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우리 삶으로 드러내는 살아 계신 하나님

최종혁 · 2024.08.27 · 사도행전 1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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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에서 있었던 소동은 거짓 종교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로 거짓 종교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거짓 종교는 그것을 믿는 자를 진리로 인도해줄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애초에 진리를 알고 있지도 못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을 추구하고 있지도 않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했던 말이 모든 거짓 종교의 본심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바울로 인해서 아데미 신전이 무시 당하게 되고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염려하는 말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으로 인해서서 자신이 하는 일(우상 제작)이 천하여지고 그래서 풍족한 생활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에게 종교는 그저 돈벌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거짓 종교는 그 모습들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들이 이득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이기도 하고, 명예나 인기이기도 하고, 혹은 쾌락과 같은 것이기도 할 뿐 자기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삯꾼에 대해서 묘사하시면서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0:12). 삯꾼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양의 유익이 아니라 자식의 유익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 것 같으면 양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양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돌볼 뿐입니다.

둘째로 거짓 종교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이용합니다. 그것은 아무런 근거없이 사람들을 위협하여 두려워하게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곤 합니다. 반대로 있지도 않은 보상으로 사람들을 유혹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이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 즉 어리석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거짓 종교에 빠질수록 더욱 어리석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사람들은 영문도 알지 못하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고 있으니 같이 그렇게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두 시간이나 그렇게 했습니다. 이유를 몰라도 그냥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아마 한참을 같이 소리치고 있다가 옆 사람에게 “근데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보면 옆 사람도 “몰라. 그냥 소리치기나 해”라는 식으로 반응했을 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왜 어떤 일은 하고 어떤 일은 하지 않는지 등이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맹목적인 믿음만이 남고 그것만이 강요됩니다. 이것이 거짓 종교의 특징입니다.

이런 면에서 참된 믿음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왜 믿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지적인 것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내 삶의 죄에게 회개하고 돌이켜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거짓 종교와 참된 믿음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말하는 것은 그들이 들을 때 대동소이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이 무엇이 다른지는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삶으로 선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끔씩 하나님은 왜 우리같은 사람에게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을 맡기셨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훨씬 쉽게 그 일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이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형용할 수 없는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 특권에 감사하며 정말로 우리 믿음에 따라 예배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더욱 놀랍게 세상 가운데 드러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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