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히브리서 강해

믿음의 대열을 따르라(7) (히 11:32-40)

최종혁 · 2026.11.07 · 히브리서 11: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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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히브리서 오늘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본문은 32절에서 40절입니다. 오늘의 믿음의 대열을 따르라라는 제목으로 히브리서 11장을 일곱 번째로 살펴보는 날이고요. 마지막 날입니다. 40절이나 되는 말씀을 일곱 번밖에 제가 전하지 않은 것이 기적적인 일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여러분들 기적의 현장에어와 계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네. 물론 예 뭐 다 할 거예요. 네. 8절까지 다 할 거고요. 믿음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참된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금이 여러 사람의 그런 예들을 통해서 지금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고요. 결과적으로 이제 하고 싶은 얘기는이 믿음의 대열을 따라서 살아야 된다. 계속해서이 믿음 가운데 거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해요. 32절을 먼저 보시면 이제 마무리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요렇게 시작을 해요.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있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이제 어느 정도 이제 자신의 요점을 다 전달을 했다라고 그렇게 판단을 한 거 같아요. 그렇죠? 그래서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 더 계속해서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이제 마무리를 하겠다 이제 요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처음에 이제 참된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죠? 그리고 나서는 실제로이 참된 믿음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각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

줬었습니다. 믿음으로라는 표현들을 사용해서요. 믿음이 각 사람의 삶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참된 믿음이 드러났는지를 보여 주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믿음의 본질적인 거죠. 그렇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요.

일반적인 사람들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고요. 그리고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그들 앞에 가져왔던 현실이 달랐던 거예요. 그들이 바라봤던 미래가 달랐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부분을 잠깐 좀 앞에 그동안 우리가 살펴봤었던 말씀들을 좀 정리를 해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아벨부터 시작을 했었죠. 그렇죠? 믿음으로 아벨은이 불순종했던 가인과는 다르게 순종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자였다라는 사실을 증거를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에녹은이 죄악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했었죠. 그렇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요. 그리고 보상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서 경고하심을 받고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지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그와 그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고요. 그리고 세상은 정죄를 받았다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믿음의 뭐 대부라고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이 이 아브라함과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믿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요. 순종함으로 고향을 떠났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안정적인 선택이 있었어요. 그렇죠? 안정적인 선택이 있었는데 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순종을 선택했다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상황은 불가능했지만이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다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라고 성경은 말을 해요. 아브라함은 그런 삶을 통해서요. 그가 정말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극단적인 시험을 받는 상황 속에 있었어요. 그렇죠? 아들을 바치라라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라는 그 하나님의 명령은요. 사실은 하나님을 의심하게 충분한 그러한 명령이었어요. 그죠? 특별히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었고요. 하나님의 능하심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공의로심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근데 그런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묵묵히 순종함으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참된 믿음의 모습이었던 거고요. 그리고 그것과 똑같은 그 믿음으로 그의 자손이었던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그들의 생에 끝까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지만 약속을 바라보고 기쁘게 그들의 삶을 마감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모세로 넘어가는데요.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가 먼저 나오죠. 믿음으로이 모세 부모가 보이지 않는 권위의 두려움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이 믿음으로 모세는 또 그 포기의 두려움을 이기고 바른

선택을 했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한 받기를 거절했었고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을 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죽음의 두려움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 섰던 일, 그리고 유월절 예식을 정했던 일, 그런 것들이 그 예였다라고 말씀을 드렸고요. 그리고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 동안 여리고를 돌았고 믿음으로 라합은 이스라엘의 그 정탄꾼들을 도았습니다. 믿음으로이 다름의 두려움들을 이겨내고 일반적인 선택과는 다른 선택을 했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이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살펴봤었던 실제적인 예예요. 생각해 보면은 이들이 다 다른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면은 뭐 아브라함은 시험을이기는 믿음을 가졌었고 뭐 두려움을이기는 믿음을

