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6장에서 하나님은 백성들과 변론하십니다(2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일은 공의로운 일 뿐인데,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괴롭게 했다고 하니, 하나님은 그들에게 증언하라고 하십니다(3-5절).
이에 대한 백성들의 대답이 6-7절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를 묻습니다. 이 말은 언듯보면 하나님께 예배하려는 자의 진심어린 질문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이런 의중이 가장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은 7절의 하반절입니다. 여기서 백성들은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묻습니다(7절). 말도 안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백성들에게 사람을 제물로 드릴 것을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히,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몰렉을 숭배하던 사람들의 풍습이었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특정하여 금하기도 하셨습니다(레 18:21). 그런데 지금 백성들은 우리가 그렇게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 저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우리가 충분히 드리지 않았습니까! 뭘 어떻게 더 드려야 합니까! 더 좋은 제물(일 년 된 송아지)? 더 많은 제물(천천의 숫양,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 아니면, 우리 자식들이라도 제물로 드리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이들은 하나님을 정말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죽어 있는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관계의 문제인 것을 이들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하라고 하는 것을 다 하지만 그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단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그 일을 할 뿐 그 사람과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학생이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열심히 하고 시험 문제를 열심히 푸는 것은 선생님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성적 때문입니다. 군인이 윗 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것도 개인적인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질서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었으니(8절), 그들에게는 힘든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들은 무거운 짐이고 괴로움일 수 밖에 없습니다. 뭐가 좋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에 두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더 하고 싶고 더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은 짐이 아니라 기쁨이고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그런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오늘의 한 구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