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의 후반부에서 바울은 여러차례 높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말을 잘 들어보면, 바울의 목적은 단순한 변호가 아니라 전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바울은 자신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도 복음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그립바가 유대 문화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고(3절), 먼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유대인들에 의해 고발을 당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유대인 중에서도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5절). 그는 지금 예수를 전한다는 이유로 핍박을 당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가장 열심히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9-12절). 아그립바는 바울의 이 말을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랬던 유대인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바울은 이 의문에 대해서 답합니다. 그의 답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였습니다(23절).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종과 증인”으로 삼으셨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보내어 그들이 죄사함과 성도의 기업의 은혜를 얻게 하셨습니다(16-18절). 유대인들은 이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도 마찬가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믿는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지만(22절),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부정했습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모든 사람도 그와 같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기를 원했습니다(29절). 이런 바울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미친 것처럼 보일 정도였지만(24절), 사실 너무 당연한 모습입니다. 제대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릴 만난 사람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라며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트럭에 부딪혔다고 말하는 사람이 상처 하나 없다면 그 사람의 말이 거짓인 것처럼, 정말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이 어떤 변화가 없다면 그는 정말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변화되어야 하고, 그 변화의 원인은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 말과 행동, 내 삶이 계속해서 변화되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행 2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