누군가는 가졌고 그렇게 다른 종류의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라는 거예요. 다 똑같은 믿음을 가졌는데 그 똑같은 믿음이 각자의 상황 속에서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드러났었던 겁니다. 그 모습이 이제 제가 다르다라고 말씀을 드렸고 이제 설교를 하면서도 이제 그런 것들 좀 구분해서 말씀을 나눴었는데 그런데 공통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 있는게 있어요. 뭐냐하면은 이들은 그들의 믿음을 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러니까 그 믿음을 포기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버릴 수 있는 상황 혹은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은 그렇게 내가 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있어서 더 도움이 된다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인 거예요. 그니까 나에게 지금이 믿음이 없는게 나한테 더 좋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그러한 상황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보면 이제 유혹이 될 수도 있죠. 그죠? 내가 이것을 포기하면 좋은 것이 나에게 생겼을 때 그것이 유혹이 될 수도 있고요. 혹은 내가 이것을 포기해야만 어떤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은 그런 것들은 이제 고난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살펴봤었던이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했었던 그 일들 다르게 말하면 그 믿음의 선택들은요. 현실의 관점에서 보면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은 아니었어요. 그렇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이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라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러한 선택들을 했어요. 그런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훨씬 더 도움이 된다라는 것이 명확했었던 그러한 상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 때문에 믿음으로 다르게 행했었던 겁니다. 왜 그러냐면은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그러한 것들을 보았기 때문인 거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요. 결과적으로 우리가이 히브리서 11장 말씀을 쭉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은 때로는 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놀라운 성취를 경험한 것도 우리가 볼 수 있어요. 그렇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면에서 보면요. 그런 것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조금은 쉬워 보이게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생각해 봐야 될 건 뭐냐하면은 믿음은 언제나 그 현재에 있다라는 거. 그 현재가 중요하다라는 거죠. 그들은 궁극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소망을 했지. 그 과정에서 어떠할지를

미리 알고서 요렇게 어차피 될 거니까 내가 믿어야지. 이제 그렇게 했었던 것들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이제 이미 다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보고 있으니까 이렇게 되는 거니까 나도 그럴 줄 알면 믿을 수 있지. 그런 생각들 쉽게 할 수 있지만 이들이 철던 현재에서는 그렇지 않았었다라는 겁니다. 현재 믿음의 선택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이었는데요.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선택을 하면서 믿음을

지켰다라는 얘기를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한 겁니다. 그래서 이제이 히브리서 11장의 끝에서는요. 그 사실에 대해서 이제 강조를 하면서 마무리를 합니다. 32절에서 40절 말씀을 먼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같이 읽어 볼까요? 네. 32절입니다. 시작.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말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라를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구차이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오가치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굶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지막으로 이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시간이 부족한데라고 하면서 언급한 사람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어,이 사람들을 먼저 좀 생각을 해 보면요. 의외의 좀 사람들이에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이에요. 자기가 시간이 더 있었으면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람들 혹은 뭐 이야기할 수 있었던 사람들일 겁니다.

근데 이제 이들에 대해서 처음에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뭐 아브라함에 대해서나 모세에 대해서 그렇게 했었던 것처럼 하려면 이제 시간도 부족하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으니까 이제 요렇게 이야기하고 정리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여기에 언급된이 사람들이 조금은 흥미롭습니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우리가 생각했을 때 바로바로 떠오르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다라는 거예요. 먼저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인내.이 이 우리가 지금 믿음의 인내에 대해서 얘기를 하잖아요. 그렇죠? 믿음의 인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누굽니까?

믿음의 인내. 욥이겠죠. 그렇죠? 욥이 제일 먼저 떠오를 텐데 보면은 욥은 여기에 이제 전혀 언급도 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이러한 믿음의 모습들이 보면요. 세상하고는 다른 선택을 했었던 사람들인 거잖아요. 그렇죠? 그니까 세상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서 나는 이렇게 하지 않을 거야라고 했었던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있어요. 그 그러한 얘기를 하면은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예요?

다니엘. 네. 다니엘. 그리고 그 친구들. 그렇죠? 예. 그 사람들도 있는데 보면 여기도 다니엘 이름도 나오고 있지 않아요. 그렇죠? 에스겔 14장을 보면요. 거기서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의 대표로서 세 사람을 언급을 하세요. 누구냐면은 다니엘, 욥, 노아. 예. 그렇게 세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 사람들이 다 여기에 물론 이제 노아는 처음에 나오긴 했지만 언급이 되고 있지 않다라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라고 할 때 할 수 있습니다라고 얘기했었던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들도 떠오를 거고요. 그리고 모세와 함께 그 변화하신 예수님과 함께 그곳에 그 산에서 함께 이야기했었던 사람 누구예요? 엘리야. 네. 엘리야도 분명히이

