영생의 소망을 가진 삶인 겁니다. 반대로 주님과 함께라면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가치가 있고 또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의 관점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라고 믿는 것이이 영생의 소망을 가진 삶인 겁니다. 그니까 여러분 말씀을 늘 대하는데 택하신 자로서 거듭난 사람으로서 말씀을 늘 대하는데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들과 똑같은 걸 바라보고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똑같은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말씀이 우리에게 계속 외치고 있는 것들을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영세 전부터 무엇을 계획하고 뜻하신 것이냐
우리로 하여금 영생의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그렇게 계획하고 우리에게 전도하신 것이다라는 겁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왜 이렇게 힘을 잃어버렸느냐라고 말을 했을 때 마치 그레데인 교회와 같아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 온갖 우세 숭배가 만연하고요. 온갖 세속 지식과 향락이 가득합니다. 어 교회 사람들이
그런 데서 완전히 깨끗하게 자기를 이렇게 격리하지 않고요. 적당히 섞여서 살는 그리스도인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요즘에 스펄전 전기문을 읽고 있는데 170몇 페이지 정도 돼요. 그래서 이렇게 길게 써야 되나 막 이런 생각을 해 갖고 보고 있는데 극장 가는 것을 그렇게 반대했더라고요. 보니까. 그래서
최근에 왕 왕과사는 그거 봤거든요. 그래서 스펄전 있었으면 너 혼났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어 물론 컨텐츠 자체가 그렇게 해롭지 않으면 뭐 그런 걸 보는 것이 문제는 안 됩니다. 어 그 당시의 극장과 지금의 극장은 또 많이 달라요. 어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생각은 좀 해 볼 수 있어야 되는 거죠. 내가 정말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답게 살고 있느냐? 어, 세상 사람이 보는 거 똑같이 보고 인기 있다고 하는 거 똑같이 누리고 즐기고 싶은 유행 똑같이 즐기고 두고 있으면 두고 나도 먹고 저도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어, 그런 거 다 하나하나 일일이 이렇게 문제 삼으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닌데요. 뭘 말하는지 알겠죠? 우리가 어떻게 똑같이 살아갈 수 있냐라는 겁니다.이 세상과 절대로 섞일 수 없는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 절대 권위가 있는이 말씀을 우리가 늘 대하면서 어떻게 똑같이 살아갈 수가 있냐라는 거예요. 그게 그레데인들에게
바울이 디도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겁니다. 음. 어떻게 오늘날 교회가 변질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 말씀 위에 경고하게 설 수 있을까? 어떻게 교회가이 어두운 세상에 혼탁하지 않은 정말로 찬란한 빛을 비출 수 있고이 부패한 세상 가운데 그들의 변질을 막는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맛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계획을 세우셨는데 그 계획된 것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도들을 통해서, 디도를 통해서 그리고 세대를 거슬러서 계속 말씀 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파하신 것이 곧이 믿음의 도,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며 진리다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전해지는 진리, 여러분이 날마다 펼쳐서 보는이 진리가 여러분의 삶을
진짜로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이 이 혼탁한 그레데 같은 섬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런 변화된 존재로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고 아름답다라고 택하신 거룩한 교회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이 이 그섬의 사람들과 또 그곳에 있었던 교회를 생각해 볼 때에 바울이 어떤 심정으로이 편지를 썼는지 정말로 느껴집니다. 하나님 우리이 세상이 그대선보다 훨씬 더 악하고 훨씬 더 세속적이며 진리와 거짓이 훨씬 더 혼탁하게 섞여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운데 정말로 교회로서 우리를 불러내셨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우리를 지켜내시기 위하여 또 하나님 닮은 영생의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거룩한 택한 자들을 자들로
우리를 삼아 주셨으니 하나님 우리가이 진리의 말씀 가운데 굳게 서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온갖 거짓 것들을 우리 삶에 받아들이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가이 들려지는 진리를 정말 삶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우리 삶을 쳐서 복종시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온갖이 세상의 다양한 것들이 아니라 오직 영생의 소망 가운데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알고 믿고 따르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