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일상의 자리에서 선포하는 복음

최종혁 · 2024.10.25 · 디모데전서 6:1-2

본문 글자 크기 100%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 받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상관없이 그렇습니다. 복음이 우리의 일요일과만 관련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주일, 즉 우리의 모든 삶과 관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복음의 어떠함을 드러내어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느냐 전하지 않느냐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쨌든 우리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 복음이 어떤 복음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에게 주는 명령의 바탕에도 이런 원리가 있습니다. 바울은 종들에게 자기 상전을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고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상전을 공경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단지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믿고 있는 복음과 하나님이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문제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상전이 믿는 자일 경우도 복음을 생각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상전이든 그에게 속한 종이든 한 형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전을 상전으로 여기지 않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형제의 사랑으로 그를 대하고 더 잘 섬겨야 합니다. 이 역시 복음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대해야 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복음은 사람들에게 오해되게 됩니다.

복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영혼 구원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고 나면 더 이상 복음이 나에게 직접적인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됩니다. 복음이 일요일과만 관련있는 것처럼 대하고 그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는 사람은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외에는 전혀 자신과 다른 점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 영혼이 구원 받았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완전히 새롭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일요일에는 새로운 피조물이고 나머지 6일은 오래된 피조물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든지 아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바르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충성하고, 함께 일하는 자들을 존중하고, 특히 질서에 따라 순종해야 할 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내가 어떻게 그 사람들에게 보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믿는 복음과 그리스도가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좀 더 확장하면 이는 꼭 직장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디든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해야하는 문제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하는 삶을 삽니다. 항상 나를 통해 복음은 사람들에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영광스럽게 우리 삶을 통해 세상 가운데 선포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어서 살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