믿음의이 대열에서 우리가 분명히 이야기할 만한 특출한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우리가 얘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제2의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는 포로 기환의 영웅들도 있어요. 누가 있죠? 우리 지금 배우고 있는 느헤미야 같은 사람, 에스라 같은 사람. 그러한 사람들도 있죠. 충분히 여기에 언급 언급될 만한 그런 사람들이죠. 선지자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사람들이 있죠. 그런 사람들을 그냥 선지자들이라고 춤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그래도이 정도 사람들은 좀 언급이 돼야 될지 않을까 싶은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이 믿음의 영웅들이 정말로 질비하게 그렇게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대신해서 언급된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인 거죠.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그다음에 나오는 이제 다윗하고 사무엘 정도는 좀 납득이 되는데이 사사들은 좀 아닌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특별히 삼손, 있다. 우리들한테 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죠. 그렇죠? 삼손하면 뭐가 떠올라요? 물론 이제 힘센 거 떠오를 텐데 그런 거 말고 예. 굉장히 삼손의 특징적인 삼손의 그런 어떤 성격적인 혹은 그가 행했던 그런 삶의 특징들을 좀 생각해 보면요. 굉장히 자기 중심적이고 충동적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죠. 그렇죠? 그리고 굉장히 뭔가 뭐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는데 여자의 예 여성 편력이신했다. 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여자에 좀 약했었던 모습들 이제 그러한 모습들을 우리가 삼손하면은 먼저 떠오를 겁니다. 입다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입다 생각나는 거 없으세요? 입다하면 떠오르는 거는 예, 자기 딸을 예, 번제물로 드리겠다라고 약속했었던 아마 그 모습이 떠오를 겁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만나 싶은 그러한 사람들에요. 심지어 이제 삼손에 대해서는 정말로이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느냐에 대해서도 의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었던 사람들입니다. 저자가이 여기에 언급된이 사사들에 대해서 우리만큼 잘 몰라서 그냥 이렇게 언급을 한 것은 아닐 거예요. 히브리서에서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 그리고이 믿음으로라고 얘기할 때이 믿음에 관련된이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좀 두 가지를 생각을 해 봐야 되는데요.

히브사의 저자는요.이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할 때 사람보다는 믿음에 더 집중을 해서이 히브리서 말씀을 기록했다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고요. 믿음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그 믿음이 그 사람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의 초점이 있는게 아니라. 믿음의 초점이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한 가지 생각을 해야 되고요.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건데요. 그렇기 때문에 둘째로 저자는요 최고의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았던 본을 지금 제시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지금까지도 가장 본이 될 만한 사람들 혹은 본이 될 만한 사건들만 언급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생각해 보면은 그래요. 바로 앞에서도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잖아요.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생각할 때 오히려 믿음 없음이 더 떠오르는데 그 홍해를 건넜던 사건을 믿음으로 건다.이 믿음의 특징으로서 이야기를 했었던 거예요. 라합 같은 경우도 여러분 생각해 보시면 라합은 어떤 극적인 회심에 좋은 예라고는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했을 때 믿음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그렇게 좀 거리가

있다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이 아들에 대한 약속을 받고 나서 그 이후의 삶을 보면요. 사실은 믿음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죠? 근데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이 히브리서의 저자는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면요. 임종시에 그렇게 했었던 것도 분명히 이제 그 좋은 모습인데 오히려 더 믿음으로 했다라고

생각하기에 더 좋은 모습들은 그 전에 있어요. 그렇죠?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 그가 신실하게 행했었던 그런 모습들 혹은 형들을 용서했었던 모습들 그러한 것들이 오히려 믿음으로 했다라고 하기에 더 좋게 그렇게 느껴져요. 그런데이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최고의 믿음의 본을 보여 주는 것이이 히브리서 11장을 기록한 목적이 아니었었던 거예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는 그 사실을이 각 사람들의

삶에 삶을 통해서 하나씩 그렇게 보여 주는 것으로서 충분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서 사실은 우리가 인물에 집중하기가 쉬운데이 인물 자체보다는 그들이 믿음으로 어떻게 했었는지에 조금 더 집중해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자 그러면 그런 관점에서 기도원을 생각해 보면요. 기도는 보면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부터 기도는 굉장히 좀 부정적이에요. 부정적으로 이렇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큰 용사요라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얘기하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한테 있습니까라고 하면서 오히려 따지죠. 그렇죠? 그러한 모습들 부정적인 모습이에요. 담대하지 못했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을 때도 계속해서 증거를 요구하죠. 제가 양털을 놓테니까 오늘 양털만 적고 옆에는 안 적게 해 주시고 그다음 날은 거꾸 해 주시고 그렇게 하는 식으로 해서 계속해서

뭔가 믿음 없고 연약한 그런 모습들을 보여 줘요. 그런데 결국은 그런 기드온도 하나님을 믿고 그 300명의 군사들로 미디안에게 승리를 거둡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이 여리고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그냥 성을 이렇게 빙글빙글 돌기만 했었던 것처럼이 기드온이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던 그 일도요. 사실은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에요. 그렇죠? 군사수를 계속해서 줄여 갔잖아요. 계속해서 줄여가서 300명만 남겼고요. 그 300명을 뭐로 무장을 시켰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세요. 나팔하고 항아리 그죠? 네. 그걸로

무장시켰어요. 예. 그러고 나서 싸우라고 하신 겁니다. 근데 그 말씀에 따라서 결국은 그대로 했고요. 그리고 승리를 했습니다. 만약에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믿음으로 기드오는이라고 그렇게 기록했었으면은 방금 제가 얘기했었던이 사건을 기록을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모든 것에 있어서 기도원이 항상 우리가 생각했을 때 믿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 보여줬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믿음을 따라서 그가 행했다라는 거죠.

