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데반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진짜 ‘죄’라고 할만한 것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동일하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 모함했습니다. 참 억울하고 답답한 노릇이었지만, 스데반은 천사와 같은 얼굴로 말했습니다(6:15). 하지만 그는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이 아닌 그들이 지금 어떤 죄를 범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행 7:51–52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이 말을 듣던 자들은 “마음에 찔림”이 있었습니다(7:54).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도 동일하게 마음의 찔림이 있었고 그 때 그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행 2:37).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정직하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들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스데반의 말에 마음의 찔림은 있었지만 그들의 완고한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고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경고 표지판이 거슬리니 그냥 표지판을 부숴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스데반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부당한 일에 예수님처럼 반응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겉으로만 참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용서하고 진정으로 참고 견뎠던 것입니다.
행 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것은 참 멀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간미(人間味)’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인간미’가 죄를 용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런 인간미는 우리가 추구할 것은 아닐 것입니다. 人間味가 아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人間美를 우리는 추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삶과 죽음이 예수님을 닮기를 원합니다. 어떤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예수님과 같은 온유와 겸손, 인내, 용서, 사랑이 내 삶에 있기를 구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손해를 의미한다고 해도 궁극에는 유익임을 기억하고 매일 내 삶에서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닌 주를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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