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DEVOTIONS

매일, 말씀과 함께.

하루의 말씀을 읽고, 묵상을 삶으로 이어갑니다.

묵상 글 466

2026.01.02 · 최종혁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

창세기 1:24-31

진화론의 발전과 함께 사람에 대한 관점도 많이 달라져 왔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을 진화의 정점에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사람도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진화 방식을 택했을 뿐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과 동물을 확실히 구분합니다. 하나님은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만드신 후에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창 1:25-26…

2026.01.01 · 최종혁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믿는 시작

창세기 1:1-5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명해서 보여주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애써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심을 당연한 사실로서 선포하면서 시작합니다(창 1:1). 지금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조차 하나님은 계셨고, 그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리 중 대다수가 이해하지도 못…

2024.12.31 · 최종혁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양하며

요한계시록 5:1-14

1장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었던 예수님은 5장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바로 ‘죽임 당한 어린 양’입니다(6, 9, 12절). 죽임 당한 어린 양은 우리가 ’영광스러움’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의 그림을 놓고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 보라고 하면 죽음, 패배, 수치와 같은 것들이 오히려 주를 이룰 것입니다. 사실 맞습니…

2024.12.30 · 최종혁

하나님을 더 알기에 더 깊어지는 예배

요한계시록 4:1-11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을 다 알게 되는 날은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 같이 되지 않는 이상 그런 날은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드려져야할 예배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스랍들의 예배를 우리가 다 …

2024.12.27 · 최종혁

여전히 사랑하시기에 회개로 부르시는 주님

요한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께 책망만 받은 교회입니다. 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책망하신 이들의 심각한 문제는 ‘미지근함’이었습니다(15-16절). 영적으로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엘리야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예 버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2024.12.26 · 최종혁

작은 능력으로도 신실하게 충성하기

요한계시록 3:7-13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작은 능력”을 가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8절). 이 표현은 책망도 아니고 칭찬도 아닙니다. 그저 객관적인 사실이었을 뿐입니다. 성도의 수가 적었을 수도 있고,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을만큼 재물이나 재능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빌라델비아 교회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그런 교회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

2024.12.25 · 최종혁

살아 있다는 이름보다 참된 생명으로

요한계시록 3:1-6

요한계시록 2-3장의 말씀을 읽을 때면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이 만약 주님께서 지금 우리 교회에게 편지를 쓰신다면 뭐라고 하실까입니다. 그러면서 이 편지들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우리 교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회개해야할 것이 없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분명 한계는 있습니다. 제 지식의 한계가 있고 분별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

2024.12.24 · 최종혁

죄를 용납하는 관용에서 돌이키기

요한계시록 2:18-29

성경에서 말하는 ‘관용’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었던 선을 더 확장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권리를 내세우거나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용납하는 모습으로 관용은 드러납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봐도 남에게 선을 베풉니다. 성경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명령할 정도로 관용을 중요한 덕목으로 말…

2024.12.23 · 최종혁

세속의 유혹 앞에서 진리를 지키기

요한계시록 2:12-17

버가모 교회에 편지하신 예수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계시록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공의는 언제나 대적하는 자를 향합니다. 문제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입니다. 예수님의 편에 있다면 예수님의 공의는 한없이 격려가 되고, 예수님의 대적의 편에 있다면 더없는 두려움이 됩니다. 버가모 교회는 예수님이 이런 분…

2024.12.20 · 최종혁

영원을 바라보며 죽도록 충성하기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 어떤 책망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고난 중에 인내하며 충성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난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서머나 도시는 부유한 항구도시였습니다. 부유한 만큼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삶의 모든 것들이 종교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더…

2024.12.19 · 최종혁

모든 일을 첫사랑으로 하는 교회

요한계시록 2:1-7

에베소 교회는 밖에서 볼 때 분명 좋은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인내했습니다. 특히 진리를 지키는데 힘썼습니다. 악한 자를 그들 가운데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면서 교회를 거짓으로 물들이려던 자들을 시험하여 드러냈습니다.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이들도 미워했습니다. 고난이 있었지만 주님을 위해 참고 견뎠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장로들…

2024.12.18 · 최종혁

우리 가운데 계신 영광스러운 주님

요한계시록 1:1-20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계 1:17-18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사복음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즉,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