바락을 생각해 보시면요. 바락은 여선지자 드보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죠. 그죠? 가서이 시스라의 군대하고 싸워서 이겨라.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거다. 그러니까 싸워라. 이제 그 명령을 받았어요. 근데 바락이 충분히 담대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드보라한테 같이 가자 그랬어요. 네가 같이 가면 나도 갈 거고 안 가면 나도 안 가겠다라고 그렇게 했었습니다. 결국은 드보라와 함께 갔고요. 바락이 승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이 시스라는이 야엘이라는 한 여인의 손에 의해서 죽게 되죠. 그렇죠? 그렇게 해서이 승리의 영광을 그렇게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바락을요.이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연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믿음으로 그 싸움을 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바락에게 연약함이 있었고요. 내적으로 갈등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순종을 선택했었던 겁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삼손도 그런 믿음을 보여줬다라고 할 수 있어요. 삼손도 항상 그 힘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을 힘입어서 했다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고요. 입다도 마찬가지로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안몬 사람들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다윗도요. 골리앗과 싸워서 이겼는데요. 전쟁에 여호와 여호와에게 속했다라는 것을 믿었고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믿음으로 했었던 일인 거고요. 사무엘은이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해진 그때 말씀을

선포했었던 사람이고요. 우상숭배와 싸웠었던 사람입니다. 그 이후에 선지자들도요. 믿음으로 각자가 당했었던 그 유혹과 고난을 다 이겨내고 믿음에 따라서 행했다라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들 각자의 어떤 인격이나 그 믿음의 삶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다르겠죠. 그렇죠? 삼손과 다윗이 똑같은 평가를 받게 되진 않을 거예요. 그들에게 예비된 하늘의 상도 분명히 다를 겁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지금 이들을 같이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요. 그런 것이 지금 똑같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동일하게 있었고 그 믿음이 그들의 삶에서

역사했었다라는 그 사실이 동일했기 때문에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들이 그런 어떤 유혹과 고난 속에서 믿음을 선택했다라는 사실이 동일했기 때문에 지금 이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도 지금 그렇게 하라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 너희들에게 유혹이 있을 수 있고 고난이 있을 수 있고 그런 것 때문에 너희들이 연약해져 있을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의심했을 수도 있고 혹은 너희가 그것 때문에 어느 정도 물러나 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지금 믿음을 선택할 수 있고 그 믿음에 따라서 살 수 있다라고 그렇게 동렬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그렇게 하기 위해서이 믿음이 읽어낸 그런 놀라운 성취들에 대해서 이제 33절부터 35절에서 이야기를 해요. 33절에서 35절 상반절까지 말씀만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라를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33절에 이제 그들은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게 꼭 그 위에 32절에서 명한 그니까 분명하게

이름을 언급했었던 그 사람들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면 32절에서도 지금이 사람들을 예로서 얘기를 한 거지 전부 다 지금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어,이 사람들도 포함이 되겠지만이 구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 모든 믿음의 사람들 그리고 그 이후에이 히브리서가 기록되기 전까지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지금 그들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라고 보는 것이 맞아요. 그러면 이제 그들이 무엇을 했느냐?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겼다라고 말을 합니다. 앞에 말했던 사람들 생각해 보면요. 모세나 여호수아나 그리고 그 사사들 다 여기에 해당되겠죠. 그렇죠? 그들이 믿음으로 나라들과 싸워서 이겼어요. 다윗도 그렇고요. 사무엘도 그렇고요. 믿음으로 나라를 이겼었던 그런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의를 행하기도 했다라고 했어요. 특별히 이제 왕으로서의 다윗이 여기에 해당이 되게 된다라고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시편을 읽어 보면은 일따가 우리들에게 굉장히 어려움을 주는 시편들이 있는데 저주의 시편들이에요. 저주의 시편들. 그 악인이 망하기를 바라는 저주의 시편들. 근데 그 저주의 시편들 대부분을 다윗이 기록을 했습니다. 뭐냐하면요. 다윗은이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 그대로 정말로 시련되기를 간절히 누구보다 간절히 바랬었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악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해서 지금이 의인들이 핍박받지 않는 그러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었던 거예요. 의를 행했었던 겁니다. 느헤미야도 아마 여기에 해당이 된다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33절. 그리고 중간에 보면요. 약속을 받기도 하며라고 이야기를 해요.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생각해 보면은 여호수아하고 갈렙이 여기에 해당이 될 겁니다. 그렇죠? 모든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라고 했었을 때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었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다라고 했으니까 우리가 친히 가서 정복할 수 있다라고 주장을 했었고요. 결국은 그 두 부류가 다

믿음대로 됐어요. 할 수 없다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멸망했고요. 그리고 믿었던 두 사람 우리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라고 믿었던 두 사람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약속을 받은 거죠. 그 외에도이 하나님께 약속의 말씀을 받았던 사람들이 정말로 많아요. 그리고 그들은 믿음으로 그 약속이 그들에게 성취되는 그런 경험들을 했습니다. 궁극적인 성취는 기다렸었던 경우들이 많지만 그들 삶 속에서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들, 부분적인 성취들 그런 것들을 이들이 경험을 했습니다.

