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예언은 상당수가 메시야와 그의 나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약에서 분명히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메시야의 오심은 한 번이 아닌 두 번으로 성취될 것입니다(초림, 재림). 그의 나라도 ‘이미’ 시작된 영적인 나라가 있고, ‘아직’ 이 땅에 실제로 임하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부분도 있지만(포로 귀환),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면이 있으며, 궁극적인 회복은 그들이 거절했던 메시야 예수님을 민족적으로 받아들일 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어떤 예언은 어느 한 사건을 통해 성취가 되지만, 어떤 예언은 부분적인 성취와 온전한 성취가 나눠지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예언은 그 성취의 그림자가 일부 나타나고, 그 실체는 후에 따라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마지막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31절)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회복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천년왕국을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부어주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준비시키실 것입니다(28-29절).
베드로는 오순절에 일어난 일이 바로 이 궁극적인 회복의 그림자 혹은 맛보기 같은 사건임을 지적하면서(행 2:16-21), 이 예언의 현재적 측면, 즉 지금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에 집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증명했습니다(행 2:33). 그리고 그 말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바로 그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의미가 됩니다(행 2:36). 유대인들로서는 너무나 두려운 말이었을 것입니다. 당장 그들에게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할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때가 아니었고 그래서 베드로는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외쳤습니다. 심판의 날이 임하게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전까지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심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성령님께서 오셨습니다.
이 상황은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2-13)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요 14:6). 예수님은 그렇게 예수님께 오는 자를 결코 내쫒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37). 심판의 날이 임하기 전,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