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는 정말로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으로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고 그리스도가 누리는 많은 것들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정말로 이 복음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고 형용할 수 없는 부요함이 있습니다.
그런 복음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늘에 크게 복음의 내용을 쓰고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하지 않으셨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질그릇에 보배를 담으신 것입니다.
내가 질그릇인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심히 큰 능력이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질그릇이 보배를 가린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사람들이 질그릇 때문에 보배를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삶으로 복음에 어떤 능력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또한 복음을 위해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감수하여 복음이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나타냈습니다.
약을 파는 사람들이 약을 팔기 위해 약의 효능을 허위로 광고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복음은 있는 그대로 사람들 앞에 내놓아도 충분합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어떤 대단한 일을 할 것을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증언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고전 2:2).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말과 삶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 대해서는 방어 체계가 정교하게 작동합니다. 그런데 내가 맡은 복음에 대해서도 그런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의 어떤 말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기에 앞서 나에게 맡겨진 복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음을 맡기셨기에 나는 복음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맡은 자로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복음과 관련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로 인해 복음은 때로 너무나 가지고 싶은 보배로 보여질 수도 있고, 전혀 가지고 싶지 않은 쓰레기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복음의 은혜가, 복음의 능력이, 복음의 가치가, 내 말과 삶을 통하여 드러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