32절에 언급된 사람들만 조금 생각해 봐도 그렇죠.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을 이길 것을 약속을 하셨고요. 실제로 기드온은 그렇게 할 수 있었고요. 삼손이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부모에게 나타나서 말씀을 해 주셨었죠. 그리고 실제로 삼손은 그렇게 했었고요. 그러한 모든 약속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자, 그다음에 보면요. 뭐를 했다라고 하냐 하면은 사자의 입을 막은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33절 끝에 보면은 이야기를 해요. 사자들의 입을 막은 사람 누구 떠오르세요? 다니엘이 먼저 떠오르시죠. 그렇죠? 다니엘이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기도를

했다라는 그런 모함을 당해서 사자굴에 던져졌었죠.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셔서 다니엘을 상하지 못하게 했다라고 다니엘이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또 있어요.이 사자하고 싸워서 이겼던 사람. 삼손도이 사자의 입을 사자를 찢어서 죽이기도 했었던 그런 사람이고요. 그리고 또 한 명 더 있습니다. 그 위에 나왔던 사람 중에서 누군 거 같아요?

사자하고 싸워서이긴 사람 한 명 더 있습니다. 예. 32절에 있는 사람 중에서 다윗이죠. 다윗. 예. 다윗. 예. 다윗이 그 양을 칠 때 보면은 나중에 이제 사울 앞에 가서 그 얘기를 하잖아요. 그렇죠? 골리앗고 싸우러 나갔을 때 사자나 그 곰이 와서 자기 양들을 물어가면 자기가 쫓아가서 그들을 쳐 죽였다 이제 그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수염을 잡고 쳐 죽였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좀 흥미로운 표현이에요. 어쨌든네 그렇게 정말로 신나는 그런 경험을 했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34절을 보시면요.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고 칼라를 피하기도 했다라고 증언을 해요. 불의 세력을 멸한 사람 하면은 생각나는게 다니엘의

친구들 같은 경우. 그죠? 대표적인 사례일 거고요. 칼라를 피한 사람들은 뭐 엘리야나 예레미야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해당이 될 거고요. 그리고 34절 뒤에 나오는 여러 가지 표현들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고 전쟁에서 용감하게 되고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고 일반적인 표현이어서 우리가 구약에서 이러한 예들을 정말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35절에 가시면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렸다라는 표현을 해요. 성경에 기록된 예를 우리가 생각해 보면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았던 사람들. 엘리야의 때. 그리고 엘리사 때. 엘리야 때에 사르의

과부가 있었고요. 그리고 엘리사 때에 수냄이 있었죠. 그렇죠? 사르밭의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을 때 엘리야가 가서 그를 살렸었고요. 수냄은 이제 기적적으로 그 아들을 얻게 됐었는데 그 아들이 죽었죠. 근데 이제 엘리사가 가서 그를 살렸습니다. 여자도 아니고 실제로 아들이 죽었던 것도 아닌데이 우리가 앞에 살펴봤었던 19절에 보시면 아브라함도 사실은이 죽은 자를 부활로 받아들였다라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이 믿음이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냈다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고요. 그리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그런 놀라운 경험들을 했다라는 것도 우리가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죠. 그렇죠? 정말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가 실수하는게 뭐냐면은 이것의 원인과 결과를 조금 이렇게 착각하는 거예요. 뭐냐면은 이런 일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믿음을 가질 수 있었지라고 그렇게 우리가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는 그러한 경험들이 없으니까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없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그죠? 처음에 말씀드렸었던 것처럼 믿음은 지금 있는 일이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믿음이 먼저인 거고 그에 대한 결과들은 그 후에 따라온 것들이에요. 그리고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요. 일시적인 그런 결과에 의존하지 않아요. 다니엘의 친구들이 했었던 유명한 말이 있죠. 그렇죠? 뭐죠? 글이 아니하실지라도. 옛날 성경에 그렇게 돼 있었고 요새 요즘 성경에는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네. 약간 뉘앙스가 달라졌습니다. 어떤

