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2절)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7절)
어쩌면 조화될 수 없을 것 같은 하나님에 대한 이 두 명제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때마다 혹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마다 참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지만, 노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무거워서 심판하실 때도 롯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애굽을 심판하실 때도 하나님은 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지만, 가나안 민족에게는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나안 민족 중에서도 라합과 같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심판 중에 구원을 받은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하나님은 권능이 크셔서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시는데(3절), 누구도 하나님의 분노 앞에 설 수 없고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수 없는데(6절), 어떻게 그 사람들은 형벌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피했다는 사실입니다(7절). 하나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높은 권세를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가장 강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유일한 살 길은 하나님께로 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는 시편 2편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2)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는 것은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끝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그 때는 정말로 무슨 수를 써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께로 피하라고 하십니다. 정말로 행복한 삶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오늘의 한 구절: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