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유혹 가운데 있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 있었고 그 원인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이셨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과거의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비교를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속해서 논증하고 그 예수님을 믿고 사는 믿음의 삶에 대해서 말합니다.
1장에서는 천사와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말합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메신저(사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특히 하나님의 메시지(말씀)를 전해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오히려 천사를 더 가깝게 여기고 섬기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천사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 사람들에 의해 신의 자리에 혹은 신과 사람의 중보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은 아들로서, 예배를 받으시는 분으로서, 그 높으신 지위로서, 창조주로서, 그 하신 역할로서 천사보다 뛰어나심을 말합니다. 천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복음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고 그렇기에 예수님을 떠나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2:1-4는 이런 논리의 결론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당연한 명령과 경고를 말합니다.
히 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
“들은 것”은 “이같이 큰 구원”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내신 모든 계시, 특히 복음의 진리가 이것입니다. 이것에 유념하여 흘러 떠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유념하라는 것은 의도적으로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명령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 구원, 신앙은 뒷자리에 밀려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가 다 ‘할 일’이 많습니다. 사실 그런 일들이 다 ’할 일’은 아닌데,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그런 일들을 해야할 일로 생각하고 그러면서 신앙과 관련된 일들은 뒤로 미룹니다. 그것도 해야한다는 압박감은 느끼지만 우선순위에는 없는 것입니다.
정확히 그 반대로 하라는 것이 “유념하라”는 명령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바쁘게 만들어 영적인 일은 뭔가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우선 순위를 바꾸면 안됩니다. 내 영혼을 먼저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로 이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영적인 표류는 나도 모르게 시작되고 진행됩니다. 이런 저런 일로 바빠서 한두번 교회 빠진 것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교회 성도들이 낯설고 ‘그 무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해 집니다. 그러니 더 교회에 가는 것이 불편하고 싫어집니다.
단지 교회에 가고 안가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 보이는 것이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뿐입니다. 계속해서 정신을 차리고 복음에 굳게 서있으려고 하지 않으면, 하나 둘 내 삶에 다른 것들이 주인인 것처럼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내 삶을 주장합니다. 그런 삶이 더 편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흘러 떠내려간 것입니다.
유념해야 합니다.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 받은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구원 받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그런 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께 묶여서 내 삶이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