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돈을 사랑하기보다 선을 이루는 삶

최종혁 · 2024.10.28 · 디모데전서 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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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의 서신서에 등장하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하느냐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느냐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그 모든 일을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 ‘이익’은 돈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돈’은 사실 그 자체로서 특별한 가치는 없습니다. 먹을 수도 없고 그것으로 실생활에 이익이 되는 무엇을 만들거나 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전쟁이 나서 당장에 먹을 것이 귀해진 상황이라면 통장에 몇 억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집에 농작물이 있고 가축이 있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돈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어떤 가치를 부여한 것일 뿐 실제로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자체의 가치만을 생각한다면 돈을 사랑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여된 가치로 인해 돈은 정말 사랑스러운 것이 됩니다. 돈이 있다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형의 것 뿐 아니라 무형의 것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렵게 얻을 것을 좀 더 쉽게 얻을 수도 있습니다. 돈으로 사랑과 같은 것은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돈이 있으면 사랑을 얻는 것은 최소한 쉬워진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돈으로 무엇을 한다고 하면 나쁘게 들릴 수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때 돈이 들어가지 않는 일을 찾기가 더 힘듭니다. 그만큼 돈은 우리 삶 전반에 깊숙히 침투하여 그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돈에 대한 성경의 분명한 명령은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만 돈은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 자체가 악이어서 그렇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돈이 많은 것도 죄가 아닙니다. 다만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이고 죄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돈은 참 사랑스러운 것이어서 사랑에 빠지기가 너무 쉽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만 돈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은 나에게 이익을 주지만 하나님과 이웃은 나를 희생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 따져봐야 합니다. 손익의 기준이 이 땅이라면 이 계산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 하늘이라면 이 계산은 잘못되었습니다. 기준이 하늘, 영원에 속한 것이라면 내가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손해이고 내가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투자가 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이익을 남기는 투자입니다.

결국 돈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떻게 모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돈은 잘 써야합니다. 저축이 미덕이 아닙니다. 모을 때는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잘 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돈 자체를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선물로 여기고 감사하며, 그 모든 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웃을 사랑하는데 사용하는 것, 그것이 돈을 잘 쓰는 방법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돈으로 ’영원’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일 것입니다.

이것이 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은 우리를 모든 악으로 이끌 것입니다. 돈으로 인한 모든 악에서 벗어나고 오히려 돈으로 모든 선을 이루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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