상황이었었냐면은이 다니엘의 친구들이이 느브간네살 왕이 만들어는 그 금신상이었죠. 거기에 절하지 않는 것 때문에 이제 풀무불에 던져지게 생긴 거예요. 근데 이제 느브간네살 왕이 이들이 좀 아쉬운 거죠. 아까운 거죠.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줍니다. 지금이라도 너희가 가서 그 심상에 절하면은 내가 모든 걸 다 용서해 줄게. 이제 그렇게 했어요. 그때 이제 그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사과 아벤느고인데 그 세 사람이 왕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여 우리가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네 이것들은 다 결정된 거고 여기서 우리의 마음이 바뀔 거 없다라고 지금 얘기하는 거죠.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니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도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들의 믿음이 결과에 의존적이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그렇죠? 고난 중에서도 이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고난에서 건져 주실 것이니까 지금 건져 주실 것이니까가 아니었었던 겁니다. 물론 그렇게 할 것을 지금 기대하고 있어요. 그죠? 여기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면 이렇게 하실 것이다라고 그렇게 기대하고 있어요. 근데 그렇게 아을

그렇게 하지 않으실지라도 이들은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라고 그렇게 단호하게 왕 앞에서 선언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래서 왕이 더 화가 나 가지고 더 뜨거운 풀무 브레이드를 집어넣게 되죠.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들어갔는데 진짜 뜨거운 거야. 들어가는데 막 뜨거워서 죽겠는 거야. 그랬으면 어땠을까요? 하나님 안 계시네. 지금이라도 빨리 믿음 버리고 살려 달라고 해야 될까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죠? 네.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믿음을 버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이 사실은 아브라함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던 이유하고 똑같아요.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지금 믿음의 선택을 했었던 거고요. 그 믿음의 선택에 하나님께서 이후에 그들에게 보상을 해 주셨던 거예요. 족장들이 그 삶에 끝까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었던 이유도 똑같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모든 보화를 포기했었던 이유도 똑같아요.

그들이 정말로 바랬던 것이이 땅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늘에 속한 것이었으니까 그들이 그 모든 것들의이 땅에서 얻는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요. 어쩌면 여기까지이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도 그런 경험 하면 계속 믿을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그렇죠? 그래서 이제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 부분을 이제 분명하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겁니다. 믿는다고 해서 항상 이런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를 해요. 믿음은이 땅에 있을 때 보상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닌 거죠. 참된 믿음은이 땅에서 보상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35절 하반절부터 38절을 보시면 이러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에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치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치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에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믿음 때문에 전혀 다른 결과를 맞았던 그러한 경우들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러한 경우들이 이제 구체적으로 누가 이런 일을 당했고 이제 그렇게 하진 않지만 말씀들을 보면요. 우리가 성경에서 비슷한 예들을 찾아볼 수도 있고요. 유대의 전승이나 혹은 그들의 역사 가운데서 이러한 예들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35절에서 말하고 있는이 심한 고문을 받은 사람들은 아마도 아마도이 히브리서의 저자와 독자들이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을 거예요. 특별히 이제이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라고 하죠. 그 마카비 시대에 이렇게 심한 고문을 당해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것들을 좀

읽어 보시면 이게 너무 읽으면서도 진짜 막 하면서 너무 막 이렇게 읽기가 힘들 정도로 그렇게 심한 고문을 그들이 당했었는데 이제 유대인들에게 이제 고기를 이제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하면서 이제 그리스 신에게 너희가 제사를 지내야 된다. 이제 그것을 강요를 하죠. 그것을 이제 거절한 사람들이 그렇게 박해를 받았었던 거예요. 그래서 막 수족이 절단하기도 하고 뭐 혀가 뽑히기도 하고 뭐 불리에 튀겨지기도 하고 막 그러한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됐냐면요. 그들이 그들의 믿음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인 거예요. 여호와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반대로 얘기하면은 그렇게만 하면은 그 순간에 이들이 그냥 나는 이제 더 이상 뭐 여호와는 잘 모르겠어요. 혹은 뭐 그 정도까지 안 가더라도 돼지고기 먹고 예. 그래. 돼지고기 먹는 큰

일 아니잖아요. 그죠? 돼지고기 먹고 그리고 그냥 그리스 신에게 그냥 절하고 그냥 그거 한번 하면은 끝날 일인 거예요. 그럼 그런 고통을 피할 수도 있고 그런 죽음을 피할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인 겁니다. 근데 그것들을 여기 표현해 보시면은 구차히 풀려나는 것으로 여겼어요. 그런 것들을 구차히 풀려나는 것으로 여겼고요.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기꺼이 그러한 심한 고문을 갖고 죽기를 선택을 했었던 겁니다. 더 좋은 부활이라는 표현을 사용을 했어요. 앞에서도 이제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었잖아요. 그렇죠? 그 부활보다 이들이 얻으려고 했었던 부활은 더 좋은 부활인 거예요.

