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가 전체적으로 그렇기는 하지만 4장은 확실히 더 바울의 유언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말합니다(6절). “전제”는 번제 등의 끝에 포도주를 부어서 향기롭게 하는 제사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의 제사에 비유하면서 이제 그 마무리 제사까지 다 드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그 자신이 표현한 것처럼 “싸움”이었습니다.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었습니다. 그의 대적들은 안과 밖에서 그를 공격했습니다. 많은 비방과 오해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의 싸움은 외롭기도 했습니다. 10과 1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와 함께 했던 자들이 그를 떠났습니다.
이 외롭고 치열한 싸움을 견뎌낼 수 있게 했던 것은 바로 그가 믿는 주님이셨습니다.
딤후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님께서 바울을 위험에서 건지셨고 넘어질 때 일으키셨습니다. 외로울 때 진정한 위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곁에 서서 힘을 주셔서 바울로 그 모든 위험과 핍박과 외로움을 견디고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비록 감옥에 있고 이제 처형을 기다리고 있지만, 여전히 동일한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과 소망입니다.
만약 바울이 감옥에서 처형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그의 평생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힘을 주셨던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의 치열했던 싸움이 선한 싸움이라고 불릴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감옥에서의 외로운 죽음은 그가 결국을 패배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평생에 함께 하시며 그를 구원하신 주님은 그의 죽음에도 함께 하실 것이고 결국 그를 죽음에서 건져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18절). 그것이 죽음을 앞두고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확신이었습니다. 그 확신 가운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죽음 앞에 모든 것이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가 그와 같은 소망과 확신으로 죽음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믿는 자의 죽음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날을 사모하며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우리의 선한 싸움을 매일 매일 싸워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