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교회를 위해 달리는 삶

최종혁 · 2024.08.28 · 사도행전 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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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정말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교회를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도 경험하듯 그 자체로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바울 당시에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의 말처럼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고전 1:23). 유대인들은 특히 더 복음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바울은 이방인보다도 악한 이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강하게 핍박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복음 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겸손과 눈물로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성경을 가르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20절). 그렇게 3년을 했습니다(31절). 그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26절)라고 스스로 증언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23절). 그런 상황에서도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 모아두고 이 교회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임을 강조하며(28절), 자신이 보여준 본에 따라 교회를 돌볼 것을 격려하고 권면하고 또한 경고했습니다.

어쩌면 바울의 곁에서 이 모든 모습을 지켜봤던 누군가는 바울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모든 믿는 자가 바울처럼 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바울 당시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당장에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확실한데 예루살렘으로 가겠다고 고집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 와중에 자기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걱정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답합니다.

<font color=“#c00000”>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font>

정신 나간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냐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밖에”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지금 바울의 말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과 그의 생명 중 바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사명이었습니다. 자기 생명 이상의 무언가를 드릴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로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가끔 열심있는 성도를 보며 우리는 냉소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합니다. 어차피 금방 식을거라고 합니다. 때론 가식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열심을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삼습니다. 어쩌면 그런 말들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럼 나는 정말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가. 어떻게 그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가. 점검해 봐야합니다.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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