뭐냐면은 그 앞에서 이야기했었던 부활했었던 사람들 생각해 보면은 그들이 땅에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이 땅에서 살아났죠. 그렇죠? 그럼 살고서 그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죽지 않고 살아 있었을까요? 아니에요. 그렇죠. 그들은 다시 나이가 들었으면 또 죽었을 거예요. 그렇죠? 그러한 부활을 그들은 경험했었는데 지금이 고문을 받고

구차에 풀려나길 원하지 않았던이 사람들이 원했던 부활은 내가 여기서 주어서 다시이 땅에서 난 잘 살 거야. 그러한 것들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했습니다. 다시는 죽지 않을 부활을 이들은 기대하고 있었던 겁니다. 믿음으로 그

더 좋은 부활을 바라봤기 때문에 고난 중에서도 그 믿음을 지켰다라고 말을 합니다. 36절에서 말하고 있는 표현들 조롱 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결박 당하고 오에 갇치는 것들 아마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한 그런 표현인 것처럼 보이고요. 물론 이제 다른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이 될 겁니다. 37절에 보면요.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유대 전승에 따르면요. 예레미야가 돌로 쳐서 죽임을 당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요. 이사야가 톱에 켜서 죽임을

당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거예요. 그리고서 그 옆에 보면요. 다음에 보면은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34절에 보시면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들은 칼을 피했어요. 그렇죠? 근데 오히려 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라는 겁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에 대해서 얘기할 때 하나님에 대해서 얘기할 때 이렇게 얘기했어요. 칼 그 이세벨이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자기 빼고 다른 선지자들 물론 진짜로 다 죽은 건 아니었지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이 칼로 죽임을 당했다라는 거예요.

실제적으로 그러니까 믿는다라고 해서 다이 칼을 피했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겁니다. 누군가는 피했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기도 했었던 거예요. 여러분들 아시는 것처럼 사도행전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죠. 그렇죠? 야고보는 순교를 했어요. 그렇죠? 근데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구하셔서 그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똑같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다라는 겁니다. 37절의

뒷부분 그리고 38절의 뒷부분을 보시면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뭐 좋은 가죽옷을 입었다 그런게 아니에요. 네. 그런 것밖에옷이 없었다라는 거고요. 군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라고 얘기하고 38절 뒤에도 보시면은 광야와 상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다. 자기 집에서 머물지 못하고 도망다니고 있는 그런 상황을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핍박당하고 가난하게 살고를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이 믿음의 사람들이 부하게 산 사람들보다 사실은 이렇게 가난하게 산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럼이 사람들은 이런 것들 다 모르고 믿었는데 지금 이러한 일들을 다 당한 거냐? 그렇지도 않아요. 모세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면 그렇지 않다라는 거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를 자기가 포기하고 곧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당하기를 선택했습니다. 몰라서가 아니고요. 영원한 상을 바랬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라고 성경이 말을 합니다.

믿음은 이러한 결과들을 가져온다라는 거예요. 어떤 경우는 정말로 우리가이 땅에서 봤을 때도 이것은 성취야. 우리가 불러할 만한 그러한 것들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고난이나 어려움들을 가져오기도 한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38절에 처음 시작해 보시면 그 괄루에 이렇게 말하죠. 이런 사람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말을 합니다.

다르게 번역을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가질 자격이 없다라고 하죠. 이런 사람들을 가질 자격이 없다. 세상은요. 사실은 세상의 입장에서는요. 왜 이렇게 핍박을 하냐 하면은 너희 같은 사람들은 우리하고 같이 살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너희들은 우리하고 살 만한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야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핍박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인데 사실은 반대다라는 겁니다. 오히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거예요. 그렇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이 세상 사람들의 어두운 눈이 밝아지는 거고요. 그들이 정말로 영적인 진짜 현실을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들을 핍박

핍박함으로써 스스로 그럴 자격이 없다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런 세상에서 참된 믿음은 여전히 참된 것을 바라보고요. 소망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선택들을 계속해서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세상은 어리석다라고 조롱을 하는 거고요. 비웃는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핍박하는 겁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은 믿음에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을 견디깁니다. 그리고 믿음이이 믿음이 참된 것이고 그 믿음으로 바라는 것이 참된 것이다라는 것을 증언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이다라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39절 40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배하셨음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11장 처음의 주제로 다시 돌아갔어요.이 땅에서 경험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맞게 상황들을 주세요. 누군가는 큰 성취를 경험하기도 하고요. 누군가는 큰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뭐 어떤 사람은 항상 좋은 것만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항상 나쁜 것만 경험하고 그런 것들도 아니에요.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과 혹은 경험에 좌우되지 않고요. 참된 믿음은 그 믿음을 계속해서 지켜 가는 겁니다. 왜 그러냐면은 그 믿음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상을 소망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이들이 믿음으로 살았을 때 그들은 증거를

받은 겁니다. 증거는 받았는데 약속된 것 그 최종적인 결과를 이들이 받은 것은 아니에요. 그렇죠?이 이 땅에 있었을 때이 믿음이 참된 것이다라는 것에 대한 증거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 주셨는데 근데 약속된 궁극적인 결과를 이들이 받지는 못했습니다. 가장 궁극적인 약속은 뭘까요? 이들이 정말로 꼭

바래야 했던 것 예수 그리스도겠죠.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었고요. 그 믿음을 지켰습니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지만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믿고 지켰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믿음의 대열입니다. 40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라고 말을 해요. 그죠?이 더 좋은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고 십자가이고 새 언약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하고 같이이 온전함을

누리게 될 때를 기다려야 했었던 거예요. 그렇죠? 그것이 이제 40절에 서하고 있는 말씀이거든요.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뒤집으면 무슨 말이에요? 우리와 함께 그들이 그 온전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라는 거잖아요. 그들은이 미래에 이루어질 그 온전함을 기다렸어야 됐던 거고요. 우리는 이제 그때를 지나왔습니다. 우리는 지나온 자들로서 과거에 그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온전함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온전함을 우리가

온전하게 누리게 될 그날을 소망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이 믿음의 대열에 있는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그러한 온전함입니다. 믿음의 대열은이 구약의 성도들에게서 끝나지는 않았어요. 그렇죠? 우리가 함께 기억할 만한 성도들의 이름은 이들 외에도 정말로 충분히 더 많이 있어요. 뭐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그런 사도들도 있고요. 그 이후에 뭐 초대 교부들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고 뭐 종교 개혁을 이끌었던 종교 개혁자들도 있고요. 선교의 시대 자신을 헌신했었던 뭐 여러분들 잘 기억하시는 윌리엄 캐리나 뭐 허트슨 셀일러나 그러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들 우리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아마 많이 도전을 받으실 거예요. 저도 그들을 통해서 많이 도전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음의 대열에 있는 사람들의 전부는 아니에요. 그죠? 사실은 믿음의 대열이라고 얘기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기억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죠? 그들은이 땅을 떠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금방 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면요. 누구에게 얼마나 기억되느냐가 사실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이 불에 던져질 운명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 바로이 믿음의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요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고 눈에 보이는 것을 소망하고 그렇게이 땅에서 살지 않는다라고 히브리서 11장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 거예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면서 지금이 땅에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겁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믿음의 성취를 경험하기도 해요. 여러분들이 지난 삶을 생각해 보시면요. 뭐 이런 놀라운 기적 같은 일들이 아니더라도 정말 놀라운 믿음의 성취들을 여러분들이 경험한 것이 생각이 나실 겁니다. 반대로 믿음의 시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성취가 됐든지 믿음의 시련이 됐든지 그 둘 다가 믿음의 결과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니까 아무리 큰 성취를 이루었다라고 해도 그것이 믿음의 성취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고요. 시련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믿음으로 받는 시련이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는 거지 내 잘못 때문에 받는 시련들은 사실은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이제 하나님은 그런 것들조차도 의미 있게 사용하시지만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들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요.

우리는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정말로이 길을 걸어가면서 때로는 이게 정말로 맞는 건지 의심이 생길 때도 있어요. 주변을 둘러보면은 더 그런 생각들이 들 때도 있습니다. 결과들을 보면은 이제 그런 것 때문에 생각이 흔들릴 수도 있어요. 어,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5장 4절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뭐라고요? 우리의 믿음.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 앞에서 여러분 작아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맞고 내가 틀린게 아닌 거예요. 우리는 그런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맞다라고 하면 내가 틀린 거 같은 생각을 해요. 그렇죠? 시험 보고 나서 아마 그런 경험 많이 하셨을 거예요. 시험 보고 나서 막 다 맞춰 보는데 옆에서 친구들이 다 4번이 맞다 그러면은 난 진짜 2번이라고 확신하면서 썼는데 나 틀린 거 아니야 그런 생각합니다.

그런 것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어서이 세상에 살면서도요. 그러한 비슷한 느낌을 계속해서 받는 거예요. 주변에 내가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정말로 내가 틀린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 믿음이 작아지고 세상 앞에서 점점점 내가 더 작게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믿음으로 보고 있는 것을 세상은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그렇게 반응을 하고 있는 겁니다. 믿음에 따라서 살아간다면요. 여러분,이 믿음에 따라서 살아가고이 믿음을 계속해서 지켜 가신다면요. 결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날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믿음으로

지금은 우리가 소망하면서 살 수밖에 없죠. 믿음으로 소망하면서 살았던 것들이요. 이제는 더 이상 소망할 필요가 없고 눈앞에 현실로 보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믿음으로 여러분들이 무엇을 경험하시든지이 믿음을 버리지 마시고 믿음의 대열에서 계속해서이 길을 걸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저희들에게 이런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우리가 연약해서 어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이상하게 느껴지고 정말로이 세상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이 말씀을 통해서 보여 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으로 보이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참된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갈 때 이러한 믿음의 눈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또한 그 말씀에 따라서 순종할 수 있는 용기를 우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게 하시고 그러함으로써 또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역사가 또 우리들 가운데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구합니다. 어들은 말씀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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